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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커버스토리]우리는 왜 새로운 진보를 꿈꾸는가
2010 02/02ㅣ위클리경향 861호

 

그들은 왜 다른 진보를 꿈꾸는 것일까. 그리고 과거 한국사회의 진보담론을 이끌어 온 386세대와 그들은 어떻게 다를까. 좀 더 근본적으로 그들은 진보를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으며 진보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경향>은 진보의 재구성을 주장하는 20대, 30대의 진보 주창자들로부터 그들이 생각하는 진보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이미지도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패션좌파’ 주장하는 유재영씨

 

그는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기획에 그를 끌어들였다. <88만원세대> 후속작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 실린 대학생 20대 관찰기, 그 가운데에서도 유재영씨(26·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가 주창한 ‘패션좌파론’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한 비판은 날이 서 있었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패션이나 ‘간지’(멋)를 주장하는 당신의 외모는 과연 ‘패셔너블’한가.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보니 너무 무겁고 우울한 것 같아서 내가 균형을 잡아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밝게 써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 가벼웠던 것 같습니다.”

 

<88만원세대>에 투영된 20대의 모습은 우울하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즐겁고 활기차게 사는 대학생도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글에서 ‘좌파’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엄숙하고 진지한 것 대신 유쾌하고 명랑할 것, 빨간색 머리띠와 퀴퀴한 조끼 대신 스타일 나게 빼입어 간지날 것, 불통이 아닌 소통을 지향할 것, 운동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도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등 주장이 ‘패션좌파론’의 요체다.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차인 2008년은 그의 삶에 큰 두 변곡점을 남겼다. 하나는 촛불시위였고, 또 하나는 우석훈 박사와의 만남이다. 촛불시위 전에 그는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 3학년 학생이었다. 운동권은 아니었다. 시쳇말로 ‘아싸’(아웃사이더)에 가까웠다. 그는 광우병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학교 강의 시간과 신촌 지하철역에서 혼자 유인물을 만들어 돌렸다. 4월 말 청계천에서 동방신기 팬클럽 카시오페아와 SS501 팬클럽이 ‘촛불시위’에 나서기 전이었다. 처음 촛불시위에 참여할 때는 사회학도로서 관찰자 입장이었다. “그런데 빠져든 거예요. 저에게 일종의 해방구였다고 할까요. 거기에 가면 즐거웠어요.” 해방구는 전경과 물대포가 등장하면서 공포의 공간으로 변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물대포에 맞서는 스크럼의 맨 앞에 있었다. 경찰 폭력의 수위가 정점에 이르던 6월 28일 그는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같은 학생, 친구, 동생일지도 모르는’ 전경을 때렸다. 괴물과 맞서 싸우다 보니 괴물이 됐다는 좌절감. 방황했다. 그해 가을 다시 행운이 찾아왔다. 학교 강의에서 우석훈 교수와의 만남이다. 우박사, 그리고 친구들과의 인연은 학교 밖으로 이어졌다. “‘밤섬해적단’이란 문화예술 창작집단을 했는데 취지는 ‘한강의 밤섬에서 건너편에 보이는 국회의사당을 노략질하자’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옆에서 일을 돕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멤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의 멤버들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 참여한 20대 학생들이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이들은 생태와 자치를 화두로 한 ‘에코코’라는 이름의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를 결성한다. ‘차도로 사용되는 학교 내 도로를 뒤엎고 흙길로 만들자’는 등 이들이 내건 생태공약들은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패션좌파론’에 대한 비판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살롱좌파라든가 강남좌파 등 그런 비판들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다른 것을 한번 상상해 보고 싶었어요. 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이 바뀌고 이런 것도 중요할지 모르지만 일상생활 속 삶을 변화시키는 상상력의 혁명, 그런 명랑한 변화를 꿈꾸고 싶습니다.” 아직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모르겠다. 당장은 1000만원에 육박하는 학자금 대출 상환이 현실적인 짐이다. “솔직히 인터뷰해서 또 욕이나 먹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스스로 다짐합니다. 나 자신을 잃지 말자. 나에 대해,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하자. 진보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회색 경계서 고민하는 사람 늘었으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강조 민노씨

 

