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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북한 3대세습에 관련하여서는 다소 논쟁이 과열된 측면이 있어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어설프게 글 평판을 하는 바람에 이렇게 뭘 끄적거리게 되고 말았다.


고백하자면, 트위터에서 내가 떠들어대는 말은 다소 전략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재훈 선생의 이 글은 지금 상황에서 내가 굳이 홈페이지에서 코멘트 하지 않아도 될 글이다. 하지만 남의 글에 대고 '괴상하다'는 감상을 덧붙였으니 최소한 그것에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뭘 적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나는 이재훈 선생의 전반적인 시각에 동의하는 편이라는 점을 밝힌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글의 핵심 주장을 훼손할만한 것들은 아니지만 그것이 주변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여러가지 시도는 유의미하다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일단 주체사상이라는 것의 정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주체사상은 종교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다. 주체사상은 통치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이것의 기원은 스탈린주의다. 이 글의 네 번째 문단을 참고하면 이재훈 선생은 스탈린주의 이전의 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 그리고 주체사상을 혼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주체사상이 전면에 등장하기 이전까지 북한의 통치이데올로기는 당연히 스탈린주의였다. 다시 말하자면 스탈린주의를 변형시킨 결과가 주체사상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지도층들이 스탈린주의를 변형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교조주의의 혐의를 씌워 숙청을 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즉, 주체사상은 처음부터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존재하는 통치이데올로기로서 태어난 것이다.


주체사상의 꽃은 수령론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수령론을 비웃고 있지만 사실 수령론의 탄생 역시 스탈린주의적 사고방식에 기초한 것이다. 스탈린주의가 수령론으로 둔갑하는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정통 스탈린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프롤레타리아 당을 통해 정치적 권한을 행사한다. 즉, 당의 결정은 곧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사이고 당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 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배반자가 되는 것이다. 만약 스탈린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당과 의견을 달리 하는 당이 있다면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배반한 당이 된다. 따라서 스탈린주의 국가에서는 오로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당 하나만이 존재해야만 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질문 하나를 추가하면 주체사상이 된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지도한다. "그렇다면 대체 당은 누가 지도한단 말인가?" 김정일의 탁월함은 이 질문에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였다는 점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당을 당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수령이 지도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사실 때문이다. 첫째, 스탈린주의는 한국 진보세력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였다. 둘째, 소위 자주파들중 주체사상에 동의하는 자들은 당연히 스탈린주의자이다. 셋째, 스탈린주의는 소련의 붕괴와 함께 실천적 파탄을 맞았다.


이러한 사실들을 놓고 이제 다시 이재훈 선생의 주장을 되짚어보자. 이재훈 선생의 기본적인 인식은 이 논쟁을 둘러싼 좌, 우의 인사들이 자기 주장만 고집하며 자족하고 살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홍세화 선생의 주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질문은, 그렇다면 도대체 왜 다들 그러한 한심한 인생을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혹시 모두가 비생산적인 논쟁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다들 각자 더 이상 다른 할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즉, 3대세습이 이런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조금 더 정확히 말해서 3대세습을 둘러싸고 NL-PD의 대립이 다시 재현되고 있는 이유는, 스탈린주의 소멸에 대응하는 정치적 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NL은 여전히 스탈린주의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고 PD는 스탈린주의를 포기(당)한 이후에 새로운 전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 NL과 PD가 서로 싸우는 (그리고 한쪽에 보수우익도 자리를 차리하고 앉아있는) 전장의 한가운데에 바로 북한 정권,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파탄난 스탈린주의의 잔해가 텅 빈 구덩이로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정치세력들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이 텅 빈 공간을 대상으로 강박, 히스테리, 도착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각각의 진보정치 참여자들에게 '논쟁의 태도'(폭력적 나르시즘의 극복, 회의, 성찰, 기타 등등..)를 주문하는 것이 도대체 지금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지금 주문되어야 할 것은 박가분 선생이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아마 새로운 좌파적 기획이고 실천이며 전망일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너무 길다. 그래서 나는 이재훈 선생의 전반적인 논지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이 글을 쓰는 행위가 전략적이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글은 일을 하는 중간 중간 사람들을 상대하며 쓰여졌기에 다소 난삽하다. 이러한 점에 대한 이해를 바라면서 향후에 이재훈 선생이 더 좋은 글을 쓰는데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이 글을 기회로 하여 3대세습과 이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정리는 따로 해볼 생각이라는 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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