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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난 분명히 책을 쓰기로 했는데

2020년 1월 10일 by 이상한 모자

먹고 살려다보니 엉망이다. 월요일 두 개의 방송을 마치고 12시가 다 돼서야 귀가해 좀 방황하다가 잠들었다. 화요일 낮에야 일어나 다시 방송 준비를 했고 방송 마치고 돌아와서는 팟캐스트 녹음을 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다시 두 개의 방송을 했다. 목요일 오전에 팟캐스트 편집을 마쳤고, 글을 썼으며, 방송을 했고, 글쓰기 수업을 했고, 집에 돌아와 정신을 잃듯 잠들었다가 허겁지겁 꺠어나 오늘 오전 방송 준비를 했다. 그러고 나니 이 시간이다. 이제 쪽잠을 좀 자고 라디오 방송을 하고 다시 와서 조금 더 자고 다시 방송을 준비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다 보니 도무지 책 작업을 할 여유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일어나는 일들이 쓰려는 책의 주제와 관련이 있어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하는 수많은 오늘날의 현상이 사실은 민주주의 그 자체라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 오전 방송 주제는 이란인데, 이란은 민주국가인가? 우리 기준에선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쨌건간에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한다는 원리를 요식행위로나마 갖춰 놓은 대가를 늘 치르고 있다. 최고지도자는 종신직이고 절대권력을 행사하지만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자신들이 혁명으로 왕정을 엎은 전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느 시기엔 온건파 대통령을 내세워 개혁을 추진하게 하면서도 이를 방해하고, 그래서 개혁이 실패하면 청렴하거나 해서 인기가 좋지만 종교적으로는 강경파인 인물들 대통령으로 내세운다. 이 과정이 있기 때문에 종신-최고지도자라는 독재가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엘리트 지배가 유지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극우포퓰리즘이나 이란 혁명이나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그게 실질적이든 그렇지 않든, 또는 얼마나 대단한 사기꾼이 제도를 농락하고 있든… 어떤 형식으로든 유권자가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체제가 있다면 반드시 이 딜레마에 직면한다. 그럼 우리의 문제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위기를 내포한다.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무신다. 어쩔 수 없는 게 아니고, 그거 맨날 하는 말 있잖아. 우리 모두가 스스로 엘리트가 될 때에야… 프롤레타리아 독재 만세?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민주주의, 이란 혁명

곤 회장님과 이란에 대한 방송 내용

2020년 1월 9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오전까지 22매를 쓰라는 일이 있었는데, 11시에 쓰기 시작해서 1시 2분에 넘겨줬다. 배트맨은 항상 수단이 있기 마련이지.

아래는 지난 일요일 방송 내용이라 시일이 좀 됐다. 하지만 내용은 뭐 계속 똑같은 거 같아서 올림.

1. 

오늘은 영화같은 탈주극 덕분에 잠을 못 이룬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소식인데, 악기 케이스에 숨어서 탈출했다 어쨌다 얘기가 많다 보니 다들 영화 같은 이야기라며 감탄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곤 전 회장이 할리우드 관계자와 접촉했다며 이를 근거로 영화화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스펙터클이 과연 사건의 본질일까는 의문이다.

곤 전 회장이 탈출한 이유는 횡령이나 배임 등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는 사내 쿠데타에 의한 것이고 일본 검찰과 사법부가 여기에 호응하고 있어서 부당하다는 것이다. 일본 검찰은 곤 전 회장의 구속기일이 만료될 떄마다 추가 기소해 구속기간을 늘려왔다. 보석으로 풀려난 곤 전 회장이 트위터에 곧 진실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쓰자 바로 다음날 검찰이 또 추가 기소를 해 다시 구속되기도 했다. 곤 전 회장이 두 차례 보석을 위해 쓴 돈만 우리 돈으로 150억에 달한다.