민노씨의 블로그는 전문적이다. 이슈에 일단 관여하면 집요하게 파고든다. 항상 ‘팩트’가 판단 기준이다. 판단은 동시에 날카롭다. 근처만 가도 베일 것 같다는 느낌이다. ‘민노씨’라는 필명 이외에 개인정보는 블로그 상에서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강성모씨. 30대 중반의 노총각이다. 나이를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 역시 있다. “물론 문화관습도 있고 예의도 지켜야겠지요. 하지만 나이 때문에 부정적인 선입견이 생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좀 더 내밀한 실존적 관계를 맺음에 있어 나이가 강력한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것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민노씨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그가 이 ‘브랜드’를 만든 건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기 전이었다. 진보정당의 지지자였지만 당원은 아니었다. 2005년에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한겨레신문사에서 개설한 필진네트워크에 참여했다. 블로그에 열중하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연애의 실패’였다. “한국 사회에서 평균적인 삶의 양식을 따르기보단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글을 쓴다든가 영화를 만드는 거, 그런 것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인생이 수월하게 풀렸으면 좋으련만 연애조차 뜻대로 안됐어요.”

 

그가 밝힌 개인사는 확실히 남다르다. 대학생 시절에 학생운동은 거리를 뒀다.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우연하게 접한 것이 ‘노동해방문학’이었다. 박노해씨 등의 사상을 접하면서 그때까지 알고 있던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운동은 후체험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한민국의 ‘비극’은 우파를 우파라고 부르지 못하고 반사회적 집단을 반사회적 집단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파 리버럴’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주의자를 좌파로 몰아가면서 ‘상식적인 우파 보수’가 존립하기를 어렵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강남좌파’ ‘패션좌파’가 속성적으로 겹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 친구들이 분명히 자기 욕망이나 사회구조를 고민하는 것이 없지는 않지만 과시적이고 경쟁적이고 비교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지적 액세서리 추구, 지적 ‘된장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보는 멋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따라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는 ‘간지’ 내지 패션좌파의 논리는 진보의 포지션이라기보다 상식적인, 자유주의적 우파에 더 맞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긍정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패션좌파라는 주장이 가벼운 상징이든 문화적 마케팅 수단이든 선거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계층적·계급적 이해를 극복하는 데는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사실 이명박 정권에서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의 상징 전략은 촌스럽기 그지없어요. 정치적 콘텐츠는 몰라도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전 대표)나 친박이 이미지 메이킹 측면에서는 뛰어나잖아요.”

 

대중문화에서부터 정치·경제·법률까지 여러 이슈를 다루지만 민노씨의 관심은 상당 부분 미디어에 쏠려 있다. “이전에는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같은 진보파 매체들이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조·중·동을 보수라고 인정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고요. 진보 매체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였는지 아쉬움도 컸습니다. 내가 내 주변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들, 그 부족 부분을 눈꼽만큼이나마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블로그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블로그를 대화시스템이라고 봅니다. 이런 대화시스템이 시민사회에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근간으로 자리 잡는다면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민노씨 자신으로 관심을 돌려보자. 그는 스스로 자신의 포지션을 어떻게 규정할까. 진보 또는 좌파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저는 저 스스로 속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속물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요. 저는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포르노를 즐겨 봅니다. 그래서 포르노 합법화를 지지합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상업적 이득을 취하거나 반인격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는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흑백을 가리면서 먼저 어떤 사람의 의견을 재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전적으로 한쪽의 입장만 옳은 이슈나 쟁점을 본 적이 없습니다. 회색의 지점에서 고민하고 성찰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진보의 이상 아닐까요.”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진보는 멋있고 신나야 한다”
‘간지진보’ 역설하는 허지웅씨

 

허지웅과 개인적 인연은 오래됐다. 아직 그가 대학생이던 시절부터다. 한 사람의 지적 여정을 비교적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행운이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에서 영화 주간지 <필름2.0> 기자, 남성잡지 <GQ>와 영화 월간지 <프리미어> 기자를 거친 그는 현재는 전업 저술가다. 그는 젊은 층이 즐겨 찾는 오프라인 신문과 잡지에서 ‘잘 팔리는’ 필진이다. 인터넷에서 영향력은 더 크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그의 글을 놓고 종종 큰 논전이 벌어지곤 한다.

 

1월 하순 전여옥과 유재순의 표절 시비에 대한 그의 ‘코멘트’도 논란을 일으켰다. 비판자들은 과거 그의 초짜기자 시절 ‘실수’를 들춰냈다. 그는 자기 블로그에 ‘창피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그 사건의 내막과 사과를 올려놨다. ‘창피한 거’에 대해 물어봤다. “많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훈련병을 괴롭힌 일도 창피하고, 하다못해 영창 가서 자위하다 걸린 것도 창피해요. 지금도 악몽으로 자주 등장하고요. 2007년 대선 때 한때 문국현을 지지한다고 써 놓았는데, 금방 철회했지만 당시 그 말에 자신감을 가진 것도 창피합니다.”

