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얼마전에 외사촌형의 둘째아이가 첫돌이었다. 형은 나보다 7살이 많다. 돌을 맞은 아이는 남자아이이고, 첫째아이는 여자아이인데 4살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아 그 나이를 따져보며 실없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내가 형의 페이스를 따라가려면 3년 후에 한 여자를 임신시켜야 한다.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올해 25살인 내가 적어도 5년 후에는 결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듯 했다. 그러니까 나보다 50년 더 사신 우리 할머니가 여든살까지만 사시면 손주 결혼하는 걸 볼 수 있다고 계산하신 거다. 안타깝다. 꿈도 야무지시다.
형은 육군 장교다. 대개 직업군인들은 일찍 가정을 꾸린다. 부사관들의 경우엔 거꾸로, 아이를 낳아버렸기 때문에 부사관에 지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경우엔 스물한살 즈음에 애가 있다. 내가 그런 얘기를 했더니 형이 그런다. “맞아.” / “그러니까 나랑은 사정이 다르지. 뭘 자리를 잡아야 결혼을 하든지 말든지.” / “에이. 결혼을 해야 자리가 잡혀. 부사관들 초임 해봤자 월급 200도 안 된단 말야.” 아아, ‘자리를 잡는다’는 말의 개념이 틀리다. 나보다 6살 많은, 대학원 나와서 일간지 기자된 어느 선배가 월급 200을 못 받는데. 뭘 어쩌라구. 내가 5년후에 부사관 초임만큼은 벌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평균적으로 그쯤 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급여는 아닐 게다.
문제는 이런 사정을 부모님들에게 전혀 납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차마 시도도 못 해봤다. 이런 얘기하면 지금하는 거 다 때려치고 무슨 무슨 시험 준비하라고 할 게 뻔하니까. 안 그래도 아버지는 최근 로스쿨 1기에 응시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어머니는 어렴풋이 자식 앞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시는 듯도 하지만 (하긴 어머니와 수다 떤 시간이 월등히 많다. 아버지에 비해선) 아버지는 요지부동이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아버지께서 요새 내가 하는 전반적인 일 모두에 깊숙한 태클을 거셔서 속이 상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글들은 김홍신이나, 이어령의 글들,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이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정말 이분이 내 글을 좋아하게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버지로부터 식견있다라든가, 글을 잘 쓴다 따위의 칭찬을 받은 건 겨우 중학교 때까지였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그런 칭찬을 듣기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버지는 나를 무시(?)하는 셈이지만, 한편으로 아버지는 자기보다 훨씬 좋은(?)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당연히 자기보다 훨씬 더 잘 살 거라고 생각한다. 그 잣대에 맞춰 내가 현재하고 있는 일들을 폄하하고 있는 셈이다.
50대 중반의 아버지는 속한 조직에서는 잘 되신 편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고 하셨지만, 이분이 들고 오는 월급명세서를 보면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내가 그렇게 벌지는 못할 것 같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려면 부모를 설득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상황을 은폐하고 시간을 질질 끌어서 선택을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정말로 피곤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요샌 꽤나 자주 이런 문제는 있지도 않았던 군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 물론 이 말은 직업군인이 되고 싶다는 말과는 다른 말이다.
P.S 하지만 4살의 꼬마 공주님은 귀여웠다. 내가 그 친구와 두세시간 놀고 있으려니, 형수가 “우리 --이를 마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면서, 30분쯤은 두 아이를 모두 마크한 내 기량(?)에 놀라 시급을 주며 베이비시터로 고용해도 되겠다고 놀렸다.
부모님이 그것을 이해해주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저도 솔직히 윤형님이 활동하는 길이 그리 넉넉한 삶은 아닐것 같아 살짝 안타까운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그래도 마이웨이를 걷는 모습이 부럽네요.^^
ps 아버지 월급이 얼마나 되길래 경악까지?... 그나이 되시면 연 1억쯤 되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