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나는 다르다’고 믿는 자의식에 대해

조회 수 6650 추천 수 0 2010.04.01 07:43:15


학창시절에 나는 또래집단에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아는 친구로 통했다. 그야 십대 내내 별다른 취미생활 없이 방구석에서 책만 붙들고 있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잠깐 내가 남들보다 똑똑한 게 아닐까 우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본 그 지식들이 2년쯤 지나면 교과서에 나오더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우쭐거림은 사라졌다. 일단 교과서(시험)에 나오기만 하면 친구들은 악착같이 그것을 외우고 터득했다.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흘낏 보고 지나치는 나보다 훨씬 깊게 원리를 터득했다. 그런 과정들을 심통맞은 표정으로 몇 번 지나치고 나자, 내가 그들보다 똑똑할 거라는 가설은 코풀고 던져둔 휴지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친구들은 내게 이것저것 많이 안다고 신기해했다. 대개는 신기해했고 개중엔 진짜로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보다 공부를 잘 하는 이들 중에도 있었고 공부를 못하는 이들 중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칭찬을 들을 때 나는 대개 나 자신을 냉소하고 있었다. ‘너희들도 2년 지나면 알게 될 것들인데 뭐.’라든가, ‘얘들이 이걸 알 때쯤엔 난 또 다른 책을 보고 잘난 척 하고 있으려나.’ 따위의 생각들을 하면서. 그즈음의 나는 나의 ‘자발적인 선행학습 도피행각’이 언젠가는 따라잡히리라고 생각했고 그 점에 대해 체념하고 있었다. 앎에는 단계가 있고 우리 같은 범인들은 대개 비슷비슷한 수준까지밖에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니, 내가 읽어서 알아낸 그 단계를 친구들은 언젠가 밟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조금 머리가 좋은 친구들은 그보다 더 높은 곳을,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내가 밟은 곳 언저리를 밟게 될 터였다. 그 점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다른 유감은 없었다.


그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시점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이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시험으로 요구하는 지식의 단계가 내 독서취향에 다다르기 전에 끝나버린다는 예감을 받았던 거다. 그건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아는 것들이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제를 어쩔 수는 없었다. 친구들은 더 이상 ‘나만의 진도’를 2년 늦게라도 따라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욱 고립됨을 느꼈다. 조숙한 중학생은 자신의 조숙함을 어른들에게 뽐낼 수 있을 테지만, 어른들과 원만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그쯤에서 성장을 멈추어야만 한다. 체제는 인격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다. (지금 ‘독서’라는 아주 협소한 분야에서만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이 문장은 보편적으로 들어맞는다. 그러니까 내가 인격의 성장을 독서의 성장으로 부당하게 치환했다는 비판은 사양해 주시길.) 스무 살이 넘어서도 잡다한 주제로 선행학습 진도 빼듯이 독서를 하고 있다면 당신은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거다. 말하자면 ‘잉여’의 앎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체제가 구성원들에게 좀 더 높은 수준의 교양지식을 요구했다면, 태동하지 않았을 ‘어떤’ 자의식이 생겨나는 거다. 나의 경우는 워낙 어려서부터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왔기 때문에 ‘나쁜’ 길로 들어서진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 때 문화인류학 책들 따위를 잡고 있었는데, 만일 그런 것들이 수능 시험에 나왔다면 내 주변의 몇몇 친구들,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 때 결코 만나보지 못한 강남의 친구들은 문화인류학에 대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소양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대입이나 취업 시험에 내가 쓰는 종류의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나는 여전히 이 정도로 쓰고 있을 테지만, 나보다 훨씬 날카롭고 유려하게 쓰는 또래들은 오늘날 토익 900점들이 발에 채이듯 테헤란로 길바닥과 홍대 주차장 골목에 우글거렸을 거다. 나는 그런 ‘사실’을 하나의 가설로서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렇게 이해할 경우엔 문제의 핵심은 ‘능력’이 아니라 ‘욕망’이 된다. ‘도대체 나는 왜 그것을 알고 있는가?’라고 자문한다면, 어떤 자뻑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대체 나는 왜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주제에 대한 사적인 탐구를 중뿔나게 계속했는가?’라고 질문을 바꿔서 던진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건 자기혐오에 빠지는 길이 아니냐고 되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객관적인 자기인식이 없는 낭만화된 자기긍정은 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중2병으로 향하는 아우토반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사실 정말로 자신을 긍정하는 길은 자기 행위의 무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 게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다른 것들을 읽고, 조금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조금 다른 것들을 쓴다는 이유로 가지게 되는 자의식은 처연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사회로부터 받은 소외감을 같은 질량의 우월의식으로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우월의식을 지니게 될수록 소외감은 더 커지고 그렇게 생긴 소외감은 다시 우월의식으로 변환된다. 한 번 이 ‘공굴리기’의 방정식에 탑승하게 되면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킬힐을 신고 완벽한 화장을 마친 채 출근하는 여성을 경멸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들이 그들보다 훨씬 긴박한 삶을 살고 있고, 역시 실존적인 고민을 하고 있으며, 종종 어떤 종류의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전혀 보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다르다’는 자의식으로 인해 자신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격리한다.


