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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회 : 혁명에 관한 멋진 은유

조회 수 1068 추천 수 0 2007.12.29 00:51:11
신들의 사회 - 10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는 자들에게 반항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냐.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악이 들어갈 여지가 없어. - 끊임없이 그것에 고통받고 있으면서도 말이야. 괴로운 처지에 빠져 있는 노예가, 자신이 환생할 것을 - 기꺼이 괴로움을 참고 견딘다면, 아마 살찐 성인으로 - 알고 있다면, 그의 태도가 단 한 번의 삶만 주어진 자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네. 지금 겪는 고통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그만큼 미래에 쾌락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는 거의 어떠한 일도 견뎌 낼 수가 있는 거야. 만약 그런 자가 선이나 악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 미추(美醜)의 구분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결국 바뀐 건 이름뿐이네... (p67-8)


아마도 로저 젤라즈니는 마초의 존재가치를 형이상학의 레벨에서 논증하는 것을 사명으로 부여받은 재담가일 것이다. 그는 모든 작품에서 멋진 남자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데, 이 <신들의 사회>(원제는 Lord of Light, ‘빛의 왕’이다.)의 경우에는 부당한 사회를 변혁하려는 한 남자의 책략과 성공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서 살게 된 인류는 자신의 영혼을 새로운 육체로 전송시킬 수 있는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처음 우주선을 타고 이 행성으로 왔던 ‘제1세대’의 승무원들은 여러 육체를 옮겨 다니면서 수많은 자녀를 낳았는데,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이 자손들의 숫자가 점점 불어났고 그들은 ‘하늘’이라 이름붙은 도시에 거주하는 1세대들과는 달리 미개한 문명의 레벨에서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1세대들은 이들이 아직 과학문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을 힌두교의 신에 대입하는 엄격한 카스트 제도를 확립한다. 모든 이들은 죽을 때가 오면 카르마의 심판관들 앞에 나아가 일생의 기억을 기계로 낱낱이 파악당하고 새로운 육체를 부여받는다. 신들이 만든 사회질서에 우호적인 생각을 하고, 자동 기도 기계에 많은 돈을 기탁한 이들이 ‘선한 이’로 취급받는 것은 물론이다. 사회체제 그 자체인 종교, 역사상 가장 실증적인 종교가 수립된 것이다.



이들 ‘신권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이들이 주인공 샘을 포함한 ‘촉진주의자’들인데, 제1세대가 과학기술을 독점하지 말고 그들 자손들의 문명을 촉진시킨다면 많은 이들이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카르마의 심판관들과 결탁한 신권주의자들은 촉진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육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멸종시켰다. 유일하게 살아남는 샘이 차츰차츰 동지들을 모아 ‘신들의 사회’에 대항하는 과정이 소설의 큰 부분을 이룬다.



1장에서는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멀리 떠나갔던 (자세히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하니 이렇게만 적어둔다.) 샘을 동료들이 다시 불러내는 과정이 나오고, 2장부터 6장까지는 샘이 어떻게 신들의 미움을 사게 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배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7장은 돌아온 샘이 새로운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는 결미이다. 시간 순서로 치면 2장에서 6장 -> 1장 -> 7장인 셈인데 이런 식의 구성이 더욱 소설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있다.



...그건 거짓말이었네. 내 자신 그걸 믿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지는 않아. 다른 길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었네. 이를테면, 니리티의 종교라도 상관없었어. - 다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건 아프니까 말이야. 그 대신 이슬람이라고 부르는 종교를 택할 수도 있었네. 단지 그것이 힌두교와 얼마나 사이가 나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둔 것뿐이야. 내가 불교를 택한 것은 계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어. 나는 속인에 불과하네... (p408)



