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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꿀벅지' 논란에 대해

조회 수 1933 추천 수 0 2009.09.25 10:21:01

이글루스의 논쟁을 (으례 그랬듯) 제목만 보고 클릭은 하지 않았는데, 어떤 네티즌이 이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여성부에 청원을 했다고 한다. 상황이 좀 재미있게 흘러가는 것 같다.


나는 꿀벅지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없다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지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이런 논쟁 자체를 시대착오적으로 느낄 만큼 사회의 분위기가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선 이 논쟁이 여기까지 흘러갔다는 사실이 놀랍다.


'솔직함'을 미덕으로 치는 이 시대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낸시랭에 대한 비판으로 치환해서 예전에 글을 한번 쓴 적이 있었는데,  http://weirdhat.net/xe/14710  그때 인용했던 고종석의 글을 다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름다운 자연에 넋을 잃거나 아름다운 건축물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데는 아무런 윤리적 자의식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성 앞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미스코리아 대회를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 더러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거기에는 사람의 외모에 공개적으로 미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훼손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말할 나위 없이, 외모(만으)로 사람의 값어치를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런데 이런 것에 '부당함'을 느끼는 감수성이 낡은 것으로 치부된다는 것이 이 시대의 문제가 아닐까. 이 시대에 아름다운 여성 앞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말하자면, 그 호들갑을 들은 당사자부터가 불쾌함을 느끼기는 커녕 좋아한다면 얘기는 어떻게 될까. 꿀벅지 논란 역시 그렇다.


일종의 문화상품에 해당하는 유이가 꿀벅지란 단어에 대해 '기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유이가 아니라 일반적인 여성들이라도, 심지어는 자신을 꽤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이라도, 꼴랑 굽시니스트 만화를 보고 천박하다느니 불쾌하다느니 호들갑을 떨 감수성은 있을지언정 자신의 신체부위를 '꿀벅지'라 지칭하는 남성을 만나면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뿌듯해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행태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실정에서 특정한 (가령 나같은) 남성들이 꿀벅지란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준칙을 준수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까라는 것이다. 여성들도 원하지 않는 윤리를 준수하면서 여성을 배려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웃긴 일이 아닌가. 어쩌면 특정한 맥락에서 어떤 여성의 허벅지를 '꿀벅지'라고 칭하는 것이 매너있는 행동이 될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대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장 '깔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녀가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군대를 가라고 요구하는 것이 우스운 짓거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군대 문제 포함해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상황은 남성에 비해 심히 열악하기 때문에 여성을 배려하는 정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대해선 의심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들의 욕망이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손해만 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가령 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저는 남자를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은 다리가 성한 사람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저는 다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그는 자리도 양보받을 수 있고, 좀 초라한 행색을 하고 손을 벌리고 있으면 적선도 받을 수 있는 거다. 그 짓에 익숙해지면 설령 다리가 회복되더라도 계속 저는 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전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처해 있는 반대급부로 얻게 되는 알량한 이득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그 이득은 모든 여성들에게 보편적으로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를 적당히 상품화시켜 남성들에게서 이득을 얻는 '불평등 사업'은 당연히 소수 여성에게 그 이윤을 집적시킨다. 그걸 보고 남성들은 여자로 태어났으면 세상 편할 텐데, 라고 '열폭'한다.  


아프리카tv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BJ들을 향한 남성들의 경멸은 정당한가, 부당한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녀들이 이윤을 얻는 시장 자체가 남녀 불평등이란 조건에 기인한 '불평등 사업'이란 사실 자체를 생각하면 그 경멸은 부당하다. 하지만 그 사업의 이윤이 소수 여성들에게 집중되어 사회 평균으로 봐도 불로소득으로 여겨지는 수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경멸은 정당할 수도 있다. 꿀벅지 논란 등에서 남성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굳이 번역하자면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나올 것이다. 이를테면 누릴 것은 다 누렸으면서 이제와서 옳은 척 문제제기까지 한다는 식의 불만이 내재되어 있는 거다. 


물론 한국 남성들이 외면하는 것은 그 누림 자체가 남녀 불평등에서 나온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렇게 도덕적으로 재단한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불평등 구조의 산물을 즐기면서 불평등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는다. 설득력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조차도 어떤 남성도 여성의 외모를 직접적으로 칭찬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 준비는 되지 않았다는 사실의 폭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피해자'에게 문제해결을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거다. 나도 그렇게 생각될까봐 조심스럽다. 그리고 나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강준만은 지역주의에 대해 얘기하면서 '호남차별' 문제를 호남사람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보는 것은 비판했다. 일단 호남사람들이 조선일보를 안 봐야 조선일보가 호남배제를 하는 것을 비판할 수 있지 (비판의 힘이 실리지) 조선일보 보면서 투덜대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거다.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논법도 이와 비슷하다. 결국 남성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은 여성들의 '불쾌감'이다. 자신의 신체를 대상화하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불쾌감이 폭넓게 존재할 때에야 남성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담론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그런 불쾌감 없이, 외려 그것을 쾌감으로 느끼면서 꿀벅지란 말을 제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여성들 사이에서조차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여성부가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규율한다고 해도 실효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꿀벅지란 단어를 같이 즐기거나, 아니면 그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면서 남성들을 규탄할 것인가 둘 중에 하나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여성은 한 명이 아니기 때문에 어긋나는 욕망들은 논쟁을 발생시킬 수 있다. 꿀벅지 논쟁은 모두가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시대의 '솔직함'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의미는 있다. 그 불편함의 '수'가 만만치 않다면 적어도 '그런 얘기는 네 애인에게나 하고 신문기사에서 즐기지는 말도록 해라.'는 규율 정도는 관철시킬 수 있을 거다. 이 논쟁과 논란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전진하는 욕망의 폭주기관차의 속도를 줄일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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