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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감

새만금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메모

2023년 7월 17일 by 이상한 모자

어쩌다 새만금과 관련한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NL적인 영화였다. 감독이 NL출신이란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인터뷰 등을 찾아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거 같다. NL적인 영화라는 것은 내가 이걸 보면서 NL을 연상했다는 것이며, NL적인 한계가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NL을 어떻게 하자는 얘기가 전혀 아니다. 갑자기 NL이 왜 나오냐 하실 수 있는데, 제가 운동권 출신이라…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카레를 보면서 똥을 연상했다고 해서 실제 카레가 똥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과 비슷한 뭐 그런 거다. 그냥 내가 뭔가 똥 생각 나는 카레라고 하는 거지…

먼저 영화를 본 분이 그런 불평을 했다. 세간의 평도 좋고 실제로도 좋은 영화이지만 감독 본인이 너무 많이 등장해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보니까 정말 비슷한 느낌이 받는 장면이 곳곳에 있었다.

거기에 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영화가 대상을 다루는 방식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인간주의적이고 감상적이라는 거다. 가령 등장인물이 조개들이 이제나 저제나 바닷물이 들어오길 기다리다 빗물에 모처럼 갯벌 위로 올라왔지만 말라 죽고 말았다는… 그 얘길 하면서 어떤 실망과 낙담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이건 전형적인 인간주의적 방식의 설명이다. 조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라는 거다. 새들이 먹이를 찾는 모습을 민간 전문가의 생업과 교차편집하는 씬도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새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다. 그게 감독이 조개껍질을 어루만지는 장면이 나오고 죽은 새를 어루만지는 손이 나오는 이유인데,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다는 거고,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게 무엇일까 라는 게 영화 초반에 내가 가졌던 의문이다.

후반부에 미군기지와 전투기가 나오면서, 무릎을 쳤다. 아~~~ 이거구나~~~ 그러니까 이런 거다. 만약에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비극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고 하면 그것은 인간 대 자연의 대립구도로 그려질 것이다. 이 구도라면 본래 자연과 공생했거나, 자연의 편에 의식적으로 서려고 하거나, 자연에 정서적으로 연민을 느끼는 인간이 등장할 수는 있지만 그게 내러티브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이런 구도에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잘못을 했으니 반성하고 속죄하는 주체이지 자연과 근본적으로 한 편이 될 수는 없다. 근데 미군기지와 전투기가 등장하는 세계관에서는 권력과 민중의 대립구도가 강화된다. 여기서 민중과 자연은 부당한 권력에 핍박받고 맞서 싸우는 같은 편으로 묶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다루는 새와 조개와 고둥과 게의 이야기는 인간주의적이고 감상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며 인간의 본질적 죄란 ‘아름다운 것을 본 죄’로 묘사되는 거다. 그리고 이게 말하자면 NL적 세계관이다.

이런 세계관을 덮거나 희석하는 것은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영상과 음향이다. 새와 조개와 게들의 영상이 대단하다. 갯벌의 드론샷도 인상적이다. 마지막에 묵음으로 그것만 보여주는 것도 좀 과하다 싶긴 한데 아무튼 굉장하다. 옛날 같았으면 독립PD? 인디다큐멘터리 제작자? 정도 수준에선(물론 국제적 대기업이 펀딩을 했더라마는…) 촬영할 수 없거나 어려운 장면이다. 물론 옛날에도 어떻게든 했다는 얘기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 아무튼 기술의 발전으로 좋은 세상이 돼서 이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도 수준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들의 날갯짓 만으로도 전해져 오는 그런 게 있다. 몇 번이나 감탄했다.

아무튼… 이러한 세계관의 스토리에서 주인공은 ‘뭔가 막연한 의문을 갖고 있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 근본적 모순에 눈을 뜨고 투사로 거듭나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 역할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감독 본인 뿐이다. 그러니 나레이션은 1인칭이어야 하고 감독이 주요 장면마다 등장할 수밖에 없다. 가령 감독이 카메라로 새가 아니라 전투기를 쫓는 장면이 한 순간 나오는데, 이 장면이 주인공이 거듭나는 어떤 전환점이 아니겠는가. 하여간 전반부의 의문은 이런 방식으로 풀렸다.

