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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메리대구공방전>이 명작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내게는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강대구(지현우)는 요새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문어체 마초’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어떻게 데이트 비용을 아낄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메리(이하나)와 대구의 연애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드라마의 스토리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요소가 끼어 있었고, 그것은 후반부로 갈수록 비중이 커졌다.


나는 드라마가 그냥 네명의 젊은이에게 집중하길 원했다. 하지만 제작진의 의도는 그들 부모 세대로부터 펼쳐진 은원관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현재 젊은이들의 빈곤함과 부유함을 설명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메리네 증조할아버지는 아마도 독립운동을 했을 거다, 그들이 가난한 것은 그 때문이다, 라는 투로, 가난한 이들에게 윤리성을 부여하려 한다. 차라리 예수가 그렇게 했듯, 가난 그 자체를 윤리적인 것이라 말한다면 그건 상관이 없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에게 ‘독립운동’이라는 별도의 윤리적인 가치를 외부에서 삽입하는 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킬 뿐이다.


“그들이 가난한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 명제는 올바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가난한 이유는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역시 올바른 명제는 아니다. 그 사람의 가난함과 그 사람의 인성은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편이 좋다. 상대편의 주장을 정반대로 뒤집는 건 유치한 일이다. 만약에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 가난하면 어쩌겠는가? 내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과도 친일과도 별 상관이 없는 장사꾼이었는데, 해방 후 불법 벌목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 박정희가 그것을 금지시킨 후에는 술과 마작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가족들에게 아무런 재산을 남기지 않고. 그래서 내 아버지는 가난을 상속받았다. 독립운동도 안 한 집안이 가난할 경우 그것은 비난받을 일이 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게다. 그렇다면 굳이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고,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필요는 무엇인가?


어쩌면, 저런 식의 ‘선량한 관념’이 ‘선량하지 못한 실재’를 만났을 때, 그 대상을 더욱더 경멸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일찍이 “바보의 판타지”를 분석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원문은 바보의 판타지  )


타자를 신비화하는 것 역시, 타자를 응대하는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바보'의 모습이 이상화되기 시작할 때, 나는 말아톤의 초원이와 바보의 승용이를 좋아하면서도 현실세계의 바보들을 경멸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바보'가 그렇지 않다면 어쩔 것인가. 우리 삶에 훈훈한 감동과 새로운 의미를 전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수치와 비루함과 회피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면? 그냥 '차별'을 정당화해버릴까?


이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가난한 사람들이 윤리적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추앙하는 건, 현실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게 애써 위안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가난은 죄’라는 부자들의 논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가난한 이들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면, 반대편에 있는 부자들은 당연히 친일파의 후손으로 형상화된다. 드라마에서 그렇게 드러내진 않았지만, 홈페이지의 캐릭터 설정집에는 그 비슷하게 나와 있다. 드라마에서 나온 것만 봐도, 부자인 이소란(왕빛나)의 아버지 이세도는 젊은 시절 부정한 짓을 해서 돈을 번 사람이다.


<메리대구공방전>에 나오는 부자들은 불안하다. 자신이 윤리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불안을 봉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략을 꾸민다. 박흥복이 강대구의 친아버지라는 걸 안 이세도 회장은 강대구로 하여금 자기 자서전을 쓰게 하고, 그 자서전에서 강대구의 아버지 ‘리키박’을 욕하게 함으로써 복수(?)를 하려고 한다. 물질만을 아는 부자들은 불안하고, 꿈과 정신적 가치를 아는 메리 대구는 안정되어 있다. 적어도 이 드라마는 그렇게 말한다.


억지로 부자와 빈자의 스탠스를 맞추려 든다는 느낌이 든다. 김승연 회장이 평소에 자신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까? 글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물론 꿈이 없는 이소란이 꿈을 가진 황메리를 부러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집안 대 집안의 문제로 치환시킬 때, 이 사건은 단지 개별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드라마가 부자와 빈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부잣집 자식들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기회도 더 많고, 꿈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자원도 아낌없이 지원받는다. 그런 사실을 드러내면, 우리들의 꿈은 너무 비참해지는 것일까? 그래서 그 점을 숨기고 우리의 꿈을 그들이 부러워하고 있다고 치장해야 했을까?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거짓 위안이 아닌가?


