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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100키로

2008.06.16 02:01

이상한 모자 조회 수:5644

뭘 한거야 도대체.jpg

요즘 내 삶의 거의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전자 악기들의 합주가 끝나고, 치킨과 맥주를 마시고 남은 치킨을 싸들고서 택시를 탔다.

6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택시 기사가 묻는다.

"몇 키로예요?"

나는 몸무게를 묻는 질문이란걸 미처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택시 기사의 심상찮은 눈빛을 보고 무슨 질문인지 깨닫는다.
 
"아.. 몸무게요?"

택시기사 아저씨? 할아버지? 가 대답한다.

"꼭 사위를 보는거 같아서..."

사위라... 사위란건 역시 뭔가 남다른, 심상찮은 단어다. 택시기사가 말을 잇는다.

"우리 사위가 그렇게 뚱뚱해요. 몇 키로나 돼요?"

나는 당당히 대답했다.

"허허허, 백키로요."

이 '장인어른'에게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어떤 말을 할지를 아주 잠시 고민했다. 장인어른들은 다 그런건가? 어디가서 꼭 사위 이야기를 할 것 같다. 반은 자랑스런 표정으로, 반은 성에 안 차는 표정으로.

이번엔 내가 말을 꺼냈다.
 
살을 쪄보니까.. 옛날엔 이렇게 안 쪘었거든요. 근데 쪄보니까, 뺄라면 체질을 바꿔야 돼요."

택시기사가 묻는다.

"아니 체질을 어떻게 바꿔요?"
"제 때 자고, 제 때 일어나고, 운동을 해야 됩니다. 근데 이게 직업적으로 안 되면 참 힘들더라구요."

노동조합에서 일하던 시절, 중앙위원회니 대의원대회니 하는 회의가 있으면 회의자료를 만드는 일을 맡은 나는 꼼짝없이 야근을 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부서에서 자료가 넘어오지 않으면 회의자료가 안 되니까. 한 번은 회의 당일 까지 자료가 안 넘어와서 밤을 꼼짝없이 새고 그 날 오후 2시 께에야 작업을 끝내고 사무실 의자에 앉아 새우잠을 잤던 일도 있다. 그러다보니 신입생일때 70키로 후반대였던 몸무게가 십이지장궤양과 노동조합 상근을 거치고 나서는 95키로에 육박하게 됐다. 이게 웃긴게, 일을 안 하고 집에만 눌러 앉아 있으면 살이 빠진다. 왜? 어쨌든 규칙적인 생활이 되거든..

"그러게 우리 사위가 작가인데요.. 아, 자기는 자꾸 스트레스성이라는둥.. 자꾸 그러는데, 내가 볼 땐.. 참.. 빼야돼요."

택시기사가 걱정스런 말투로 이야기를 이었다. 요즘 세태로 보면, 나름 어렵게 얻은 사위일텐데.. 게다가 작가라니. 서작가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서작가 머릿 속에는 지금 오만 생각이 다 부풀어 오르고 있겠지. 태명 말고, 애 이름은 지었나 모르겠다. '서레닌'이라고 하면, 상품을 줘야지.

"그게 평소에 못자고 하루에 몰아서 자고 술 먹고 늦게 일어나고 이러면 살이 찌더라고요."

이게 살에 관한 대화는 전부였지만, 뭔가 아주 독특한 느낌을 잊지 못할것 같다. 옛날 같으면 이런 느낌 잘 몰랐을텐데.. 조만간 서작가도 이런 느낌을 알게 될 것이다. 아니, 그라면 벌써 알고 있지 않을까... 무언가 끝난 것 같으면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 같은 이런.. 똥을 싸다가 만 것 같은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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