그게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렇다는 거다. 원래 정체성은 곧 한계이다.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 하는 것도 운동권 출신의 한계 아니겠는가. 영화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그런 감상을 가졌다는 것을 개인적 기록으로 남기는 바이다.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수라

핵폐수라고 하면 왜 안되냐?

2023년 7월 11일 by 이상한 모자

어제 정부가 자기들이 처리수라고 잠시 말했던 게 문제라면 유념하겠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핵폐수란 말은 쓰지 말라고 했다. “지나치게 자의적 해석을 하거나 국민께 근거 없는 불안감만 주는 내용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다.

첫째, 정부가 공식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오염수’가 공식 용어다. 그러므로 정부는 공식석상에서 ‘오염수’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도 사람이기에 말하다 보면 헛갈릴 수 있다. 그러니 지적을 하면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둘째, 그런데 언론이나 정당 혹은 단체에서 무슨 용어를 쓰든 그건 정부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처리수, 오염수, 핵폐수 뭐라 쓰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핵폐수가 왜 문제인가? 핵발전에 관계된 작업에 쓰고 남은 물인데 핵폐수라고 부르는 게 뭐 문제인가?

그러고 보면 우리 멋진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람들은 다 ‘처리수’라고 쓰고 ‘오염수’라고 쓰는 건 중국이나 러시아 놈들이다(따라서 오염수 방류 반대하는 놈들은 친중이다) 라는 취지의 기사를 쓴 신문도 있었는데, 놀고 자빠졌다. 얼마 전에 네이처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기사를 인용한 일이 있다. 거기서 “Fukushima wastewater”라고 쓴다. 내셔널지오그라피 기사도 마찬가지다. BBC 들어가서 Fukushima로 검색해봐라. 이 말 저 말 되는대로 쓴다. 당연히 wastewater도 쓴다. nuclear water도 있고 radioactive water도 있다. 뭐라고 쓰든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라파엘 그로시가 water라고 한 게 그것 자체로 문제라고 생각 안 한다. 뭘 설명하러 온 건지 알 수 없어 의아할 뿐… 원전 추종자 집단이 곧 죽어도 ‘처리수’라고 쓰는 것도 문제삼고 싶지 않다. 남에게 강요만 안 하면.

이름을 뭐로 부르냐 보다 훨씬 중요한 얘기가 많다고 생각한다. 가령 ‘과학 대 괴담’의 구도는 뭘 의도하는 건가? 원전의 최대 약점은 사고나면 수습 불가라는 점이고 이거 탈원전의 가장 중요한 고리다. 그런데 오염수 방류는 사고 원전도 과학적 일상의 범주에 집어 넣는 일이 된다. 사고나도 수습할 수 있다고 하면 원전은 (어디까지나 그들 생각에) 천하무적이다. ‘과학 대 괴담’은 그 얘길 하고 싶은 거다. 양보할 수 있겠냐? 그래서 글도 좀 썼는데 내용 이해가 어려웠던 거 같다. 제목이 마치 AI의 자동 요약처럼 돼있다. 추천 제목을 적어서 보낸다는 걸 깜빡했다. 두통 때문에…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7110300045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탈원전, 후쿠시마 오염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가 국가 반역이라는 헌법학자

2023년 7월 8일 by 이상한 모자

아이 정말 웃겨 죽겠네… 아래는 윤통 출마 전부터 검수완박에 이르기까지 보수언론이 한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헌법학자로 받들어 모시었던 어떤 학자분이 시사저널에 쓴 글 중 일부.

이 점과 관련해 우리도 독일의 입법례를 참고해 시급하게 입법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진실을 말하는 양식 있는 전문 과학자를 모두 돌팔이라고 매도하는 괴담정치 집단에는 법으로 응징해 처벌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독일은 외국과의 국제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형법 규정을 두고 있다. 즉, 국가의 외교안보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후 그것이 허위임이 밝혀짐으로써 국가의 외교안보에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킨 행위는 6개월 이상, 5년 이하 형벌로 처벌하고 있다. 이를 국가반역적 허위사실(Landesverräterische Fälschung)이라고 한다. 더욱이 이런 범죄로 6개월 이상의 형에 처하는 경우 법관은 피고인의 공무담임권과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2년 내지 5년간 박탈하는 벌을 병과할 수도 있다(독일 형법 제100a조와 제 101조 및 제45조 제2항과 제5항).

