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와 아파트와 투표율의 문제는 당연히 한국 부르주아지들의 공동체 형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들은 새로 개발된 거주지역으로 이동한 것이고 거긴 대개 아파트가 있었다. 동시에 아파트는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고 이 재테크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부녀회와 기타 등등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한나라당의 지지 조직이고 당연히 종교를 공유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손낙구 아저씨는 천주교와의 상관관계를 특히 말하고 있는데, 천주교는 단일 종파인데다가 조직관리가 충실하니 돋보이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의 예를 들면 그런 종교간의 구분 같은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예컨대 강동구 명일동 일대를 보라. 그 동네 중산층들은 아파트 부녀회에 참석하여 아파트 시세에 대해 떠들면서 종부세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은 후 이번에는 기필코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당선시킬 것을 결의하면서 함께 사이좋게 손 붙잡고 명성교회에 간다. 이 동네에 이사온 중산층들이 다 명성교회 가니깐 거기서 정보교환도 하고 악수도 하고 아유 사장님 오셨어요? 아유, 의원님 얼굴이 더 좋아지셨네.. 헌금도 내고 십일조도 내고 교회는 드럽게 커지고..
△ 님들아 이게 교회임. 이 교회에 딸린 부속건물 등에 대해선 위키백과를 참고. ( http://ko.wikipedia.org/wiki/%EB%AA%85%EC%84%B1%EA%B5%90%ED%9A%8C )
△ 님들아 이게 그 교회가 만든 도서관임. 도서량 8만 2천권.
2.
이런 공동체가 없는 인생 망한 사람들은 당연히 교회도 갈 필요가 없고 부녀회니 이런 걸 챙길 필요도 없고 집값이 오르던지 말던지 상관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충실히 투표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 중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을 찍는 사람들이 '정치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정치의식' 없는 사람은 한나라당 찍는다. 그냥 그건 당연한 얘기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나라당 찍고 젊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좌측에 가까운 사람을 찍는 경향이 있다더라 하는 것도 포함된다. 누가 더 나은 정치의식을 가졌겠나? 한가한 할머니 할아버지랑 바빠 죽겠는 대학생이랑.. 그러니 어떤 정치인들은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 가란 소리를 하게 된 것이다. 잘한 일은 전혀 아니지만.
공동체가 없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사를 맨날 다녀야만 했던 것도 주요한 이유가 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중산층의 '부동산 가격'과 같은, 옆집에 사는 사람과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어떤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 망한 사람들에게 본인의 이권과 관련한 이런 것이 작동하는 유일한 경우가 있는데, 그게 노조다. 내가 산별노조 지역본부의 역할에 대해 운동의 노선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바로 이런 맥락이다.
즉, 장기적인 운동의 노선 문제라는 것이다. 그게 노조가 됐든, 민중의 집이 됐든, 지역화폐가 됐든, 부르주아와 중산층의 공동체에 맞설 수 있는 우리의 단단한 기반을 가지는 것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은하영웅전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보는데 거기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양 웬리의 차이에 대해 잘 나오지 않나. 로엔그람은 정치를 잘해 이미 전략적인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반대로 양 웬리는 정치에 마음이 없어 전술로 임기응변을 하다 남의 뒤치다거리나 하는 신세가 되었다.
진보진영의 처지가 이 양 웬리와 같다. 진보진영은 유력 정치인들의 선전과 혼신의 힘을 대해 짜낸 잔머리의 기교로 단기간의 승부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망을 갖지 못하면 결국 남 좋은 일만 하다가 망하고 말 것이다.
GG
GG
남보다 경제적 여견이 못한 사람들 그리고 속할수 잇는 공동체를 갖지 못한사람들 속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겠지만 그 공동체가 진보진영이라는 다른 큰 범주안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공동체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장애를 가질수 밖에 없을것이다. 계급투표가 뮌디? 하층민을 조직하면 계급이 되나?
주절주절말햇지만 본문의 논지란 단순한거 아닌가?
여러 사회운동의 조직속에서 진보정치적 성향을 더 가진 흔히말하는 강성이 더필요하다는 것이 주장하는 바 아닌가?
애초에 진보 진영에 투표할수 있는 기반을, 정치적으로 이길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보같은 짓꺼리다. 정치는 정치로서 한계가 있는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여러 운동들에 대해서 지도적 역활로 나설수는
없다. 양웬리가 자신의 군사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을 나누어 봤던것은 소극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민주주의 속에서 사는 사람이 지닌 당연한 가치다. 어떤 정치적인 정파나 진영에 자신의 표를 행사하여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면 질수록 오히려 계급투표는 훨씬 더 멀어진다. 한나라당이 공약을 배신했듯 노무현이 그랫듯
지금의 민주당과 민노당 진보신당이 안하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그 얘기를 길게 하기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으니, 다만 선생의 견해를 참고하여 더 깊이 고민을 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더불어, 선생의 입장이라면 촛불집회에 대한 생각도 저와는 많이 다를 듯 한데 제가 그 시기에 썼던 글을 보시면 제 생각을 더욱 잘 알게 되시리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위와 비슷한 얘기라서 새로울 것은 없겠습니다만...
http://weirdhat.tistory.com/13
그런데 저 같은 인간이야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입장이지만, 이미 인간관계가 자기들끼리 꽉 차버린 운동권들은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입니다. 기껏해야 정치인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 아파트 동 대표나 입주자 대표회의 등에 나가는 경우가 다지요. 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늘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형성하는 운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데, 사실 저도 딱히 뾰족한 수가 없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 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