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학창시절에 나는 또래집단에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아는 친구로 통했다. 그야 십대 내내 별다른 취미생활 없이 방구석에서 책만 붙들고 있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잠깐 내가 남들보다 똑똑한 게 아닐까 우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본 그 지식들이 2년쯤 지나면 교과서에 나오더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우쭐거림은 사라졌다. 일단 교과서(시험)에 나오기만 하면 친구들은 악착같이 그것을 외우고 터득했다.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흘낏 보고 지나치는 나보다 훨씬 깊게 원리를 터득했다. 그런 과정들을 심통맞은 표정으로 몇 번 지나치고 나자, 내가 그들보다 똑똑할 거라는 가설은 코풀고 던져둔 휴지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친구들은 내게 이것저것 많이 안다고 신기해했다. 대개는 신기해했고 개중엔 진짜로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보다 공부를 잘 하는 이들 중에도 있었고 공부를 못하는 이들 중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칭찬을 들을 때 나는 대개 나 자신을 냉소하고 있었다. ‘너희들도 2년 지나면 알게 될 것들인데 뭐.’라든가, ‘얘들이 이걸 알 때쯤엔 난 또 다른 책을 보고 잘난 척 하고 있으려나.’ 따위의 생각들을 하면서. 그즈음의 나는 나의 ‘자발적인 선행학습 도피행각’이 언젠가는 따라잡히리라고 생각했고 그 점에 대해 체념하고 있었다. 앎에는 단계가 있고 우리 같은 범인들은 대개 비슷비슷한 수준까지밖에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니, 내가 읽어서 알아낸 그 단계를 친구들은 언젠가 밟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조금 머리가 좋은 친구들은 그보다 더 높은 곳을,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내가 밟은 곳 언저리를 밟게 될 터였다. 그 점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다른 유감은 없었다.
그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시점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이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시험으로 요구하는 지식의 단계가 내 독서취향에 다다르기 전에 끝나버린다는 예감을 받았던 거다. 그건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아는 것들이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제를 어쩔 수는 없었다. 친구들은 더 이상 ‘나만의 진도’를 2년 늦게라도 따라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욱 고립됨을 느꼈다. 조숙한 중학생은 자신의 조숙함을 어른들에게 뽐낼 수 있을 테지만, 어른들과 원만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그쯤에서 성장을 멈추어야만 한다. 체제는 인격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다. (지금 ‘독서’라는 아주 협소한 분야에서만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이 문장은 보편적으로 들어맞는다. 그러니까 내가 인격의 성장을 독서의 성장으로 부당하게 치환했다는 비판은 사양해 주시길.) 스무 살이 넘어서도 잡다한 주제로 선행학습 진도 빼듯이 독서를 하고 있다면 당신은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거다. 말하자면 ‘잉여’의 앎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체제가 구성원들에게 좀 더 높은 수준의 교양지식을 요구했다면, 태동하지 않았을 ‘어떤’ 자의식이 생겨나는 거다. 나의 경우는 워낙 어려서부터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왔기 때문에 ‘나쁜’ 길로 들어서진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 때 문화인류학 책들 따위를 잡고 있었는데, 만일 그런 것들이 수능 시험에 나왔다면 내 주변의 몇몇 친구들,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 때 결코 만나보지 못한 강남의 친구들은 문화인류학에 대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소양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대입이나 취업 시험에 내가 쓰는 종류의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나는 여전히 이 정도로 쓰고 있을 테지만, 나보다 훨씬 날카롭고 유려하게 쓰는 또래들은 오늘날 토익 900점들이 발에 채이듯 테헤란로 길바닥과 홍대 주차장 골목에 우글거렸을 거다. 나는 그런 ‘사실’을 하나의 가설로서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렇게 이해할 경우엔 문제의 핵심은 ‘능력’이 아니라 ‘욕망’이 된다. ‘도대체 나는 왜 그것을 알고 있는가?’라고 자문한다면, 어떤 자뻑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대체 나는 왜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주제에 대한 사적인 탐구를 중뿔나게 계속했는가?’라고 질문을 바꿔서 던진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건 자기혐오에 빠지는 길이 아니냐고 되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객관적인 자기인식이 없는 낭만화된 자기긍정은 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중2병으로 향하는 아우토반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사실 정말로 자신을 긍정하는 길은 자기 행위의 무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 게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다른 것들을 읽고, 조금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조금 다른 것들을 쓴다는 이유로 가지게 되는 자의식은 처연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사회로부터 받은 소외감을 같은 질량의 우월의식으로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우월의식을 지니게 될수록 소외감은 더 커지고 그렇게 생긴 소외감은 다시 우월의식으로 변환된다. 한 번 이 ‘공굴리기’의 방정식에 탑승하게 되면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킬힐을 신고 완벽한 화장을 마친 채 출근하는 여성을 경멸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들이 그들보다 훨씬 긴박한 삶을 살고 있고, 역시 실존적인 고민을 하고 있으며, 종종 어떤 종류의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전혀 보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다르다’는 자의식으로 인해 자신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격리한다.