한때, ‘나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극복하는 것은 사춘기의 과제였다. 사회에서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청소년기에 읽어야 한다고 요구되었던 위대한 문학작품들은 대개 그 문제와 치열하게 대면하고 있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그런 소설에 담긴 고민들 자체가 유치해 보이는 것이 성숙한 정신에 마땅한 성장과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우리에게 그 과제를 해결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자의식 과잉의 덩어리들이 대학원생이 되어, 직장인이 되어, 자칭 ‘좌파’가 되어 자신의 지체된 생각들을 인터넷에 뱉어놓는다. 물론 그런 자의식이 없이는 견뎌낼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런 행위에도 연민은 느껴진다. 하지만 배배꼬인 그들이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는 모습을 보자면 그들을 연민으로 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그것들은 서로서로 ‘다르다’고 주장되지만 실은 놀랄 정도로 닮았다. 우리 세대의 보편성을 이런 측면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씁쓸한 일이다.


참치회

2010.04.05 12:56:39
*.197.183.172

허허... 이거 참... 아집이 많고 정당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부족하군요. 겸허한 자세를 기르도록 하세요. 이만 갑니다.

하뉴녕

2010.04.05 12:58:34
*.49.65.16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가세요.

지나가면서

2010.04.05 11:40:12
*.121.187.166

이건 뭐 자기고백이네 ㅋㅋㅋ
키워질하다가 청춘 날리고
취업 안 되고 우울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뉴녕

2010.04.05 11:56:32
*.49.65.16

네 사실입니다. ^^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알아서 잘 하실 것 같습니다만, 저처럼 살지 마세요.

P.S 악플이라면 이 정도는 써야. 제 맘대로 이 포스트의 베플로 임명합니다.

