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기행 2
8월 20일 / 김 선생님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몇 시간 잠도 자지 못하고 강행군을 시작했다. 먼저 가야 할 곳은 슈리성이다. 유이레일이 나하 공항에서 슈리성 인근까지 운행하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한다. 오늘 계획은 유이레일을 계속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1일권을 끊었다.
유이레일에 올라 창 밖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한국처럼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똑같이 생긴 건물은 거의 없었다. 국제거리에 가까운 지역의 주거환경이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슈리성에 가까워 오니 점점 더 나아지는 것 같았다. 다들 빨래를 창밖에 널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가 베란다를 샷시로 막고 실내공간화 해서 쓴다는 점은 좀 다르다. 여기서는 그런 식으로 베란다를 이용하는 경우가 없는 것 같았다.
슈리성은 류큐왕국의 중심지였지만 전쟁 이후 파괴되었고 1992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뭐, 자세한 것은 위키백과를 참조하자. 슈리성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었다. 아침 8시부터 개장인데 7시 반에 와버린 것이었다. 얼마나 일찍 일어났는지 여기서 알 수 있다. 문은 자동차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개장을 하거나 말거나 무작정 들어가 버렸다. 공원 내에는 진기한 식물들이 많았는데 일본인들이 가끔 서브컬쳐물에서 ‘남국의 정취’ 따위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코드의 원형이 이 식물들에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식물을 구경하고 전망대에 오르기도 하면서 슈리성 공원을 헤매었다. 공원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노인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한국 같았으면 그냥 무시했을 게 분명하다. 슈리성 공원 내부에는 유료구역이 있는데, 그 앞에 도착한 순간 개문행사가 시작되었다. 대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개문을 선언하고 커다란 봉을 든 노인 두 명이 커다란 문 양편에 섰다. 돈이 풍족하진 않았으므로 여기서 발걸음을 돌렸다.
김 선생님은 진기한 식물들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계속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잠도 별로 자지 못하고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2시간 가까이 걸었기 때문이다. 김 선생님은 슈리성 주변을 거의 샅샅이 뒤졌다. 중산층들이 사는 단독주택이 많은 듯 했다. 300년 된 나무를 구경한 후 엄청난 오르막을 오르며 나는 거의 죽을 뻔했다. 수원시에 있는 우리 집의 뒷편엔 42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러나 김 선생님은 인간보다 동식물을 좋아한다. 거의 쓰러질 듯한 상태로 거대 거미에 놀라기도 하면서 슈리성 견학을 마쳤다. 이제 다마우돈(玉陵)에 가야 할 차례였는데, 앞에 도착하고 나니 돈을 내야 해서 안 들어갔다. 걸어서 다시 역까지 가는 도중 나는 더위와 피로에 거의 쓰러질 뻔했다. 억지로 JA오키나와라는 곳에 들어갔다.
여기는 마트처럼 보였는데, 쿱- 이라고 하는 걸 봐서 일종의 협동조합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지역에도 A-Coop이라는 게 있는가본데 사실 잘 모르겠다. 여튼 여기에 주저앉아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했다. 김 선생님은 바나나를 샀다. 바나나로 에너지를 섭취하며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일어섰다. 간신히 역에 도착해 다시 유이레일에 몸을 실었다.
그 다음으로 가기로 한 곳은 가데나 공군기지였다. 이를 위해선 버스를 타야했다. 아사히바시역으로 이동하여 버스터미널에 가려고 했으나… 공사중이다. 근처로 옮겨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이 버스의 이용 방법을 몰라서 약간 혼란을 겪었다. 먼저 승차한 후에 기계의 버튼을 눌러 정리권을 받는다. 정리권에는 정류장마다 다른 번호가 써있다. 각 번호마다 얼마를 내야 하는 지가 버스 앞쪽의 전광판에 출력된다. 내릴 때 이 돈을 내면 된다. 즉, 이동한 거리에 비례해 요금을 내는 시스템이다.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 같긴 하다.
버스 얘기를 하나 더 하면 뒤에 크게 ‘논스텝’이라고 쓰여 있는 버스가 있는데, 이게 저상버스다. 스텝이라는 게 계단이다. 그 외에 원스텝 버스가 있는데, 이건 계단이 하나 있는 버스로 이전 세대의 버스보다 낮지만 경사판의 각도가 높아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어렵다. 리프트가 달린 버스도 있었는데 조작에 시간이 너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논스텝 버스 도입을 확대하는 게 답인데… 여튼 이런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사정이 비슷한 것 같다.
하여간 한 시간 이상을 걸려 가데나 공군기지 근처에 내렸다. ‘공군기지 근처’라고는 하지만 엄청나게 넓다. 정확하게는 가데나 공군기지를 관찰할 수 있는 휴게소에 가야 했다. 그럴려면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그냥 2킬로미터 정도를 걸어가 버렸다. 햇볕은 내리쬐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였다. 그 와중에도 김 선생님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였으나 나는 너무 지쳐서 무슨 이야긴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이 때부터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서 김 선생님이 먼저 마구 걸어가고 나는 뒤쳐져 따라가게 되었다.
고난의 행군 끝에 간신히 도착한 휴게소에서 이날이 첫 제대로 된 식사를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걸 보니 좀 기분이 이상했다. 샌드위치나 햄버거, 돈까스와 감자튀김 같은 것들을 먹고 있는데 하나 같이 맛이 없어 보이는 거였다. 어설프게 흉내낸 서양식이라고 할까, 한국의 80년대에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여튼 먹어야 되니까 무난하게 가츠동으로 했다. 김 선생님은 비프카레였다. 가츠동은 워낙 굶주린 상태에서 먹다 보니 맛이 있었지만, 잘 만든 음식으로 평하긴 어려웠다. 얇은 돼지고기가 다소 딱딱했고 튀김옷이 너무 쉽게 분리됐다. 물론 뭐 휴게소에서 무슨 미식을 논하겠냐마는, 여기에 뭘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신기했다. 계산을 하려는데 종업원들이 우리가 뭘 시킨지도 모르는 것 같아서 손짓 발짓으로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가츠동 코라 비프카레…” 코크 아니고 콜라 아니고 코라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휴게소 3층으로 올라갔다. 여긴 학습전시실이 준비돼있다. 미군기지가 오키나와에 있기 때문에 어쨌든 손해보는 게 많다는 취지다. 일본 전체의 미군기지 부지를 100으로 보면 75가 오키나와에 있다고 써놓은 것이나, 전쟁 전의 시골 마을 모습의 재현 등이 그런 맥락이다. 뜬금없는 전투기 소개 코너도 있었다. 대략 둘러보고 이제 옥상으로 올라갔다. 여기선 가데나 공군기지를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현대 사회의 어떤 기만적 단면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는 매점이 있어서 테이블을 설치해놓았는데, 그 중 하나는 아예 기자 전용으로 정해져 있었다. 실제 일군의 사람들이 엄청난 렌즈를 들고 와서 공군기지를 찍는데 열심이었다. 어떤 사람은 뭔가를 꼼꼼히 적기도 했다. 스파이?
어쨌든 여기서 오리온 발포주를 마셨다. 발포주라는 건 맥주처럼 만들었지만 사실 맥주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술이다. 개중에는 놀랍게도 발포주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술도 있다. 여튼 그렇게 바람을 쐬고 이번에는 충실히 버스를 갈아타 현립박물관미술관으로 향했다. 너무 길어졌으니 이후는 다음에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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