한때, ‘나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극복하는 것은 사춘기의 과제였다. 사회에서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청소년기에 읽어야 한다고 요구되었던 위대한 문학작품들은 대개 그 문제와 치열하게 대면하고 있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그런 소설에 담긴 고민들 자체가 유치해 보이는 것이 성숙한 정신에 마땅한 성장과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우리에게 그 과제를 해결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자의식 과잉의 덩어리들이 대학원생이 되어, 직장인이 되어, 자칭 ‘좌파’가 되어 자신의 지체된 생각들을 인터넷에 뱉어놓는다. 물론 그런 자의식이 없이는 견뎌낼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런 행위에도 연민은 느껴진다. 하지만 배배꼬인 그들이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는 모습을 보자면 그들을 연민으로 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그것들은 서로서로 ‘다르다’고 주장되지만 실은 놀랄 정도로 닮았다. 우리 세대의 보편성을 이런 측면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씁쓸한 일이다.
솔직히...
다만 님의 이 글은 어딘가 굉장히 포퓰러하지 못한 이들을 호도할 수 있는 마이너리티 포퓰리즘의 산물이고,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불온하지요.
이런 글을 쓰고 발표하는 것은 님의 자유겠지만, 도대체 자신의 자의식과 화해하지도 못하면서 자의식에 대해 말하는 경솔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아...그러고보니 님이 글에서 쓰셨네요.
당신이 연민으로 대할 수 없다는 '그들'의 태도가 바로 당신의 태도랍니다.
열 식히셔요. 그냥 농담한 거 갖고, 교회에나 가보라니...좀 저질 아닌가요? ㅎㅎ.
그 모든 추론이 제가 '킬힐 신은 예쁜 언니'를 욕망한다는 그 잘못된 전제에서 자라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0-;;;;
그거 말고는 님이 한 말이 없잖아요. 나름 댓글이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다른게 아무 것도 없네요. '킬힐 신은 예쁜 언니'는 실은 '나쁜 사람'인데, 유녕이가 걔를 욕하지 말라고 했다, 나뿌다...뭐 이런 말씀을 하시려는 거라면,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럼 거기서 얘기를 더 하든가 말든가 하겠죠. 다른 논점 있으면 다른 논점으로 말씀하시구요. 왜 남의 블로그에서 자신의 시간과 남의 시간을 빼앗으면서 재미도 없는 긴 농담을 하시나요?
솔직히...
한글을 못 읽으시면 그렇다고 이야기하면 되는 거죠...그냥 농담 한 마디에 죽자고 덤벼 놓고, 남한테 덮어 씌우려다 안 되니까, 이젠 왜 건드리냐고 그러는 것?
남의 블로그에서 왜 남의 시간을 뺏느냐니요?
이게 글을 쓰는 사람이 할 말입니까?
그런 거 싫으면 블로그 하지 마세요.
그냥 '나 놀리지 마, 징징...' 이런 거라면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아니 뭘 덮어 씌워도 그럴 듯하게 하면 속아나 주지...이건 말도 안되는 걸 갖다 붙여 놓고 우기면 땡? 훗...추론과 농담을 구분 못해요?