일본도 검찰의 힘이 세다. 특히 이번 수사를 주도한 도쿄지검 특수부는 권력과 유착한 거악을 잡는 걸로 유명했던 조직이다. 일본 정계에 엄청난 영향을 준 록히드 사건, 리크루트 사건, 사가와규빈 사건 등을 모두 도쿄지검 특수부가 수사했고 전현직 수상의 연루 사실을 밝혀내는 등 큰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2천년대 들어서는 몰락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오사카지검 특수부에서 증거조작 사건이 일어나면서 특수부 무용론이 제기되던 상황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일본 언론들은 검찰의 강압적이고 무리한 수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닛산은 엄밀히 말하면 르노 닛산 연합 구조 안에 있다. 곤 전 회장은 프랑스 르노 출신인데 닛산이 위기일 때 구조조정을 통해 다시 회생시킨 장본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오랫동안 집권해왔기 때문에 닛산의 일본 경영진과는 갈등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곤 전 회장의 혐의도 닛산 측 내부고발에 의한 자체 감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 검찰로 넘어가면서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나오는 얘기를 보면 단순한 사내 쿠데타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올랑드 내각에서 경제산업부 장관일 때부터 르노의 닛산 합병을 주장해왔다. 프랑스 제조업을 살리는 일에 이용하겠다는 명분이다. 이를 위해서 르노의 정부 지분 영향력을 2배로 늘릴 수 있는 차등의결권제 도입도 추진했다. 애초 곤 전 회장은 여기에 저항했지만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회장 임기 연장을 위해 합병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얘기가 있다. 형식상 프랑스 기업이 일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게 되므로 이건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큰일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나 정계 인사 배후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더욱 영화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앞서 곤 전 회장의 탈출극보다 더욱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라고 볼 수도 있다. 하여간 영화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다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영화 같다.

우리가 던져봐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사법정의나 검찰권력의 문제는 전용기를 굴릴 정도의 부자나 유명인이 억울한 일을 당해야 그나마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요즘 검찰개혁이 뜨거운 감자인데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둘째로 정치권력이든 기업이든 자유무역이니 시장원리니 하지만 자기들에게 필요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르노와 닛산의 합병은 양사 노동자들에게는 좋은 일인지, 프랑스인과 일본인의 입장에선 어떤지, 에마뉴엘 마크롱과 아베 신조에게는 정치적으로 어떤 문제인지스펙터클을 떠나서 한 번 생각해보자.

2.

미국과 이란이 또 갈등을 빚고 있어서 잠이 안 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트윗을 썼다. 자신들이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한 것에 대해 이란이 보복을 거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미국 자산이나 미국인이 공격을 받을 경우 이란 내 52개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필 52개로 한 것은 과거 이란이 인질로 삼은 미국인 52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이란 본토에서의 직접적인 군사작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에 심각하다.

미국은 이란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중심으로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제거가 불가피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라크 전쟁 때도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등을 얘기한 일이 있지만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거짓말이 물론 아닐 수도 있으나 100% 믿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옵션을 가능케 한 사건인 바그다드 대사관 습격도 미국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라크 주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불만이 시위로 터져나왔고 이게 이전 사건들과 묶여서 맥락화 된 영향도 클 수 있다. 즉 솔레이마니 배후론은 과장됐을 수 있다는 건데 따라서 아무래도 정치적 영향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선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뭔가 대외정책에서 성과를 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데 그럴만한 것이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자기가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이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국면에 들어왔다. 특히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통제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따라서 중동에서 뭔가 자랑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한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은 고립주의고 오히려 군사개입 가능성을 크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고립주의가 그냥 미군 철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중동의 극단주의 세력을 내버려 뒀다가 9.11 같은 사태를 다시 맞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군사적인 개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려면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중동 전체를 아우르는 평화체제를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주고 손을 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대리인들을 활용해서 지역을 알아서 힘으로 통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방식은 후자라고 볼 수 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끄는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은 이란의 시아파 벨트 전략을 관철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나라를 지키는 임무가 아니라 이란 혁명 즉 정치적 노선을 관철하는 게 주 임무인 군대이다. 공화국과 신정 체제의 결합인 이란 노선에 반대하는 중동 국가는 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와 적대하는 수니파 국가들, 그리고 이스라엘이다. 즉 중동에 이란 대 반이란 전선을 만들고 반이란 세력의 미국의 대리인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본인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결합한 관료제의 특성이 원래 그런 식이다. 관료조직은 지도자에게 선택지를 주고 선택하게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거기에 맞는 정책적 시나리오를 제공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은 국내정치만 고려해 즉흥적으로 선택한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준비된 선택지 중 하나라는 것이다. 즉, 이 배경에는 미국 내 대외적 강경파들의 의도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란 입장에선 굳이 보복을 해서 미국의 전략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이란 정치도 미국에 대한 적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중요한 결정은 종교지도자가 하지만 그 정치적 책임은 대통령이 지는 구조이다. 오바마 정권에서 이란 핵합의는 오랜 제재로 생겨난 경제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온건파 대통령이 결단을 한 것처럼 돼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핵합의가 사실상 파기됐고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는 지금 이란의 현재 체제는 정치적 위기이다. 따라서 대외적으로 강경파적인 노선을 꺼내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 다만 이른바 중재국들을 활용한다든지, 그 수위가 조절될 가능성은 있다.