샘이 추진하는 혁명이 멋진 이유는 혁명의 동인을 체제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들에게 대항하려는 의지를 품은 샘은 어떤 지방으로 떠나 ‘정각자’, ‘여래’를 자처하며 불법을 설파하기 시작한다. 그의 설법은 인기를 끌게 되었지만, 신들은 경악한다. 왜 그들의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마음먹은 이 사상 최대의 협잡꾼은 하필 인류 역사상 가장 비폭력적인 종교를 고른 것이었을까?  이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샘의 동료인 '죽음의 신' 야마의 경우에도 샘의 선택을 "교묘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영감에서 비롯된 것"(p393)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만약 신들의 사회가 유태교적인 율법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면, 나는 샘이 예수의 말을 빌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태교에서 크리스트교로, 그리고 힌두교의 맥락에서 불교의 탄생은 한 종교의 맥락에서 그 내부적인 모순을 해소하려는 노력에서 나왔다. 알이 있다면 바깥에서 충격을 줘서 알을 깨드린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알을 깨고 새로운 체제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는 자들에게 반항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그 문화의 맥락 안에서 급진성을 추구해야 한다. 불교에 대한 로저 젤라즈니의 이해는 대부분의 서구 지식인들의 그것보다 차라리 탁월한 데가 있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불교를 기독교와의 차이 속에서 신비한 동양의 종교로 인지하는 반면, 젤라즈니는 힌두교 안에서 탄생한 불교의 문화사적 의의를 명백하게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왜 비폭력적인 종교라도 괜찮은 것일까? 왜 비폭력적인 교리가 나중에는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예수나 붓다의 가르침이 유태교의 율법이나 힌두교의 우주적 윤회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어떤 내면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폭력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 자율성이 폭력에 의해 획득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만을 원한다면, 우리는 굳이 싸울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 자율성의 영역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면,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주체적인 인간이 된다. 그리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었을 때, 그는 타인의 지배를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장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자율성의 확립이, 폭력조차 불사하는 강력한 주체를 낳게 된다는 이 아이러니.



이 점을 샘과 다른 방식으로 신들의 체제를 전복시키려고 하는 니리티의 경우를 바라보면서 확인할 수 있다. 니리티는 힌두신화에서는 암흑과 부패의 신인데, 이 소설에서는 한때 랜프류라는 이름의 목사였던, 기독교 광신도로 등장한다. 그는 ‘하늘’에서 니리티 신의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기독교가 구현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하늘’에서 이탈한다. 좀비를 제조하고 해상에서 대포를 쏘아대는 그의 세력은 마치 무협소설의 마교를 연상케 한다. 힌두교의 바깥에서, 기독교라는 ‘진리’를 숭앙하는 광신적인 지도자는 동원할 수 있는 온갖 힘을 끌어들여 체제를 파괴하고자 한다. 그의 진리는 피지배계층의 복리라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는 전혀 관계없는 영역에 있다. 결국 이 세계에서 그는 실패하게 되는데, 설령 성공했다 하더라도 별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가짜 붓다인 샘의 설법을 듣고 제자 한명이 실제로 붓다의 깨달음을 얻는 에피소드는 뭔가 종교적인 숭고를 보여주는 데가 있지만, 지금 내 리뷰의 포인트는 정치적 문제에 쏠려 있으니 그냥 지나치자. 내부로부터의 혁명에 대한 그의 탁월한 통찰은 견고하다고 싶었던 체제가 어느 순간 스스로 붕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1장을 보면 샘 일당은 이길 가망이 별로 없는 황당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2장에서 6장까지의 회상을 거친 후 7장으로 넘어 가면 전세는 달라져 있다. 샘이 뿌려 놓은 씨앗이 열매를 맺어 간다. 천상도시의 신들은 샘에 의해 다시 생겨난 촉진주의자들에 대한 숙청을 단행하며 스스로의 힘을 줄인다. 촉진주의자에 우호적이었던 신들은 숙청당하거나, 샘의 반군에 합류한다. 인간들은 차츰 여기저기서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있고, 신들과의 능력의 격차를 꾸준히 줄여간다. 니리티의 군대가 인간들의 도시를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하늘’의 신들이 주저해서 방치하자 인간들은 금세 신들의 전능함에 의문을 품게 된다. 신들이 자신들에게 부여했던 지나친 위엄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그들의 권력을 붕괴시켜가는 것이다.   



...인간은 <하늘>과 공존할 수 있었지만, 니리티와는 그럴 수 없소. 야마와 쿠베라는 도시에 무기를 반입했소. 우리는 도시를 요새화하고 충분히 방어할 수 있소. 만약 <하늘>이 우리와 힘을 합친다면, 니리티는 카이푸르 앞에서 몰락할 거요. 만약 <하늘>이 촉진주의를 승인하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카르마의 심판관>들에 의한 지배를 종결시킨다면, 우리는 제안을 실행에 옮기겠소. (...) 처음 두 가지는 이미 현실로서 존재하고, 또 그럴 권리가 있는 것들에 관해 동의하는 데 불과하오. 세 번째는 당신이 그걸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어차피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체면을 살릴 기회를 주고 있을 뿐이오... (p418-9)



이제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화된 신들을 소탕할 수 있는 시점에 왔을 때, 샘이 오히려 신들과 협상을 하고 니리티와 최후의 일전을 취한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물론 샘은 니리티와도 동맹을 맺으려고 시도했고, 실패한 이후 브라흐만 신과 협상을 한 것이므로, 이런 선택 자체는 우연적이다. 그러나 샘은 그 자신이 하려는 바가 자신의 정치적 적대자인 신들을 모조리 단두대에 올리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가 하려는 일은 결국 촉진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유연한 태도가 가능한 것이다.



