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분당 때 내걸었던 슬로건이 ‘진보의 재구성’이었다. 이것과 함께 얘기한 게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 엊그제 정의당 출신 인사와 대화를 하는데 이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조어가 다시 언급되었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다고, 옛날에 우리(?)가 얘기하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원외로 밀려난 진보가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묻지만, 허무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얘기를 해도 들리지 않고, 수용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다. 이건 ‘왜 내 얘기를 듣지 않느냐’는 항변이 아니다. 대화가 되려면 공통지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진보라는 사람들조차 같은 말을 서로 다른 의미로 말하고 이해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했다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지반이라는 게 사실은 모래성 같은 것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 뒤집어 말하면 그게 제가 늘 말씀드린 ‘반대의 정치’가 진보정치 행동양식의 상당분을 차지했다는 걸 보여주는 거 아닌가 한다. ‘반대’하느라 연대한 것이지, 같은 사상을 나누면서 모인 게 아니었다. 그런 맥락에서 ‘양당에 반대한다’는 맥락에 동조해 진보정당 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일부는 다른 제3지대로 갔고, ‘민주당에 반대한다’는 맥락에 동조해왔던 사람들은 범보수를 ‘비판적’으로 지지하거나 조선일보와의 협업에 나서거나 한다. ‘보수세력에 반대한다’는 맥락이 민주당으로의 유실로 이어진 건 이미 오래된 딜레마이다.
정의당이 망한 얘기를 계속 보고 있는데, 좀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망했다거나 누가 은퇴했다는 거 아니면 잘 기사가 나오지 않는 세력…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만, 어떤 건 핀트가 엇나갔다는 생각도 들고, 또 어떤 건 너무 자기 중심적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래 저래 심란하다.
그 와중에 다음의 대목은 눈에 띄고 공감이 갔다. 내부인이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정의당 공동대표를 지낸 나경채 녹색정의당 양경규 의원 보좌관도 “당의 노선이 형해화(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음)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당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하나로 뭉친 게 아니라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더불어민주당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어요. 누구나 당에서 이탈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이탈의 흐름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는 건, 당의 노선이 그만큼 형해화했다고 봐야 하는 게 아니냐, 당의 노선이 내파됐다고 보는 거죠.”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356.html
그런데 이런 말도, 듣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게 해석될 거다. 그리고 그게 바로 노선이 형해화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구심이 없어졌으니 원심력이 작용하는 거고, 이건 조직뿐만이 아니라 각자의 인식과 경험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다.
개표날 어떤 기자님이 정의당의 몰락 이유에 대해 물어왔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고전적인 틀로 얘기했다.
지금까지 원내의 진보정당이 가져온 득표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전형적인 제3지대 득표 논리. 양당은 부패했고 무능하니 깨끗하고 유능한 정치 세력이 이 공간을 대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게 바로 진보정당이다, 라는 것… 이게 ‘지역구에선 민주당 찍더라도 비례대표는 미래 정치세력인 진보정당 찍어주세요’라는 논리로 이어지는 거다. 둘째는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 대변하는 정당 찍으라는 논리.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과 같은 슬로건이 보여주는 게 여기에 해당한다. 대중운동을 조직하고 유기적 협력을 만들어 내고 이걸 당적으로 조직화하는 일이 여기에 포함될 거다. 이게 전략적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려면 1) 제3지대 득표 논리로 확보한 지지를 2)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 대변하는 정당 찍으라는 득표 논리를 강화하는데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돼야 했다.
그런데 그간의 과정 속에서 원내의 진보정당이 마주하게 된 것은 1)로 확보한 정치적 자원을 1)에 상당분 재투자하는 것만으로도 1)을 유지하는 게 벅찬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물론 2)를 강화하기 위한 이런 저런 노력이 있었던 걸 평가해야겠지만, 하나의 전략적 조직적 흐름으로 수렴해가는 것에는 지속적으로 실패했다. 원내의 진보정당은 경향적으로 1)에 쏠렸으며, 당의 체질은 선거 일정을 무엇보다 우선시하게 됐고 주요 정치인의 흥망성쇠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쪽으로 변해갔다. 거기에는 전체 대중운동의 위축과 분열 역시 기여한 바가 있는데(가령, 당이 노동운동도 옛날같지 않지 않냐며 노동자 표심의 조직이 어렵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원내의 진보정당이 2)를 앞서와 같은 이유로 잃게 되면서 대중운동이 방향을 잃거나 양당에 포섭되는 일에 일조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진 거다.
조국과 선거제도를 맞바꾼 것은(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은) 이러한 과정을 증명하는 결정타였다고 본다. 냉정하게 말해 정의당은 그 때 가장 ‘전략적’이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전략’을 본 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로 정의당은 2)를 버리고 1)에 경도된 상태로 ‘지역구에선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외치며 민주당에 얹혀 사는 게 전부인 세력이 아닌가 하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2)가 없어진 게 핵심이다.
이렇게 1)만 남은 상태에서, 정의당은 대선을 완주해 민주당 지지층에 피해의식을 안겼다(완주를 한 게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버티려면 2)가 필요했다는 거다). 거기다 이번 총선엔 제3지대 세력이 난립했고, 조국당(자꾸 제3지대 얘기하면 이 얘길 하시는데, 저는 이 당을 제3지대 정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이 등장하면서 정의당이 가진 1)의 공간은 완전히 없어졌다. 0석은 슬프게도 당연한 결과다.
어제는 유력 운동권 인사가 포함된 어느 모임에 가서 선거 얘기를 했는데, 역시 막막했다. 앞서 언급한 공통지반의 문제도 있고, 이런 모임의 특성도 있다. 또 정치에 대해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건 평론가든 뭐든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정치에 대한 품평이라는 것에 있어선 결국 다들 전문가일 수밖에 없으며 그 중에서도 뉴비가 짱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진보정당에 대한 얘기도 했는데 ‘공통지반’이라는 면에 있어서 무엇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되었다.