킬힐신은언니

2010.05.10 02:31:13
*.169.120.22

저도 많이 하던 고민이네요.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문제는 자아도취가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자아도취입니다. 한마디로 반쪽짜리 자아도취가 가장 위험한 것인데, 예를 들어 이런 거에요.
킬힐 신고 완벽한 화장을 하고 등교하는 A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자기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어떻게 전시될 것인가를 걱정하며 마스카라까지 완벽하게 하고 나가는, 뭐 전형적인 학국 여대생이죠. 그러나 종종 자기도 모르게 자기상품화가 내면화 되어있는 사태를 발견하게 되고 돌연 태도를 달리합니다. 쌩얼에 머리 대충 뒤로 묶고, 렌즈 대신 두꺼운 안경 쓰고, 운동화 신고 다니죠.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나요? 이건 상당히 강도높은 소외를 낳습니다. 이 상황에서 "난 자기상품화가 완전히 내면화 되어있는 저런 애들 하고 달라!" 가 통하지가 않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여성에서 외모는 곧 그녀의 인격과 가치이기 때문이죠. 찰나의 우월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이건 맘속 어디선가 "이래봤자 나만 우스워질 뿐이야." 결국엔.. 당분간은 이렇게 하고 다니겠지만, 곧 변덕이 생겨 머리를 풀고 화장을 하고 힐을 신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난 가꾸면 예쁘지만 대의를 위해서 좀 희생했어. 왜냐, 못생긴 애들은 이렇게 해봤자 더 비웃음만 당할 뿐이거든. 예쁘니까 가능한 거야." 이상한 방향으로 사고가 전개될 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쌩얼에 두꺼운 안경 쓰고 다녀도 끝내 한가지 못하는 게 있다면, 살이 찌도록 방치하는 것입니다. 한번 찌면 다시 빼기 힘들거든요. 웃기게도 화장 안하고 힐 안신으면서 먹고싶은 건 마음대로 안먹습니다. 왜냐구요? 화장은 하면 되는 거고 안경 벗고 렌즈 끼면 되는 거지만, 뚱뚱한 여자가 되버리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그때까지 시간이 꽤 걸린단 말이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녀는 성형을 합니다. 쌩얼로 다녀도 안경 끼고 다녀도 예뻐 보이기 위해서요. 그 누구도 자신의 소신을 비웃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기서 자기상품화를 거부하는 한 여성이 "웃기는 여자들. 왜 저러고 사나. 난 똑똑해서 저렇게 안 살아"라고 말하는 건 제가 볼때 건강한 사회적 증상입니다. 그런데 이 증상이 요상하게 뒤틀리는 순간은 "내가 대의를 위해서 '잠시' 희생하지, 뭐. 드러운 이 사회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게 될 때죠. 문제는 이 '잠시'라는 거에요. 소외와 우월감의 결탁은 필연적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당위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외감 뒤에 소외될 수 없는 '주류 가치관'이 드리우고 있을 때 발생합니다. 주류 가치관에 편승해서 자기 소외를 조장하게 되면 기형적인 심리상태로 빠지게 된다는 거에요.
"멍청한 인간들. 그걸 이제야 알다니..."를 저는 인정합니다. 이렇게 우월감에 빠지고 소외되고 다시 우월감에 빠지는 프로세스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는 거에요. 하지만 "저 멍청한 인간들이 내가 별볼일 없는 대학 다니고 있으면 날 무시하겠지? 그래서 곧죽어도 일류대를 가야겠다." 이렇게 되면 총체적 난국인 겁니다. 이건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증상이에요. 세상을 바꾸지도 못하고 되려 소외되기 위하여 주류시스템에 편입하는 괴상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겁니다.
당신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마음껏 도취하고 마음껏 조소하고 마음껏 소외되십시오. 대신 그것이 상처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기 가치관과 관계없이 주류시스템에 아부할 때, 당신이 겪을 정신적 공황은 각오해야 할 겁니다.

이거슨

2010.05.12 12:56:29
*.246.238.6

윗분의 댓글, 본문의 논지와 별 상관없이 딱 저의 고민이네요. 그리고 본문에서 건전치 못한 자의식 과잉 상태의 사람들이 비난하는 대상의 예로 등장한 '킬힐 신은 언니'들에 대한 딴지를 좀 걸어보자면ㅡ킬힐 신은 언니들이 꼭 우월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의 반대항에 서있는 인간들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처럼 정신은 '잉여'의 지식을 탐독하며 별 도움 안되는 우월의식으로 차있지만 완벽한 옷차림과 킬힐과 화장으로 외면을 포장하는 사람들도 제 주위엔 꽤나 있더군요. 한윤형님이 지적하는 인간과 위의 분이 비판하는 인간형의 교집합 정도...네요.

지나가다가.

2010.05.18 01:37:10
*.47.209.48

1.그런데 청소년기에 현실에서 엄청난 불행을 겪고난 후에(가정파탄이라던가)
저런 실존적 고민을 담은 책들을 읽고 존재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면
정말 답없이 히키코모리의 나락으로 빠지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런 청소년들은 구제할 길도 없어요. 학교 선생 말도 안듣고 소통부재의 나락으로 빠지니 말이죠.


2.그런 중2병적 고민이 예술작품으로 잘 승화되면 그것도 나름 괜찮은 인생인 것 같습니다.

진승현

2010.06.03 10:13:58
*.244.161.90

잘 공감되는 글이구만 사람들이 왜이리 하이에나 마냥 물어뜯는고~_~;

한윤형씨 얼마전에 뉴라이트 사용후기 재밌게 잘 읽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책 내주세요~

악플이든 선풀이든 반응이 있다는 것은

2010.06.04 15:47:16
*.14.81.53

이 글이 그만큼 어떤 특정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겠죠. 저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관성인지, 혹은 운명인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못 먹어도 go ㅜㅜ

2010.06.25 07:04:38
*.178.141.43

정말 잘썼다는 생각이 드네요..

솔직해서 맘에 드는글입니다

늦은사춘기

2013.04.27 00:25:37
*.112.148.21

정말 좋은글이군요

솔직히 찔리기까지 합니다..

