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와인이 별도의 취미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의 조국에서 술은 요리의 맥락과 벗어나는 별도의 문화로 드러난다. 한국인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즐긴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래서이다. 식사를 하면서 한잔씩 걸치는 음주 특유의 낭만은 폭음의 당위 앞에서 매도당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는, 오직 막걸리만이 우리 음식에 어울리는 음주 문화를 부활시키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다. 물론 이런 당위를 가지고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음주이력이 십년이 다 되어 가는 만큼 물론 수많은 막걸리를 거쳐 왔다. 하지만 단연 내 인생 최고의 막걸리를 꼽으라면 하나를 꼽겠다. 나는 정서적인 인간이 아니므로, 등산을 하고 난 직후에 마셨던 막걸리나 군대에서 유격복귀 행군 후 환송회에서 마셨던 막걸리 등을 제시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첫 목넘김에선 아무리 주관적으로 기가 막혔을 지라도, 첫 트림이 올라올 무렵엔 그 수준이 객관적으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내 인생 최고의 막걸리는 전라남도 남원에 있었다. 어느 모임에서 남원의 어느 폐교로 가서 엠티를 할 기회가 있었다. 황토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동아리의 운영방침에 대한 회의를 하다가 점심 때부터 막걸리를 먹게 되었다. 근처 슈퍼에서 사온 막걸리 중엔 **이란 상표가 붙은 것이 있었고 아무런 상표가 붙지 않은 채 큰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것이 있었다.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후자가 기가 막혔다.
문제는 이 ‘집에서 담근 술’의 맛을 알아본 사람이 적었다는 것이다. 어떤 선배가 자기는 포천 출신이라서 막걸리를 잘 아는데 이 상표가 붙은 것이 훨씬 맛있다고 우겼다. 그건 나름대로 괜찮은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에 동의했고, 나는 마음껏 내 생애 최고의 막걸리를 즐길 수 있었으니까. 원래 친구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어느 40대가 이 술이야말로 진국이라는 나의 말에 동의했다. 세대를 넘어 우리 두 사람은 가장 맛있는 술을 술잔에 기울였고, 그 술이 떨어지자 남아 있는 ** 막걸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의 돈으로 더 많은 ‘진짜’ 술을 구입했다. (원래 연장자랑 놀면 이런 것이 즐겁다.)
아, 진짜 술을 알아보는 사람은 적었지만, 나에게 그 술을 사줄 사람은 있었다!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더 있으랴!! 나는 행복을 마음껏 누렸다. 그 덕에 지금은 인스턴트 막걸리 중에서 방부제 맛이 적게 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뿐히 가릴 수 있다. -한윤형 (드라마틱 31호, 200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