앞서 사상이 형해화됐다는 것이 문제라면, 사상적 구심을 다시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거다. 이러면 무슨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돌아가자! 이런 구호로 들릴까봐 걱정부터 되는데, 그런 얘기가 아니다. 그게 무슨 주의든간에 뭐가 있지 않으면 확장은 커녕 자기들끼리 공감도 대화도 어렵다는 게 핵심이다. 그래서 나는 민주노동당 시절에 얘기했던 ‘민주적사회주의(이념 지향, 여기서는 ‘민주적’이란 게 중요하다)-진보적 구조개혁(이념을 관철하는 방법론)-사회운동적 대중정당(실천을 위한 형식)’의 틀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걸 하나 하나 떼서 말하면 원래 의미와 달라진다. 반드시 하나로 묶어서 말해야 한다. 자꾸 이런 얘기하면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으론 안 된다 이런 얘기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묶어서’ 말하는 게 핵심이다.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가령 앞서 한겨레21의 기사에선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오늘날 ‘진보정치를 지지하는 유권자’도 형해화한 상황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정치외교학)가 한국종합사회조사 누적데이터(2003~2018)를 활용해 2020년 10월 공개한 논문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를 보면 “진보정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 정치이념의 차이는 크게 부각되지 않으며, 정책 이슈 분야에서도 두 정당 지지자들 간 선호 차이는 일부 이슈에 국한돼 나타난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제21대 총선에서 “오히려 진보정당인 정의당 지지자들이 중도에 더 가까운 아이러니한 이념 분포”가 보였다. 양당 혐오에서 비롯된 제3정당 선택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재묵 교수는 “정의당이 옛날보다 다양성 차원을 커버하다보니 지지자들이 분화했다”고 해석했다. “지금 녹색정의당이 환경, 노동뿐만 아니라 젠더까지 커버하다보니 선명성은 떨어지고 당 구성이 분화했을 가능성이 있죠. 특히 정의당에서 보여준 페미니즘 정치 지지층은 전통적인 진보정치 지지층이랑 성격이 달라 재구성된 측면이 있고요. 옛날에는 ‘지민비정’(지역구는 민주당, 비례정당은 정의당)이었잖아요.”
실제로 지역 현장에서 당원들과 소통하는 왕복근 녹색정의당 관악구위원회 위원장도 비슷한 토로를 했다. “녹색정의당의 청년 정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대변해서 무슨 얘기를 딱 해준다’라고 하기엔 모호하게 느끼고 있어요. (…) 그러니까 사실은 확고한 지지층을 정하고 그 주변을 확장해나가는 모습이 돼줘야 하는데 ‘누구 얘기를 대변하지?’가 된 거예요.”
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녹색당과 정의당이 힘을 합쳐도 시너지 효과가 안 났다”며 선명성의 중요성을 말했다. “(진보정치 지지자들은) 양당과 대등하지 못해도 소수의 목소리를 전하는 정당,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가야 할 옳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당을 바라잖아요. 여기서 녹색당과 정의당은 현실을 생각하면 지지자 동원이 어려우니 고민될 거예요. 그러나 예를 들어 ‘노동자 계층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히 가져가겠다’는 식으로 표방하면 군소정당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적 한계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국민이 진보정치에 기대하는 정치는 그런 쪽인 것 같거든요.”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356.html
가령 이념 지향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이게 과거와 같지 않다는 건 현실이다. 이념의 빈곤이라는 건 각각의 지향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하나로 꿰어 맞추는, 세계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틀이 부재하다는 얘길 하는 거다. ‘보다 좌측으로’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하나로 꿰어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걸 계속 얘기하는 게 그래서다. 가령 녹색, 여성 및 소수자, 노동 등의 키워드는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단지 이걸 나열하는 것은 답이 안 된다. 그건 그냥 각각의 분절적 세계 인식(보다 넓게 보면, 무언가에 대한 반대라는 한계)을 하나로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게 앞서 한겨레21 기사 내용이 보여주는 바다.
그럼 뒤집어서, 녹색-여성 및 소수자-노동 등을 하나로 묶는 사상적 재구성이라는 건 불가능한가? 불가능하지 않다. 그건 이미 답이 나와있다. 기후위기를 말하는 이론가들에게 물어보라. 여성주의의 최첨단을 들여다보라.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아는 게 없는 사람이다. 앞서 1)에 가까운 논리로 분절적 세계 인식을 모아 다시 2)의 논리에서 어떤 결합과 조직화 즉 ‘소외된 사람은 소외된 목소리 전하는 당 찍으라’는 논리로 설득력있게 외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이 오늘날의 현실에 맞는 대안적 이념 즉 ‘사회주의’인 것이고(사회주의가 싫으면 사회주의가 아닌 다른 말로 불러도 된다. 뭐라 불러도 상관없다 이제와서…), 그 요체는 더 넓게 더 아래로 내려가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체제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 즉 ‘민주주의’인 것이다.
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래서 그랬다. 중단없이, 계속해야 합니다. 이번 주 신문에서 읽은 글 중에 마음이 와 닿았던 문구는 이거였다.
수십 년에 걸친 여정 끝에 진보정당운동이 다시 원점에 선 셈이다. 진보정당들로서는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애당초 이 운동이 참여자들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을 위한 것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실의와 좌절은 사치다.
하나의 말을 하기 위하여,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한 오늘이 가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해지지 않는 ‘말’에 대해 절망하면서도… 그럼에도 중단없이, 운동은 계속돼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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