메리가 자신과 달라지는 듯한 대구를 껴안고 “우리가 어디 실력이 없어서 성공을 못하냐. 타협을 안 해서 그런 거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드라마에 어색하게 삽입된 그 거짓위안의 주제의식을 절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디 그 대사가 “재능도 없고... 직업도 없고... 남자도 없고... 돈도 없고...”라고 한탄하다가 허탈한 듯 웃어제끼는 여자아이의 대사란 말인가. 사실 강대구와 황메리에게 타협할 기회가 주어진 건, 순전히 이세도와 이소란 부녀가 그들을 질투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이 지식인들을 매수하려고 했던 건 지식인들에게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는 지나버렸다. 부자는 굳이 지식인을 매수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의 말이 지식인의 말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권력자든 부자든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시대. 이세도와 이소란 부녀가 강대구와 황메리를 질투한다는 건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러한 질투가 존재한다면 황메리는 “우리가 어디 실력이 없어서 성공을 못하냐. 타협을 안 해서 그런 거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2007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내게 저 대사는 너무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들린다. 부자는 빈자를 두려워하지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우리를 경멸한다. 혹은 전혀 생각하지 않거나. 그러므로 우리의 자존심은 경멸받는 것을 인정한 다음에 나오는 자존심이라야 한다.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는 자존심이 유지될 수 없다.


이 위안의 구조는 친일파의 자손들이 대한민국을 건설했고, 도덕성의 첫단추를 잘못 꿰어 나라가 이 꼴이 되었다는 현정권과 민족주의 사학계를 포괄하는 감성주의자들의 구조와 일치한다. 그들의 주장에 전혀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면은 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구체적인 해법을 말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친일파 청산을 안 했기 때문”이라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민족주의 역사관의 축소판이 <메리대구공방전>에 제시되어 있다. 이 역시 너무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 것이며, 이를 통해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기만하는 논리다. 나는 우리의 삶을 긍정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다.     


참고 : 드라마틱 <메리대구공방전> 1-4회 포인트 리뷰  클릭
                                                   5-8회 포인트 리뷰  클릭
                                                   9-16회까지는 개편으로 인해 포인트 리뷰 없음.



P.S 드라마틱이 월간지로 개편되었다. 사실 이 주제로 드라마 스코프를 쓰고 싶었으나, 월간지 개편하면서 잡지가 나오는 날짜가 묘하게 <메리대구공방전>의 종영 이후가 되어버려서 쓸 수가 없었다. 간단한 원칙 : 잡지에 나오지 못한 이야기는 블로그에 나온다.  


ghistory

2007.07.20 01:47:37
*.140.16.105

'문어체 마초' 란 무엇인가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에 질문드립니다.

하뉴녕

2007.07.20 06:21:30
*.176.49.134

드라마에 나오는 말 아니구요. 그냥 "문어체를 사용하는 마초"라는 뜻이죠. 일전에 "문어체 남성의 항변"이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의 맥락에서 이어지는 부분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굉장히 생소한 용법의 단어가 아니라면, 단어의 의미는 저자가 아니라 맥락에게 물어보는 게 더 간편하고 정확합니다. 그저 일차적인 의미를 알고 싶다면 저보다 국어사전이 더 정확할 것이구요.

ghistory

2007.07.20 01:49:22
*.140.16.105

그러고보면 강만길 영감 많이 망가졌죠...

마녀

2007.07.20 10:35:51
*.240.211.172

처음 시작은 나름 신선했는데.. 이야기가 어느 날 갑자기
산으로 가더이다. 중반 이후로는 급통속적인 전개로 이루
어지는데.. 한국 드라마의 한계를 보는 듯해 신선도가 좀
떨어지면서 저는 급냉각 모드로 전환이 되어.. 재방 때나
지나가는 식으로 잠깐씩 훑어보는 수준으로 떨어지더이다.

처음 시작했던 그것만 잃지않았으면.. 이런 아쉬움은 남아
있네요..

하뉴녕

2007.07.21 03:52:51
*.176.49.134

흐음 하지만 저의 경우는 그렇게까지 큰 불만은 없습니다. 사실 신선하게 시작하는 것보다, 신선하게 끝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거든요. 하다 못해 <환상의 커플>만 해도 마지막엔 정통 멜로가 되었잖아요.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았구요.

<메리대구공방전>도 가령 <쩐의 전쟁> 생각하면 그 정도라도 결말 맺어준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다만 저는 제가 동의할 수 없었던 작품의 한 요소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이지요. ^^;;

kritiker

2007.08.05 01:29:37
*.138.237.212

"재능도 없고... 직업도 없고... 남자도 없고... 돈도 없고...”
저 대사 꽂혔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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