미국의 반전세력은 석유 문제를 거론하기도 하는데 당장 유가가 상승했고 주식시장도 출렁였는데 이건 단기적 영향이고 장기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 오바마 정권의 해법처럼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려서 석유 수출이 가능해질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다른 산유국들은 피해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이란 전략에는 이런 영향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 미국과 이란이 전면전까지 가느냐가 관심사인데 둘 다 각자 본토를 타격하는 전면전까지 가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다른 지역에서 대리전의 형태로 충돌이 지속될 수 있다. 최근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은 이라크 지역에서 일어났다. 최악의 경우 제2의 이라크 전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이라크 전쟁에 대한 평가가 어땠는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래 동영상은 어젯밤에 KBS라디오에서 떠드는거. 앞에 조금 나오고 없어진다. 버벅대는데, 왜냐면 낭독용 원고가 없다. 앞에 놓여있는 건 일종의 참고자료들. 이런 데서 실력이 다 드러나는 것.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닛산, 르노, 에마뉴엘 마크롱, 이라크, 이란, 카를로스 곤, 트럼프

암울한 연말 방송 내용

2020년 1월 2일 by 이상한 모자

지난 일요일 이런 내용으로 방송을 했더니 도중에 너무 암울하다며 희망을 달라는 청취자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래서 황급히 불행과 불운은 저 불행의 아이콘이 모두 안고 가겠으니 청취자 여러분은 그저 행복하시라… 하고 말하며 수습했다.

1.

오늘은 재벌 소식에 잠이 안 온다. 한 취업포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4년제 대학생 1천여명을 대상으로 매출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가장 취업하고 싶은 삼성과 대한항공이 1, 2위를 차지했다. 최근에 시끄러운 일이 많았는데도 역시 인기가 좋다.

삼성의 경우 최근 자회사 노조 와해 공작 등의 문제로 임직원들이 1심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는데 이 내용 중에는 연말정산 때 직원들이 기부금을 낸 내역을 들여다 보고 혹시 불온단체에 후원을 한 것은 아닌지를 감시했다는 것도 있다. 문건에는 300명이 넘는 직원들을 모니터링해 특별관리 한다고 써있는데 실제로 시행됐는지는 알 수 없다. 들여다 본 것 만으로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대한항공은 경영권 다툼 얘기가 또 말썽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어머니 이명희 씨 집에서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보는 가운데 벽난로용 부지깽이를 휘둘러 꽃병이 깨졌다는 등… 조양호 회장 사망 이후 상황이 경영권 분쟁으로 갈 확률이 높아진 것인데 이른바 오너리스크가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사례가 또 하나 추가될 듯 하다.

이렇게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인데도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 연봉과 복지제도 및 근무환경을 고려했다는 응답이 제일 많았다. 구체적인 순위에 있어선 기업을 다각적으로 평가했다기 보다는 이미지가 많이 좌우했을 것이다. 그래서 순위 자체를 놓고 따지는 것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봐야 한다.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고용이 보장되는, 근무조건이 좋은 직장을 선호한다는 거고 개인정보의 침해나 오너리스크 같은 것은 앞서의 조건보다는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취업난으로 인한 고통이 심각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취업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앞서 조사에서 주목할 대목은 국내 4년제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것, 그리고 선택지가 매출 상위 100대기업이라는 것이다. 만일 중소기업에라도 취업하고 싶은지를 물었으면 어땠을까?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답했을 것이다. 실제로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취업 지연으로 이어지는 게 취업난의 한 축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에라도 취업하라는 권유를 할 수도 없다. 최근 보도를 보면 중소기업에 취업한 경우 이직을 통해 더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길 가능성이 실제로 크지 않은 걸로 나타났다. 즉 첫 직장이 어디가 되느냐에 따라 나머지 인생이 어떻게 되느냐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 직장을 어디로 갖느냐가 더욱 더 중요하다. 이런 상황이니 함부로 중소기업 취업을 권유할 수 없다.