 

그가 오랫동안 블로그 공지에 올려놨던 ‘진보간지’에 대한 글도 파란을 일으켰다. 인용해 보자. “…요컨대 진보는 멋있는 것이어야 한다. 신나는 것이어야 한다. 간지 났으면 좋겠다. 확성기 틀고 물대포 맞아도 헤헤 좋을 정도로, 열사가 아닌 사람들이 스스로 좇고 싶은 이미지이길 바란다. 당위론을 박차고 나서야 한다. 패션이라도 좋다. 전략이 필요하다.”

 

여진은 지금도 계속된다. 비판자들은 유재영으로 대표되는 패션좌파-세대혁명론자가 이 ‘진보간지’의 아류라고 봤다. 허지웅은 다시 블로그에서 패션좌파론을 비판했다. “진보간지를 이야기하면서 패션좌파에 대해 언급한 것은 당연한 반어고 전략적 역설이다. 당위에 치우친 1등급 진보 인증을 분쇄하고, ‘들어는 봤으나 알 필요는 없는’ 진보진영 게토화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자는 이야기다. 누가 시키거나 부르짖지 않아도 닮고 싶고 알고 싶은 진보가 되자는 이야기다.(중략) 옷 잘 입어서 새로운 좌파가 되겠다는 생각은 심지어 코미디다.”

 

맥주잔을 앞에 놓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진보간지’를 말하는 것이 머리띠 두르고 빨간 조끼를 입는 걸 우습게 조롱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새로운 것을 하자고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과거를 옹호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모든 것을 정확하게 개별화시켜서 구별해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또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른바 우리가 학습된 방식으로 진보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최소한 수준의 정의와 합리에 근거해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부정적 유산은 이분법이다. 예를 들어 신에 대한 입장이 유신론과 무신론만 있는 건 아니다. 이신론과 범신론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토론은 이 두 가지를 건너뛰고 진행된다. 모든 것을 ‘이분법화하는 경향’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다. 그는 패거리 짓기나 ‘조직’에 반감을 갖고 있다. 존재적 고민이다. 그의 글쓰기는 군을 제대한 뒤부터 시작됐다. “조직 논리를 따르면 사람은 반드시 희생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희생할 당시에는 숭고한 일이라고 부추기는데 막상 그후 조직은 개인을 절대로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민주대연합이니 비판적 지지니 하는 ‘수사’도 이 조직 논리의 연장이다. “사실 진부한 이야기인데, 아니 진보가 아닌 사람들과 어떻게 진보대연합을 하자는 겁니까.”

 

허지웅이 말하는 ‘진보간지’는 삶과 정치적 행위의 방법론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로서 우리나라에 사는 국민 대다수가 자기 주머니를 불릴 수 있는 가장 유일하고 효과적인 수단이 결국은 진보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반문한다. “내가 어떤 정당을 지지해야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사고하면 당연히 답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요지는 자신이 속한 계급과 계층에 따라 가장 부합하는 정책을 갖고 있고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상식이 아니냐는 되물음이다. 여기서 스스로를 객관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가장 섬뜩한 것은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아름다운 가치로 포장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진심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기 자신의 진심이 뭔가를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합니다. 정책은 아니더라도 창피한 게 뭔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창피함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역설적인 건 창피를 모르는 사람들이 오래 살아요. 설령 기후변화로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창피를 모르는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만 알아도 세상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는 어떻게 살 생각일까. 지난해 초에 펴년 자전적 에세이 <대한민국표류기>는 1만 부 넘게 팔렸다. 전업 저술가로 수입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딱히 부족한 것도 아니다. ‘소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가’라는 주제의 책을 다른 사람들과 쓸 예정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자본주의에서도 대안적 삶 가능”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저자 한윤형씨

 

한윤형씨(27)는 “글쟁이라면 자신의 생활이 아니라 생각을 글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굳이 캐물을 필요도 없었다. 개인사에 관해서라면 그는 이미 비교적 소상하게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지난해 출간된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에서다.

