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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대중의 바다

2011.06.18 01:05

이상한 모자 조회 수:1516

'대중의 바다에서 만납시다' 따위의 슬로건에 감탄한 일은 없다. 하지만 그 슬로건이 담고 있는 특정한 측면에는 동의가 되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대중의 바다에서 만나자는 것이 우리가 좀 더 사기를 잘 쳐야 하고 잔머리를 잘 써야 하고 그래서 대중들을 더 잘 등처먹어야 한다 이런 얘기면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대중의 바다에서 만나자는게 진짜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뼛속 깊이 운동권일 수 밖에 없는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이러지 말고 좀 뭐라도 일반적(?)인 차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라.. 이런 얘기면 난 정말 가슴 속 깊이 동의할 수 있다.


참 한심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소위 운동권들 정말 웃긴다. 사회주의자라고 떠들며 소위 이론 얘긴 끝없이 늘어놓으면서 현안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사회주의를 얘기하는 것은 좋은데, 그래서 강만수의 메가뱅크론에는 찬성할 건가, 반대할 건가? 반대한다면 무슨 대안이 가능한가? 당연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무슨 얘기를, 좀 얘기를 해야지.. 할 말이 없으니까 대충 민주당 입장을 베낀다. 한나라당보다 왼쪽에 민주당이 있고 민주당 왼쪽에 우리가 있으니까 우리 입장에서 입장이 없는 얘긴 민주당거 가져와 얘기해도 될 거라는 나쁜 습관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신자유주의자라고 옛날에 욕한 게 다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내 얘기는 좌파를 확실히 하자는 얘기도 아니고 선명한 이념을 말하자는 얘기도 아니다. 제발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입으로 말을 하라는 것이다. 대중의 바다에 나가서 대중에게 사회주의를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말을 들으란 말이다. 대중의 말을 듣고 뭘 해야 할지를 정하라는 말이다. 레닌이 좋아하던 일과 중의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편지를 받고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거나 그런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떠드는 말을 몇 시간이고 앉아서 듣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제일 한심한 사람들이 '운동은 그만하고 정치를 하자'고 떠들면서 대중과는 대화 한 마디를 못하는 사람들이다. 대화라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하는 것이다. 남의 얘긴 듣지 않으면서 자기 얘기만 하는 것이 대화가 아니다. 대중들이 물론 자기들 귀에 좋은 소리 하는 말을 좋아할 것 같지만 그거 다 웃기는 생각이다. 대중이라는 존재는 늘 우리가 기대하는 정도에 비해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멍청했지만 우리가 무시하는 정도에 비해서는 놀랄만큼 똑똑했다. 오늘날의 대중들은 출근길에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으며 출근해서는 조선일보를 보고 퇴근길에 CBS 시사자키를 듣는다.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출근길, 퇴근길에 버스나 택시를 타봐라. 지하철을 많이 이용해서 라디오는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면 승객들이 손에 뭘 들고 있는지 한 번 확인해보라. 정치를 입에 달고 사는 여러분이, 그런 소시민들에 비해 세상사에 얼마나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운동권이라면 누구나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운동권은 만능이 아니고 다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현실정치를 논하려면 남들이 뭘 가지고 얘기를 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엉성한 수준이라도 대중들이 말하는 주제에 '우리의 입장'을 가지고 한 마디 얹을 수 있어야 정치가 시작되는 것 아닌가? 그냥 술친구 숫자를 늘리는 것이 정치인가? 지역정치를 한답시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정치인가? 대중들이 말하는 것에 그저 옳소, 옳소 외치는 것이 정치인가? 보수정치에 비해 우리가 얼마나 빈약한 기반을 갖고 있는가를 한탄하기 전에 그들로부터 혹시 배울만한 것은 없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물론 잘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냥 혼자 술 먹는 김에 답답해서 써봤다. 님들끼리 하는 진보대통합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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