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 슈뢰딩거의 토론이 돼버리는 이런 정국에 제목이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인 책을 굳이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압도적인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또 한 분이 서평을 보내오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공유한다. 이 분은 ‘각계에서 좋을대로 써먹는 이대남’으로 본인을 소개하셨다.
대선 정국이기도하고 시사평론가의 책이기도해서 그냥저냥 그렇구나하면서 흘러읽어내리는 칼럼 모음집이나 대선을 둘러싼 현안들의 시시콜콜한 사견과 나열을 예상했다면 매우 큰 오산. 현실의 사안들을 다루면서도 확언을 배제한 조심성이 가득해 보였다. 대개가 단정지을 사안들도 결코 그러는 법이 없었는데 이게 극중주의가 아니라 진영을 넘어서는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과정이어서 더욱 좋았던 듯하다.
뭐 아무튼 책의 내용에 대해 얘길하자면 제목에서 보이는 특성은 한국 사회만의 특징이 아니다. 이건 부르주아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 자체의 특성이다. 저자는 이를 18,19세기 미국 정치나 20,21세기 일본 정치를 세세하게 짚어가면서까지 증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의 특성이 그러하다면 이 사회에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저자는 이를 진자에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진보에 대한 반대로서 보수를 자칭한 정권이 실패하면 진보로 진자가 쏠리고, 보수에 대한 반대를 내세우며 진보를 자칭한 정권이 실패하면 진자는 다시 반대 방향, 즉 보수로 되돌아온다. 진자 운동은 거듭되지만 축이 움직이는 방향은 그대로다.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여기서 진보란 작금의 민주당, 보수란 작금의 국민의힘을 뜻할 것이다. 이에 많은 분들이 반발하며 다음과 같이 얘기할지 모른다. 그들의 진짜 진보, 진짜 보수가 아니라고. 그러한 외침에 저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기에 ‘현재 진보’의 반대로서 ‘진짜 진보’, ‘현재 보수’의 반대로서 ‘진짜 보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이른바 ‘대깨문’과 ‘태극기 부대’가 한쪽 극단을 차지한 채로 중도와 합리를 지향하는 정치와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반대의 정치’라는 하나의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즉 민주당-국민의힘 양당정치를 반대하다는 이들 역시 양당을 반대하는 ‘반대의 정치’라는 규범 하에서 탈피하지 못한 존재들이자 본질적으로는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현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필연적으로 ‘반대의 정치’로 귀결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범지구적 민주주의제도의 역사적 실패에 무슨 대안이 있는가. 저자는 참여민주주의를 얘기한다. 애걔? 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이미 민주주의하면 대의민주제가 기본으로 자리잡힌 현실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며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시도에서의 실패가 중하다고 말한다. “극우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의 동거가 대중적 호응을 얻고 있는 현실에서 대중에게 통치를 맡긴다고 할 때, 이상적 결과는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실패와 파국이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모든 것이 성공으로 귀결되는 낙관적 체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관적 실패 속에서 공동체가 무언가를 남기고 집단이 학습할 기회를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에 있다. 어떤 정파가 집권하느냐보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더 나은 실패를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다.”
참여민주주의하니 생각나는게 바스티안 베르브너의 에서의 한 대목이다. 2013년 아일랜드에서는 연령, 소득 수준, 거주지 등을 감안해 골고루 시민 66명을 뽑아 시민의회를 구성했다. 이중 한 명으로 선정된 우편배달부 핀바르 오브라이언은 동성애 반대론자였고 그에게 동성애자는 곧 섹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민의회를 통해 동성애자인 크리스를 만나 얘기를 나눠보고 너무나 평범한 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후 핀바르는 동성부부 합법화를 위한 헌법 개정에 찬성표를 던졌다. 접촉가설의 유용함을 참여민주주의와 접목해 새로운 민주주의의 일환으로 꾸려나갈 수는 없을까.
또 첨언하자면 김대중-노무현의 진보는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적으로 이명박근혜의 보수는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반신자유주의? 복지사회? 쪽으로 진자의 축이 어떻게보면 정치적 성향과 반대인 것처럼 이동했는데… 이건 결국 국제적 자본문제의 영향으로 진자축이 이동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그외에 앞으로 진자축의 이동을 만들 흐름은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한국은 크게 3가지.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미중 패권경쟁 하에서 둘 사이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이익을 얻던 한국의 애매한 위치문제/절망적 저출생고령화와 지방소멸. 뭐 이정도가 진자축을 이동할 흐름을 만드리라 예상되고 개인적으로 심각한 건 맨후자인데… 다들 천하태평이니 허허… 이 흐름에 이제와같이 그러려니하며 흘러가단 망하는 게 아닐까나. 무튼 대선판 생각도 하기 싫어 읽었는데 더 생각만 많아져버렸다.
중간에 “바스티안 베르브너의 에서의 한 대목이다”라고 돼있는데, 아마 책 이름을 적으셨던 것 같다. 이 양식의 특성상 less-than, greater-than 부호가 안에 있는 내용과 함께 태그처리돼서 없어지는 모양이다. 아마 없어진 책 제목은 <혐오없는 삶>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무튼, 정말 책을 읽어주셨다는 그러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진솔한 리뷰이다.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본인이 쓴 논문을 보내주신 교수님도 한 분 있다. 아카데믹의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보니 여러모로 부족하다. 너른 이해 부탁드리고, 참고할 수 있는 논문을 보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글 쓰면서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의 책이 아니다. 해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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