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함

이제 월요일…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마치고 나니 이 시간이다. 일을 한 게 아니다. 일 할 준비이다. 뭐 글도 하나 썼다. 아무튼 90분이라도 자는 게 좋지 않나 했는데 잠이 안 올 것 같아 그냥 앉아 있다. 이게 다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어떤 박사님? 교수님이 무슨 분석을 했는데, 공영방송에 어떤 출연진들이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나 이런 거였다. 누가 보내줘서 봤는데, 프로그램의 선정이 자의적인 것 같고 그렇게 엄밀한 분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완님이 무슨 방송계의 4대 거성처럼 표시가 돼있는 거였다. 김완님을 안 통하면 방송이 안 되는 것 마냥… 이 양반은 여기서도 이런 역할인가 했다.

보니까 내 이름도 있는데, 친여는 아니고 ‘비여’ 성향의 인물로 분류돼있다. 김완거성과 비교하면 쪼렙 같은 표시다. 김완님은 메이저 언론 정규직이고 다주택자고 친구도 많고 하여튼 아싸인척 하는 인싸 아닌가? 나는 아싸 그 자체이다. 지금 내가 자는 시간을 분 단위로 생각해야 되는데, 이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그러나 진실은 이런 거다. 내가 이른바 메이저 프로그램은 2개만 나가는 거지. 틈새시장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게 다행인 거 같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그 와중에 중심을 잡고 있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 번에 무슨 술자리에 술도 안 마시면서 앉아 있었는데, 어떤 분이 그랬다. 니는 왜 하나마나한 얘기로 자꾸 끝을 맺으려고 하냐고… 할 말이 있으면 분명하게 치고 나가야 시사평론가로서 성공한다… 답은 못했으나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첫째, 시사평론가ㅎㅎ 그런 걸로 성공한다는 마음 같은 게 없습니다. 둘째,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그나마 시사평론가 타이틀도 없어지고 영영 빠이빠이입니다. 셋째, 요즘은 하고 싶은 말도 별로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게 머리가 텅텅 비었다는 게 아니야. 무조건 한쪽 편 들어주는 거 아니면 듣지를 않잖아. 내가 떠드는 걸로 여러분 생각이 바뀌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갖고 있는 틀에 딱 맞는 얘기를 안 하면 아예 안 듣잖아 애초에. 진정 그래 일단 진정하고…

근데 케비에스는 뭐니… 그거 총선 개입 어쩌구 내가 알기론 그거 원 소스가 총통엑스씨 그거 아닌가? 이미 나왔던 얘기… 결국 본 영화 필름 한 번 더 돌리는 건데 스타워즈 대신 스페이스볼 틀고 신작 개봉했다고 한 거? 금부분리 이건 또 뭐고… 아기와 소금… 무슨 얘긴지도 모르겠고… 직업이 없어서 서럽다.

지구를 떠나자

아마 여기다가 뭘 했다고 쓰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가 뭘 하는지 모를 것이다. 뭐 상관은 없는데,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심경으로 적어본다.

한겨레21이라는 잡지에 글을 쓰고 있다.

http://h21.hani.co.kr/arti/COLUMN/317/

기자협회보에 글을 썼다.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47618

근데 글을 쓰면 뭐하냐? 교수나 박사 정도 되지 않으면 글을 못 쓰게 해야 한다. 왜 이런 생각을 하냐면, 그 정도 배경이 있으신 분이 아니면 뭘 써도 사람들은 제대로 읽지를 않는다. 그냥 또 뻔한 얘기 썼다고 생각한다. 교수 정도 돼야 이 한 문장에도 많은 고민과 연구가 들어있겠거니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교수가 나타나서 요즘 사람들은 교수 글도 우습게 알아 이렇게 말하겠지. 이놈의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은 이미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해서 누가 무슨 얘길 해도 자기가 아는 구도에다가 때려 맞추려고 들지 얘기를 듣지를 않고 읽지를 않아. 듣지도 읽지도 않아. 읽지도 듣지도 않아. 아 미쳐버리겠다 정말. 알만한 사람들도 다 그래. 더 이상의 희망을 버렸다. 낙관은 없고 비관만 있다.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만 남았다.

엊그제는 글쓰기 수업 들으시는 분이 수업에 대한 의견을 보내오셨다. 적당히 마음에 드는 칼럼을 가져다가 중구난방으로 설명하는 것 아니냐(보내온 메일의 문장 거의 그대로이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김진호 선생이 최근 쓴 두 개의 글을 가져다가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에 대해 말한 참이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미국 초창기 복음주의 기독교가 어떻게 반지성주의적 특성을 갖게 됐는지, 이게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은 무엇인지를 따지는 걸로 시작한다.

아무튼, 이 분은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하신 것일텐데(그래도 얻을 게 없는 건 아니어서 <<<환불>>>은 하지 않았노라 하셨다) 그렇다고 답하기도 뭐하고 아니라고 답하기도 그렇고… 모처럼 정성스럽게 의견을 보내오셨는데 기분 나빠할 수도 없고… 그러다가, 이 짓을 너무 오래 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뭘 해도 누가 시키는 일을 하는 시늉만 하며 소화하진 않는다는 그런 나름대로의 삶의 태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남이 볼 때 시늉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건 그만하는 게 맞다.

어제는 라디오 방송에서 채널A 압수수색 어쩌구 저쩌구를 얘기하려고 했는데 5시 40분에 전화가 왔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아이템을 바꾸라는 것이다. 내가 취재기자도 아니고 코너가 뉴스브리핑인 것도 아닌데 지금 막 진행 중인 화재 사건을… 마음이 심히 복잡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우레탄 얘기하고 샌드위치 패널 얘기하고, 할 건 다 했다고 본다. 오늘 다 그 얘기 썼지만 어제 오후 시점엔 그런 기사 별로 없었다. 혼자 만족해본다.

조 전 장관님 재판에 장 모 교수 나오셔서 제1저자를 올릴만해서 올렸노라 오바를 하셨는데 상세한 내용을 보면 엄청 웃긴 얘기다. 케비에스 갔는데 뉴스 읽는 아나운서가 논문 기여도가 높았다는 진술이 나왔다는 취지로 읽더라. 엠비씨 피디수첩은 뭐고… 지구를 떠나고 싶다. 이런 거 쓰면 또 대충 쓱 보고 저 새끼 또 사람들이 안 알아준다고 징징댄다 할텐데, 누가 알아달라는 게 아니고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게 아니고 제발!! 앞으로 무슨 희망이 있어야 될 거 아니냐!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살면 뭔가가 나아진다는 그런 게 있어야 될 거 아니냐… 아닙니다 그만할게요… 답답해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