글을 뭘로 쓰세요? 손가락 근육으로? 아니면, 척추로?
어느 쪽이든, 머리는 사용하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애초의 이 글이,
"그냥 단순히 까놓고 말해, 이 글은 킬힐 신고 일하는 예쁜 언니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글이로군요.
안타깝게도 그녀들은 이런 글을 읽지 않지요."
어떤 맥락에서 농담이며, 제가 (혹은 남이) 어느 타이밍에서 웃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셔야 할 의무가 생겼네요. 그리고 이에 대한 제 덧글에 대해 "이미 증명 완료 아닌가요?"라고 추론(?)하셨는데, 이건 또 무슨 농담을 하다가 그리 된 건지를 설명하셔야겠네요.
뻔한 농담의 맥락을 설명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겠죠, 그죠?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은 아닐 겁니다. 님이 단 덧글에 실제로 '맥락'이란 게 존재한다면, 무지한 중생을 위해 3분만 희생한다고 치고 맥락을 설명해 보세요.
설마 그 '농담'이란 것을 이어가기 위해 투자한 한 두시간 밖에 시간이 없다고 말씀하시진 않겠죠? ^_^
장각
어휴 그리고 한윤형이 님이 논점이 없다고, 전제가 잘못 됐다고 얘기했죠? 이 점은 한윤형이 설명을 했는데 님이 못 알아듣고 마이너리티 포퓰리즘 운운하며 계속 똑같은 헛소리를 했어요. 아니 전제가 잘못 됐다니까. 여튼 이건 한윤형이 설명을 했으니까 님이 병신 같은 이유로 딴걸 말해주져.
자 한윤형이 님이 자꾸 똑 같은 논지의 얘길 하니까 자기도 똑같은 얘기 하기 지겹다고 다른 논점을 소개해보라 그랬죠? ‘그럼 거기서 얘기를 더 하든가 말든가 하겠죠. 다른 논점 있으면 다른 논점으로 말씀하시구요.’ 라고 했잖아요. 그러면서 예를 들면서 차라리 이런 얘길 해보라고, 그러면 그 지점에서 새로운 얘길 하자고 했어요. 그러면서 예를 든 게 이거에요 ‘킬힐 신은 예쁜 언니'는 실은 '나쁜 사람'인데, 유녕이가 걔를 욕하지 말라고 했다, 나뿌다...뭐 이런 말씀을 하시려는 거라면,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런데 님은 여기서 또 착각을 했지요? ‘우선 킬힐 신은 예쁜 언니들이 나쁠 게 뭐가 있나요?’ 라며 다음 리플을 시작하셨는데 전 여기서 님의 난독증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도 조크죠? 조크라고 믿고 싶네요.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윤형이 넌 왜 자꾸 똑같은 논지의 얘기를 하냐고 뭐라고 하니까 님이 왜 조크를 다큐로 받아들이냐면서 뭐라고 하셨죠? 그런데 사실 저도 그렇지만 저거 조크로 안 보이고 추론은 아니더라도 끽해야 뭐 님의 포퓰리즘 드립에 대한 비유 정도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사실 님보다 좀 파퓰러한 감성의 소유자인듯한 한윤형이 그게 어떻게 농담일 수 있는지 맥락을 설명해달라고 했죠? 그런데 님은 왜 한윤형한테 얘기하지 말라다가 이제 와서 설명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신경질 내고 갔죠? 님은 지금 님이 한 얘기들이 뭐뭐 있는지 기억을 하는 게 없다고 전 결론을 내림. 고로 님은 단기기억상실증에 난독증을 지닌 장애우가 아닐까 저는 추론합니다.
글쓴이가 사회적으로 볼 때 '잉여의 앎'을 추구하고 있고, 그것을 자기가 '다르다'는 증거로 삼지는 않고 있다는 점을 유추하기가 어려우세요?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이라는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해 '나는 다르다.'라고 언표하는 자의식이 다른 차원이란 것은 이해를 못 하시구요?