 

2000년 어느 여름날에 그는 ‘커밍아웃’했다. 그해 8월 어느날 조선일보 기자들이 대전의 집으로 그를 찾아왔다. 기자들은 조선일보와 서울대가 공동 주최한 ‘제1회 고교생 논리논술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그를 인터뷰하고 싶어했다. 그는 기자들을 ‘문전박대’했다. 부모는 그날 처음으로 아들이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는 유일한 고3 수험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1 때 진중권과 강준만의 책을 만나 정치와 시사평론에 빠져든 한씨는 1999년부터 월간 <인물과 사상> 홈페이지에서 ‘아흐리만’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며 안티조선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터였다. 논술대회에 나간 것에 대해서는 수험생이라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해 온 자신이 인터뷰 기사의 주인공으로 조선일보 지면에 등장하는 것을 그는 논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안티조선’이 곧 좌파의 동의어는 아니다. 안티조선 운동에는 ‘노사모’와 좌파가 섞여 있었다. 대중에게 ‘안티조선’이 ‘노무현 지지자들’로 각인되는 곤혹스러움을 겪은 뒤 민주노동당 당원이던 한씨는 2002년 소수 좌파들과 함께 안티조선 진영을 떠났다.

 

그는 ‘한윤형=좌파’라는 규정에 대해 부인하지도 확언하지도 않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핵심이다. 어떤 이들은 나를 좌파라고 부르고, 또 다른 이들은 나를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 이념 지형에서 진보신당은 좌파로 분류된다. 진보신당 당원이라는 점에서는 내가 좌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런 식의 자기 규정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한윤형은 새로운 유형의 좌파인가.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세대론적 구분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한씨는 “상업적인 의도도 있고, 이전 세대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다음 세대에게 투사해 희망을 주려는 의도도 있다”는 점에서 세대론적 구분에 대해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이다. 그가 보기에 중요한 건 앞세대와 뒷세대를 구분하는 일이 아니라 변화한 시대에 맞서 좌파들이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을 어떻게 설득해 내느냐다.

 

“이전 좌파들은 텍스트에 기반해 좌파적 세계관을 형성했다. 지금 좌파는 마르크시즘 텍스트의 자식들이라기보다는 좀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지향을 띠는 사람들이다.” 진보정당 당원이라고 해서 모두 좌파인 것도 아니며, 이와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한씨가 생각하는 진보는 “능력보다는 인간의 본원적 필요에 부응하는 분배를 추구”하면서 이런 지향점을 토대로 더 나은 세상을 일구려는 노력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접근에서도 열린 자세를 강조하는 듯했다.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곧 그 체제를 당장 뒤엎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대안적 삶을 조직하고, 이런 흐름이 거세지면 자본주의 극복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다.”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도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게 가능하다면 굳이 시장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반 대중의 정서와 유리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씨는 “지금 중대한 문제는 진보정당이 대중에게 착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정치 이야기와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 이야기가 혼재한다. 그는 스타리그 마니아다. 케이블 채널에서 중계하는 온라인 게이머들의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월드컵 경기처럼 즐긴다.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좌파라니 형용모순처럼 느껴질 법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이념이나 윤리가 아니라 취향으로 분절돼 있다. 이런 실정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취미 없이 사람들에게 접근하긴 어렵다. <개그콘서트> 이야기로 시작해 정치 이야기로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한씨는 졸업을 앞두고 휴학 중이다. 졸업 후 진로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 쓰는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미 두 권의 책을 냈고, 지금은 안티조선 운동사를 다룬 책을 쓰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이명박 정권 이후 진보 진영의 앞길을 물었다. 그는 “MB가 임기를 못 채울 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의 시대가 2012년 이후 5년 더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가정을 하고 생존 전략을 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인터넷도 현실세계와 다를 바 없다”
‘디지털스타일리스트’ 이요훈씨

 

이요훈씨는 자신을 ‘신좌파’ ‘개량주의자’로 일컫는 개념 꽉 찬 블로거다. 그는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내용을 정리해 올려놓는 차원에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개인적인 일종의 정보저장창고 역할”이라고 그는 말한다. 다만 혼자 보지 않고 함께 보려고 쓰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통하는 ‘블로거’라면 대부분 10대나 20대를 떠올리는데 그는 30대이면서 자유주의자다. ‘이글루스’에서 블로거명 ‘자그니’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블로그는 주로 제품을 써 보고 남기는 리뷰나 책을 읽고 남기는 정보성 글이 차지한다. 그는 색채부터 남다르다. ‘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하자’라는 블로그 제목부터 강한 인상을 풍긴다. 그는 “많은 블로거가 나를 ‘좌빨’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진보의 색채를 따로 구분짓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행동양식을 추구하는 진보 세력을 통틀어 ‘좌파’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뉴타입좌파’로 표현했다.