...무엇인가가 나를, 막 벼락을 맞으려고 하는 나무로 언제나 이끌곤 했던 거야. (...) 우발적인 사회적 양심과 일련의 올바른 실수의 결과라고나 해야 하지 않을까... (p430)



샘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방식이 그나마 확률이 높은 방식이고, 또한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미학적으로 탁월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정치적 열망이 증발해 버린 시대에, 오래 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읽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 혁명에 대한 멋지고 명쾌한 우화를 보고 다시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자신이나 그의 자녀들이 계층이동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무슨 방법으로 반항을 부추길 수 있을까? 다수자의 욕망, 타인의 욕망을 규범으로 삼아 우리 자신의 욕망을 찍어 누르는 이 시대에 내면의 자율성의 가치를 깨닫게 해줄 수 있는 논리는 무엇일까? 이 체제의 견고함이 오히려 그것을 제약하는 족쇄가 되는 그 순간을 볼 수 있을까? 우발적인 사회적 양심은 어떻게든 올바른 실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나 이성적 판단의 바깥 속에서, 낭만은 이렇게 속삭인다. 왜 지금 우리에겐 이 싸움을 이끌어줄 멋진 사내가 하나도 없는 거냐고.      


dall-lee

2007.12.29 11:25:31
*.155.134.11

잘 보고 갑니다...

하뉴녕

2007.12.29 23:49:08
*.176.49.134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통고품격서비스

2007.12.30 05:34:32
*.47.175.197

내가 그리운거구나 ㅠ.ㅠ 만나서 등짝 한번?

쏘녀

2007.12.30 05:47:54
*.245.109.138

예전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포스트를 보니 조금씩 내용이 떠오르네요. 사회과학적인 상상을 구현하는 류의 SF를 좋아했었는데 (뉴웨이브 SF라던가요..) 꽤 오랫동안 이쪽 분야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포스트 덕분에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nobam

2007.12.30 06:01:44
*.223.120.1

잘 읽었어요. 우석훈씨 블로그 거치고 어찌어찌 와서 눈팅한 지는 좀 됐는데 늦게나마 언버로우 탑니다.
신들의 사회(애당초 왜 이런 제목으로 번역됐는지??;; )는 먼 옛날 정신세계사라는 단학선원류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으로 읽고서 어린 마음에 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번역자는 같은 분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혈기린외전 비평 완전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울바람

2007.12.30 11:56:28
*.205.57.16

재미있는 책에 대한 멋진 리뷰에요.ㅎ
현실의 조각이 없는 우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인 것, 그리고 종교적인 것에 대한 '흥미로운' 사고를 일으킵니다.+_+

하뉴녕

2007.12.30 12:17:09
*.176.49.134

정통/ ㄲㄲㄲ

쏘녀/ 저도 읽은 건 얼마 안 되니 혹시 재미있는거 발견하시면 추천 좀 부탁드려요. ^^;

nobam/ 저도 정신세계사 판본과 행책 판본을 다 읽었어요. 번역자는 같은 분 맞습니다. 로저 젤라즈니 전담 번역자라고 부를 수도 있는 분이죠. ㅎㅎ '빛의 왕'이란 제목이 아쉽지만, 아마 정신세계사에서 그런 제목을 택했다면 그야말로 내가기공에 관한 책인 줄로 오인받았을지도...-_-;; '신들의 사회'라는 은유도 나쁘지는 않은 듯 해요. 그리고 <혈기린 외전>은... 개정판이 나오면 다시 읽고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쿨럭;;

여울바람/ 감사합니다. ^^;

s1 style

2007.12.31 18:48:16
*.238.143.154

저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을 읽어도 님처럼 무슨 의미인지를 잘 모르겠어요..

님 정도 독해능력을 갖을려면 도데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부럽네여..

하뉴녕

2007.12.31 23:01:30
*.176.49.134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에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 제 '능력'이라는 것도 별 건 아니구요.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에 대해 노력을 한다면 (다른 부분에서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누구나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george

2008.01.02 20:36:30
*.131.151.4

멋집니다. 정말 훌륭한 리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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