민주당의 사드 괴담과 후쿠시마 괴담은 한·미·일 안보동맹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또 후쿠시마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18개 태평양 도서국가 정상들과의 공동성명에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괴담정당이 이들 나라에 후쿠시마 국제연대를 제안하며 해양재판소 제소 등을 월권적으로 요청한 행위는 IAEA를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관계에서 우리의 외교적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7423

따져볼 게 많은데 다 떠나서 정확하게 이 국가반역이라고 부를만한 ‘괴담’이 뭘 말하는지를 정확히 해야 한다. 이 글에 여러 감상적 부분을 제외하고 확정적으로 쓰여져 있는 건 위에 나와있는 “괴담정당이 이들 나라(태평양 도서국)에 후쿠시마 국제연대를 제안하며 해양재판소 제소 등을 월권적으로 요청한 행위”이다. 근데 이게 국가반역인가? 가령 녹색당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 행사에 참석해 타국의 여당 혹은 녹색당과 연대 행동을 기획하는 행위를 했다면 국가반역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법이 있다는 독일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특별히 반대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나라의 환경부 장관이라면 다르다. 정확히는 독일 연방환경자연보호원자력안전소비자보호부 장관인 슈테피 렘케가 지난 번 G7 회의에서 한 행위를 되돌아보자.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회의 성과를 소개하면서 “오염수(처리수)의 해양 방류를 포함한 폐로의 착실한 진전,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일본의 투명성 있는 대응이 환영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옆자리에 있던 렘케 장관은 독일의 탈원전 사실을 언급한 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노력에 비상한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오염수 방류에 관해서는 환영한다고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회견 이후 취재진에 “잘못 말했다”고 해명했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1356

독-일은 세계구급 불량아 시절부터 좋은 관계인데 국제 회의에서 면전에다가 망신을 주다니, 이런 반역이 있는가? 독일 정부는 지금 당장 슈테피 렘케를 체포하여 능지처참에 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슐츠 내각이 종북이기 때문인가?

하긴 일본 사민당 의원이 와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발언을 하니 ‘사민당은 친북이라 일본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쓰는 언론도 있다.

사민당의 전신인 사회당은 자민당과 함께 전후(戰後) 일본 정치를 이끌어온 주역이었다. 40여 년간 진보 성향의 ‘간판 야당’으로 군림하며 연립 정부 총리까지 배출했다. 그랬던 사민당은 지금 중의원 465석 중 1석, 참의원 248석 중 2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그중 참의원 1명이 바로 오쓰바키 의원이다.

사민당의 몰락은 시대에 역행했던 탓이 크다. 노골적인 친북 노선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다. 80년대 들어 일본인 실종자들이 납북됐다는 증언이 쏟아졌지만, 사회당은 이를 부정했다. 1987년 대한항공 폭파 테러를 한국의 자작극으로 몰아붙이는 주장도 나왔다.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를 훌륭한 리더로 추켜세우는 발언도 의원들 입에서 나왔다. 그런데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만나 납치 사실을 시인했다. ‘우당(友黨)’이라던 조선노동당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민심은 떠나갔다.

https://www.chosun.com/opinion/journalist_note/2023/07/07/TMARFLI2UZBBLFZ5VZGOYK725Y/

하지만 일본 사회당 몰락의 결정적 장면은 선거제도 개혁 국면에서 지샤사 연정 등 자민당과 함께 묶여 구태세력이 된 것에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하긴… 오염수라고 하면 친중이라는 둥, 그리스 ND 집권에 대해 곧 죽어도 좌파-포퓰리즘을 이긴 보수정치의 승리라는 둥 하는데 뭐 더 할 말이 있겠나. 야~~ 너네끼리 너네들만의 세상에서 잘먹고 잘 살어라.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후쿠시마 오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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