취업 뿐만이 아니고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을 어디로 보내느냐부터가 엘리트 인생이 되느냐 아니면 그저 그런 인생이 되느냐의 갈림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사립초등학교, 국제중학교, 영재고 과학고 외고… 해외 유학… 이 과정에서 탈락하면 실패하는 건데 한 번 실패하면 패자부활전은 없다. 우리 사회가 이런 논리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고 취업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효율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고, 효율의 기준을 나의 이익에 두게 되니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논리가 판을 치게 됐다. 이런 세계관에선 실패한 사람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실패하는 것이고 성공한 사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 중에는 부당한 수단을 써서 성공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게 나의 성공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었다면 우리는 분노하지만 나의 성공과 관계없는 일일 때는 나몰라라 한다.

예를 들면,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위해 무슨 일을 했더라도 우리는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다만 이재용 부회장의 이러한 시도가 정유라 씨에게 말을 사주는 것까지 이어졌다면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재벌의 경영승계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은 입시와 관련된 거고 그건 나의 이익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취업의 영역에서는 말 사주는 것도 관계없기 때문에 아직도 삼성전자 취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슬픈 세상을 살고 있다.

2.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돼서 잠이 오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청년 중년 노년 각각의 삶에 새로움과 즐거움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실적 고통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돈이 있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으면 고통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 직장이나 직업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작아진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야 하는데 이 삶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알 수 없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데 가능성은 계속 줄어가는 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 아닌가 한다.

미래가 예측 가능하면 좀 나을 것이다. 한국 사람은 미래가 예측 가능한 사람과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미래가 예측 가능한 사람은… 매년 임금이 정해진 수준으로 오르고 정년이 보장돼있으며 노후 대책도 분명하고 자식 농사도 잘 돼있는 사람이다. 미래가 예측 불가능한 사람은 직업이 없고 있어도 언제 짤릴지 모르며 따라서 노후 대책 같은 것은 없고 매주 로또 긁는 것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려고 한다.

얼마 전에 신문에 40대 니트족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노동패널학술조사에서 발표한 보고서 내용을 쓴 것이다. 니트족이란 일을 하지 않고 직업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즉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포기했기 떄문에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등… 그런데 이런 상태인 40대가 2018년 기준 거의 20만에 달한다는 것이다. 2000년에는 3만3천명 정도였으니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5배나 늘어났다고 보면 된다.

보도에 의하면 30대 니트와 40대 니트가 양상이 다르다는데, 30대 니트는 20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새로 진입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20대에 취업을 했거나 구직을 하다가 30대에 실직하거나 구직활동이 잘 안돼 니트가 된 경우다. 하지만 40대는 30대에도 니트였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취업에 실패하고 어느 시점을 넘기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최근에 40대 고용률 얘기가 화제였다. 고용관련 통계에서 산업 분류로는 제조업, 연령대로는 40대 고용률이 계속 좋지 않은 상황인 걸로 확인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특단의 조치까지 언급할 정도였다. 기획재정부의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40대 고용률 대책이 있는데 창업 지원이라든가 이런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40대는 그 특성상 새로운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기 쉽지 않아 재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게 잘못하면 그렇잖아도 상황이 좋지 않은 자영업자 양산으로 갈 수 있는데다, 40대 니트 이런 부분에선 대책이 안 된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고용대책에만 초점을 맞추면 해결이 안 된다. 좀 더 예측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줘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갖든 또는 직업이 있든 없든 최소한 삶의 유지가 가능한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즉, 사회안전망이 강화돼야 하고 복지제도가 확충돼야 하는데, 이걸 원론적으로 말하면 다들 동의하겠지만 세금 문제나 이런 쪽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쉽지 않다. 그래서 역시 정치가 중요하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40대 니트, 대한항공,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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