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말하지만 한겨레에 좋은 기사, 좋은 칼럼 많다. 우리 운동권들 포함해서 일부 인사들이 한겨레는 더블민주당 기관지 아니냐 라고 할 때가 있는데, 난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건 정말 할 말 없지 않냐 싶을 때가 있는데, 이런 글들이 나올 때다.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통치행위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망망대해에서 국가의 침로를 정하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각각의 정부가 절박한 상황과 한정된 정보 속에서 고심 끝에 판단하고, 이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 추진에 도움 되는 쪽으로 해석했다고 처벌하면 역대 정부 담당자들의 반 이상은 쇠고랑을 차야 한다. 외교 행위의 절반 이상은 안타깝게도 벌어진 현상과 내려진 결정을 자국에 유리하게 해석해 설명하는 ‘분식’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전임 정권의 과도한 대응(합의를 주도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큰 고초를 겪었다)으로 한-일 관계는 파탄 났고, 그 후과가 아직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 서 전 실장의 처벌은 남북 관계와 한-중 관계 등에 몇배나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하노이 파국’ 이후 우린 길을 잃었고, 이를 만회하려던 이 앞에 엉뚱한 ‘망나니’가 칼춤을 추고 있다. 서 전 실장에게 잘못이 있다면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검찰 정권은 겸손해야 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71281.html
섣불리 단정하긴 어렵지만 영장 등을 통해 드러난 서 전 실장 혐의를 보면 이게 법의 잣대를 들이댈 일인지 의문이다. 희생된 이아무개씨가 월북인지 아닌지, 정부가 피살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는지 여부는 당시 대북 첩보, 남북 간 채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외교안보적 정무 판단에 속한다. 무 자르듯 법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서 전 실장 구속이 단순히 서훈 개인에 대한 단죄일까?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은폐를 주도했다며 개인 비리 식으로 몰아가지만 대북 관련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판단을 주도할 순 있지만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결국 서훈 구속은 문재인 정권 대북정책에 대한 단죄인 셈이다.
서훈 구속은 우리 외교를 우리 스스로 짓밟는 짓이다. 남북 대화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미·일 우방들도 신뢰한다는 북한통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짓밟는 나라가 또 있는가.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71570.html
그러니까 당시 문정권의 판단과 대응은 통치행위고 전문가를 희생하는 것은 국익 훼손이라는 논리를 세련되게 써놓은 것인데, 이 분들은 지금 혐의가 뭔지 모르거나 알면서도 일부러 눙치고 있다고 본다.
뭐라고 할까봐 먼저 분명히 하는데, 나는 ‘과정에 있어서 다른 범죄 혐의가 없다면’ 문정권의 당시 판단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는 편이다. 자진월북 판단 있을 수 있다. 자진월북이든 표류든 북한이 우리 국민을 살해하고 시신을 소각한 것 자체가 그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 이전의 과정이 이 행위의 정당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정부는 해안에 도달한 공무원을 북한이 돌려주리라 생각했을 거다. 코로나 관련 극단조치는 중국 국경에만 적용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 점은 안이한 대응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 사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다만 후속조치에 있어서는 북한이 공동조사 요구에 사실상 불응하는 상태를 방치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유가족을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크게 잘못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점도 정치적 평가의 대상임이 맞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 당국자가 하급자에게 의무없는 일을 시키거나(은폐/왜곡) 강제하거나 또는 월권을 하였다면 그것은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판단 자체가 아니라 그 판단의 과정에서 벌어진 절차적 문제에 대해선 다룰 수 있다는 거다. 물론 나는 그 혐의들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다. 첫째, 이게 은폐하고 싶다고 은폐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언론 보도를 보면 이미 국가안보실 직원들이 진상을 알고 있었다. 둘째,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자진월북’이라도 달라지는 건 없는데 무슨 애를 그렇게 썼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위를 했다면 그건 사법적 판단을 해야 하는 범위에 있다. 이런 구체적인 얘기를 하면 모를까, 문통이 이런 전문가를 정치보복의 대상으로 삼다니 너무해! 이렇게 썼다고 한겨레가 죽 따라가는 이런 모습처럼 된 게, 이게 적절하냐?
앞으로 통계청 얘기도 엄청 해댈텐데, 마찬가지다. 나는 대북문제보다 더 김빠지는 얘기라고 본다. 통계청 얘기… 가계동향조사 표본 얘기, 가계금융복지조사 얘기… 그 때 엄청 해댄 것 다들 기억하실 것. 이걸 통계조작이라고 하면 웃기는 소리라고 본다. 다만 당시 황수경 씨를 날려버리는 과정에 청와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다.
근데 아마 감사원 조사는 이쪽을 치는듯 하면서 다른 쪽으로 가리라 본다. 부동산 관련 구체적으로 뭘 했다는 얘기를 자꾸 하는데, 통계조작=부동산 정책 실패… 이렇게 가려는 수순이 보인다. 아직 구체적 얘긴 아직 잘 모르겠다. 실제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판단을 안해볼 문제는 아니다.
아무튼, 큰 그림에서 인상비평으로 정치보복이다, 이런 평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각 사건, 각 쟁점에서는 사실관계를 갖고 따져 얘기해야 한다. 언론이 정치보복이라는 코드에 휘둘려서 구체적 쟁점과 각론을 놓치거나 외면하는 결과는 최악이다. ‘민주당 기관지’라는 주장의 빌미가 거기서부터 생기는 거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