사실 저는 제가 남들과는 '다르다'라고 생각하며 도취감 혹은 우울감 둘 다에 빠져있는 현재진행형 상태입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그저 다를 것 없겠지만 아직도 다르다는 그런 자의식과잉에 대해서 극복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이것 또한 성장과정 중 하나일까요?

지나가는 행인

2014.07.13 22:50:23
*.201.153.206

초반부의 고민은 저도 비슷하게 겪었지만.. 그리고 지금도 실제로 겪고있는 상황이지만 저는 제가 필자님이 표현하신 잉여의 지식을 탐독하는 이유가 단지 제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어딘가에 계속 묶여서 한없이 밑도끝도없이 파서 최고가 되고 싶은데(유튜브나 조금만 더 서핑해보더라도, 제가 제 주변의 친구보다는 많이 알더라도 지구상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보다 더 잘 알고 그걸 극대화, 정밀화시켜서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수준은 절대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달을 수 있었어요) 제 흥미가 오히려 그 전에 끊기거나, 끈기가 정말 부족하더라구요.

어떤 분야이든 정말 똑똑하시지 않는 이상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잉여로운 짓 하지 말라고 할 수준까지 하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단지 일반인 수준에서 일반인이 사회에서 생활하는 기준에서 봤을 때의 잉여의 수준에 도달했을 뿐 그 분야에서의 잉여로운 수준에는 발끝만치도 쫓아가지 못했더라구요.


저는 그래서 결국, 어떤 것에 대해 사유하고 접한 여러가지 것들에서 공통점을 찾아서 제 사고능력이 한 단계 상승한다면, 나중에 언젠가 저도 원하는 분야에서 한 가닥 할 수 있는 밑판을 마련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겸손하게 지내고 있어요.

제 주변보다 많이 알아도 분명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면 피래미일 뿐일거라는 걸 자꾸자꾸 깨닫게 되니까요.


논지가 어긋난게 아닐까 걱정되네요 ' ') 작성자님의 인생에 싱그런 향기가 깃들길 바랍니다 :D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61 [경향신문] 음모론 권하는 사회 [9] [2] 하뉴녕 2010-04-17 2415
1160 홍콩여행 20100304-20100308 (상) file [4] [1] 하뉴녕 2010-04-15 1310
1159 [88세대와 쌍용3] 88만원 세대가 쌍용자동차 투쟁과 만나지 못한 이유는? [21] [1] 하뉴녕 2010-04-06 5514
1158 [펌] 진보신당 정책공약, 도시농업 [4] 하뉴녕 2010-04-05 1301
1157 저는 그냥 생중계하겠습니다. [58] 하뉴녕 2010-04-03 1338
1156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해 보자. [28] 하뉴녕 2010-04-02 1615
1155 [펌] 나름대로 분석해본 천안함 침몰 진상 [12] [1] 하뉴녕 2010-04-02 2383
» ‘나는 다르다’고 믿는 자의식에 대해 [112] [5] 하뉴녕 2010-04-01 6650
1153 아트앤스터디, "리영희를 말하다" 무료강의 [5] 하뉴녕 2010-03-31 1191
1152 [프레시안] 1/n의 폭력은 잊혀진다 : <경계도시 2>를 보고 경악한 이유 [12] [1] 하뉴녕 2010-03-26 2339
1151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 정책을 간단히 비교하면 [50] [4] 하뉴녕 2010-03-21 2559
1150 [한겨레21] 대한민국 어버이 연합 명의보정 [4] 하뉴녕 2010-03-20 1946
1149 민주노총 상상캠프 홍보 file [1] 하뉴녕 2010-03-17 1327
1148 [경향신문] 사이버 민중주의 [6] 하뉴녕 2010-03-13 1842
1147 열린패자당, 창당. [5] 하뉴녕 2010-03-12 1037
1146 노회찬, 조선일보, 그리고 한국사회 [11] [3] 하뉴녕 2010-03-12 4104
1145 "개청춘" & "당신과 나의 전쟁" 조인트 상영회 안내 file [5] 하뉴녕 2010-03-09 1955
1144 강릉 여행 20100227-20100301 file [6] 하뉴녕 2010-03-09 1926
1143 [펌] 김용철을 위하여 그리고 김용철을 넘어: 《삼성을 생각한다》에 관한 명상 / 최태섭 [19] 하뉴녕 2010-02-25 1612
1142 경향신문의 알림 [8] [2] 하뉴녕 2010-02-24 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