자 여기서 님이 소리내어 "난 달라."라고 말씀해 보세요. 그리고 그 문장 뒤에 일반적으로 어떤 문구를 가져다 놓고 싶은 충동이 드는지 (님이 아니라, 소설이나 드라마의 대사를 구성한다고 했을 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난 짜장면 먹을거야!!"
"난 너와 달라! 난 짬뽕 먹을거야!!!"
대개 이런 대사는 쓰지 않죠. 이 경우엔 앞문장이 불필요하니까요. 만일 이런 대사가 나왔다면, 두번째 발화를 한 사람이 좀 이상한 차원에서 자의식이 강한 (혹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사람이란 걸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겠죠. 코믹하게 만들기 위해서요.
장각
K
그냥 님은 인터넷도 끊고 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고 내 말이 좀 뭐하는 말인가 이게 뭐에 쓰이는 말인가를 해봅시다. 그러니까 남자가 차죠. 무식한데 히스테리 쩌는 애들은 답이 없어요. 그죠? 인간은 나날이 발전하는 생물이어야 합니다. 히스테리는 님의 타고난 천성인 것 같으니 그거 고치는 건 포기하고 그냥 무식이라도 좀 줄이세요.
어휴 덧글 수정 참으로 찌질하게 하시네요. 제가 보다가 눙무리 납니다. 자 여기 관심1g.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러 지적들이 상당부분 일리가 있"다면 제가 님한테 이런 리플 달지 않겠죠?! 응?! 스스로를 돌아보고 살도록 합시다.
그리핀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 here?"
자신의 존재를 굳이 - "마, 나 좀 알아" - 증명하려고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어떤 식으로든 증명되신 듯 합니다.
루져의 사랑 노래를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 죄송합니다만,
우리는 "나는 '빌어먹게,' 도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나"를
고민하다가 '갈 때'가 되는 존재가 아닌가 해요. 그러니
아무쪼록 이 좋은 주말에 재미있는 계획을 누리시는 방향으로 선회하시기 바랍니다. 이만.
주제넘은 얘기 죄송. 윤형님께도 블로그에서 객의 말이 길어서 죄송.
참치회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부분은 한윤형씨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리고 '나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극복하는 것'이 청소년기의 과제란 말도 잘못입니다.
장각
하지만 저는 극악스럽게 친절한 사람이니, 님이 장각 님 수준의 설명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하나하나 떠먹여 드리겠습니다.
1. 일단 님은 잘못된 검증잣대를 들이밀고 있습니다. 제 글에서 내세운 명제들이 연역명제이거나 귀납명제일까요? 그러니까 "총각은 결혼 안 한 남자이다."와 같이 진술을 분석하여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문제라거나, "백조는 하얗다."처럼 반례를 제시하면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런 명제일까요? 님이나 이 위에 질문을 하신 분들은 대개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어요. 질문하는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2. 제 글을 읽어보면, 제가 문제삼고 있는 것이,
1) '조금 다른 것들을 읽고, 조금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조금 다른 것들을 쓴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가지게 된 '나는 다르다'는 자의식
2) 그 자의식이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을 우월의식으로 변환시키는 방식
3) 그렇게 형성된 의식이 사회의 '일반적인' (이게 무엇인지 얘기하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 구성원들에게 너무 쉽게 '규탄'하게 되는 세태
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왜 제 개인의 경험을 통해 얘기를 시작했을까요? 1)을 얘기하기 위해서였죠. 이런 류의 자의식은 제가 진보운동 바닥, 혹은 그 언저리,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공부하는 친구들과 그 언저리, 에서 흔히 보았던 것들입니다. 저는 저 역시 그런 자의식의 메커니즘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 사례를 통해 설명하려고 했죠. 이 블로그에 올린 이유는 제 블로그의 독자들 중엔 특히 이런 사정에 공감하며 자기반성하실 분들이 많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분들이 공감을 했습니다. 덧글에서도 그렇고, 트위터에서도 코멘트를 좀 받았습니다.