 

반면에 그는 내실은 없는 진보를 껍데기, 액세서리로 여기는 사람들을 ‘패션좌파’로 각각 구분지었다. 그는 “1990년대 미국의 보수 논객들이 1960년대 히피 세대가 미국의 문화적 지도층에 서자 그들을 ‘리무진좌파’라고 부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즉 ‘생각은 좌파처럼 하는데 돈은 우파처럼 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인터넷상 보수와 진보를 어떻게 나누냐는 질문에 “현실세계와 다를 바 없다”고 단정했다. “이념적인 것보다는 각자가 옳다고 믿는 상식, 서로간의 견해 차이로 나눠진다”고 풀이했다. “인터넷 이용자가 젊다 보니 진보적 색채를 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다 맞는 말은 아니다”면서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보수적인 사람도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 집권 이후 반이명박 정서가 뚜렷해진 것만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법원의 MBC <PD수첩> ‘무죄’ 판결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은 강경했다. 그는 “<PD수첩>무죄는 예상된 결과였다”면서 “애당초부터 수사가 필요 없는 사건을 무리하게 넘겨짚은 검찰의 자충수”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은 시범케이스로 <PD수첩>의 도덕성을 흔들고 싶었겠지만 결국 <PD수첩>의 신뢰성만 더 높여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스스로를 디지털스타일리스트라고 불려지길 원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프리랜서 작가 또는 자유기고가다. 주로 온라인 상의 콘텐츠를 작성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YTN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고정 게스트를 맡고 있고, 인터넷 문화예술 신문인 컬처뉴스와 월간 <넥스아트>의 편집장을 지냈다. 지난해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특별히 취직할 생각도 마음도 없다.

 

<서상준 기자 ssjun@kyunghyang.com>

 

“인터넷 통해 스스로 좌파 학습”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저자 김민하씨

 

지난해 11월에 출간된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의 저자 김민하씨(28)의 이력을 보면 흔히 말하는 새로운 좌파의 특색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게임, 인터넷, 컴퓨터, 음악에 빠져 살았던 오타쿠(특정 분야나 취미에 열중해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였다. 6살 때 친척 집에 있던 ‘대우 재믹스 브이’라는 게임기를 시작으로 온갖 게임을 섭력한 게임의 지존이다. 어린 시절에 배운 피아노는 수준급이며, 록밴드에서 기타를 칠 정도의 음악 실력도 있다. 모뎀을 이용하던 시절에는 나우누리 통신을 사용하면서 컴퓨터에 빠졌고, 온라인에서는 펄펄 난 ‘키보드 워리어’였다.

 

오타쿠 김민하씨가 현실 세계로 나온 것은 우연한 기회에 본 딴지일보였다. 딴지일보에서 진보 세력의 글을 읽을 수 있었고, 그 글들이 그의 시선을 인터넷 바깥으로 돌리게 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김규항의 <B급 좌파>, 유시민의 <Why Not?>, 노암 촘스키의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등의 책을 찾아 읽으면서 그는 좌파로 변해 갔다.

 

민주노동당 당원, 덤프연대 상근활동가, 진보신당 경기도당 정책국장까지 그는 어느새 운동을 업으로 삼는 활동가가 됐다. 김씨는 “2006년 덤프연대에서 활동가로 일하기 전까지 인터넷에서 글을 쓰고, 토론하고, 공부하는 과정이었다”면서 “덤프연대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운동가로서 살아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그는 27개월 된 딸의 아빠이자 사회운동을 하는 아내의 남편이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교 3학년(휴학 중)이고, 수원의 한 구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 중이다.

 

오타쿠의 삶을 살아온 이력이 활동가로 살아가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까. 김씨는 “전문적으로 운동을 배운 것이 아니어서 활동할 때 어려웠다”면서 “내가 회의에서 주장하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자신이 없을 때도 있었다. 다만 직관력이 좋아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지적할 때가 많았고, 그런 것이 활동할 수 있는 자산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활동가들은 김씨처럼 다양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좌파의 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패션좌파’라는 단어까지 나온다. 김씨는 “나는 좌파를 이 사회의 근본적인 지점을 바꾸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이해한다”면서 “나처럼 다양한 이력의 좌파가 나오는 이유는 사회적 구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대학이라는 좌파 진지가 해체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선배의 지도가 없어도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어서 다양한 좌파가 나올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고민은 2년 뒤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가장과 운동가의 삶을 균형있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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