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도 넘게 이러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 이놈의 오티티 이런 걸 막 누르는데, 넷플릭스에 옛날에 보던 것들이 다 없어져 있는 거다. 이것 저것 찾아보는데, 삼국이라고 있어요. 국내에서 부를 때는 1994년판 삼국지랑 구별하려고 신삼국이라고 해서 방영하고 했는데, 어쨌든 그게 11월 말로 없어지더라고. 그래서 잠깐 보는데… 생각해보니 정치판에서 하는 일들 삼국지 시절에도 다 했던 짓거리더라 이거다.
그러니까 삼국지 설정을 보면 한조가 망해가는데 황건적만 잡으면 십상시만 잡으면 뭐만 잡으면 다 해결난다 그러면서 서로 싸우다가 동탁 정권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개판이 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이제는 야 이놈의 동탁만 잡으면 세상 바로잡을 수 있다 이래갖고 18로 제후까지 모아갖고 궐기를 한다. 근데 거기 보면 자기들도 모여갖고 이미 예감을 해요. 아 이거 동탁만 잡아갖고 될 일이 아닌 거 같다… 제후란 놈들이 이미 다 속이 시커멓고 뭔가 심상찮다… 사실 다 안다고. 근데도 계속 동탁만 잡으면 뭐가 될 것처럼 염병들 떨고 말이다.
이런 태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왕윤의 연환계인데, 이건 뭐 백퍼센트 연의의 창작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그려진다. 왕윤이 수양딸 초선을 여포와 결혼시키기로 하는 동시에 동탁에게 보내 소위 미인계로 여포와 동탁을 이간질시켜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도록 하는 게 큰 줄기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드라마에서는 초선이 짐승에 맞서기 위해 이런 짐승같은 일을 시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하는 바람에 왕윤이 뭐라고 반박은 못하고 일주일 단식투쟁을 한다. 원작에선 은인인 양아버지가 시키는 일인데다 나라를 구하자는 명분이 있으니 군말없이 따르겠다… 이런 모드로 가는 초선이 옳은 말 한 마디라도 하도록 하는 걸 21세기적인 반영이라고 해야 할까 싶기도 한데, 하여간 그 정도로 동탁을 없애는 게 절실한 일이었다 이런 거 아니겠나. 그렇게까지 해서 동탁을 죽이지만, 그 다음은 모두가 알듯이 동탁보다 더 정신이 없는 이각-곽사의 반격으로 왕윤-여포 정권은 무너지고 왕윤은 끌려나가 죽든지 자살을 하든지 그런 최후를 맞이한다. 동탁을 죽여도 소용이 없고, 초선이 인생만 이게 뭐냐 이런 거지. 뭐 드라마에선 초선이 여포를 그렇게까지 거부하는 건 아닌 것처럼 해놓긴 했지만.
말이 나왔으니 삼국지에서 명분 따지는 걸로 일관하는 주인공이 유비인데, 이 자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얘기 뿐이라니까. 처음에 도원결의 할 때 뭐라 그랬어? 황건적만 잡으면 다 해결이 될 것처럼… 그 다음엔 동탁만 잡으면 다 뭐가 될 것처럼… 그게 잘 안 되는 군웅할거 시절에는 막 여기 저기 정세에 휩쓸려 다니다가… 조조가 승상이 되고 본격적인 조조 정권이 시작되면서 조조만 잡으면 뭐가 되는 것처럼 하면서부터 다시 명분이 서기 시작한다고. 유비가 죽은 이후에 실질적으로 정권을 운영한 제갈량도 명분은 결국 조씨들을 내쫓아야 한실이 복구된다 이거고… 근데 뭐 그게 그런 거냐? 이미 위촉오 시대인데. 형주 뺏기고 이러면서 촉이 위를 안 치면 유지가 안 되게 생겼으니까 그런 거지.
이렇게 지지고 볶고 한 게 한 뭐 180년부터 250년까지? 뭐 지금도 똑같잖아. 윤통만 어떻게 되면 되는 것처럼… 저쪽은 민주당만 어떻게 하면 되는 것처럼… 자칭 제3지대는 ‘거대양당’만 어떻게 되면 뭐가 되는 것처럼… 에효… 근데 코에이는 왜 그러냐… 삼국지8 리메이크 기대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