자, 그러면 님이 이 글에서 설득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뭐라고 얘기했어야 '정상'일까요? "헐 그러고들 사시나요. 제 주변엔 그런 사람들 별로 없던데."라고 얘기하는게 최소한 글을 제대로 읽은 게 되겠지요?
3. 그러면 님이 던진 질문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하나하나 봅시다. 논제가 되는 방식으로 정리하다 보니까, 님의 질문의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1)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킬힐을 신고 완벽한 화장을 마친 채 출근하는 여성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2) '나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극복하는 것이 청소년기의 과제란 말은 잘못이다.
3) 한윤형은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한 부류로 뭉뚱그려 놓고 그들의 머리속을 해석해 놓았다.
4) 우월의식 역시 객관적인 자기인식일 수가 있다.
어때요, 이 질문들은 하나도 제 글의 논지를 훼손하는 얘기들이 아니죠? 그나마 문제가 되는 것은 2) 정도입니다. 얘기해 볼 가치가 있는데, 제가 무슨 문학에 대해 심오한 견해를 가진 것도 아니고, "예. 서로 생각이 다르네요. 저 문제에 대해 제가 제대로 논할 정도의 문학적 식견은 없으니, 그냥 글쓴이의 직관을 표현한 것 정도로 봐주시고 넘어가 주세요."라고 지나갈 문제이죠. 저 부분 없다고 글이 성립 안 하는 것도 아니니까.
나머지 부분은 뭘까요? 1)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제 글의 비판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갑론을박할 이유가 없어요. 3) 역시 마찬가지죠. 설마하니 제가 신체적 조건이나 출신성분 때문에 '나는 다르다'는 의식을 강요받아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런 자의식은 안 된다."라고 비판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건 폭력이죠. 저는 '나는 다르다'는 생각 전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별다른 고민없이 너무 손쉽게 '나는 다르다'는 자의식에서부터 출발하여 모든 사안을 재단하는 자세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4)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객관적인 시선의 거리를 거친 후의 우월의식이라면, 이번 제 글의 비판대상에 해당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그 우월의식의 근거에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만이 남겠죠. 이를테면 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환경의 문제가 있는데, 상대방과 저의 환경차이를 고려하고 어쩌고 정도의 프리즘은 거쳐야 '객관적인' 뭐가 가능하겠죠? 그런데 이 정도의 시선의 거리를 가지는 건 이미 '나는 다르다, 고로 나는 우월하다'의 문맥은 아닙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여기서 얘기는 끝난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님은 글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은 거죠. 제가 상황을 정리해 드렸으니 신사라면 장각 님에게 사과하시길 바랍니다. 이상.
참치회
떠먹여줬더니 '사후적 변명'이라고 우기는군요. 그리고 설령 '사후적 변명'이라도, 그것이 텍스트의 내용과 모순이 아니라 그것을 보강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고 봐야겠지요. 게다가 님의 질문이 그릇되었다는 제 생각엔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 제가 제 인성을 돌이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어쨌든 고생하셨고 행복한 주말 오후 보내시길 바랍니다.
대개의 독자들은 그냥 이 정도 본문에서도 그 정도 내용을 읽습디다. 그래서 굳이 본문을 수정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그걸 못 읽고 궁금해서 글쓴이에게 질문을 해야 할 정도라면 비슷한 질문을 던진 이들에게 글쓴이가 뭐라고 답변했는지 뒤져볼 정도의 성의는 있어야 겠지요. 참치회 님이 제게 청탁한 원고를 데스크 보는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예의는 쌍방의 문제이지요. 본인이 비아냥거리는 것은 우아한 것이고 남이 본인을 비아냥 거리는 것은 저질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건지요?
이 정도 덧글이 많이 달리면 그 아래 달린 님의 덧글은 무시해도 아무도 신경을 안 씁니다. 일부러 신경을 안 쓰려고 하는게 아니라도, 자연히 그리 되지요. 그럼에도 저는 님을 위해 제 시간의 일부를 쓰지 않았던가요? 제 친절함에 상처받으셨다니 제 마음이 다 아픕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고려해 보건대, 지금 님이 제 인성을 평가할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