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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조회 수 1849 추천 수 0 2009.09.14 06:38:58

무례한 복음 - 8점
이택광 지음/난장


<무례한 복음>을 저자에게 증정받아 읽은 주제에 서평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의 문화평론의 논지에 대해 생각한다면, 나는 이미 여러 글에서 그것들에 내 생각을 첨가하여 많은 말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택광이란 문화평론가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예전 책의 리뷰에서 어느 정도는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http://yhhan.tistory.com/518


그렇다면 내가 더 해야 할 얘기는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이 글은 이택광의 텍스트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이택광의 텍스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대화의 시도다. 어떤 의미에서는 메타 비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택광의 글은 팬이 있는 반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반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이유로는 모르는 이론가와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 구체적인 상황을 얘기할 때 팩트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등이 있는 것 같다. 보통 전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가 후자를 두고 꼬투리를 잡아 그의 글쓰기가 무의미 혹은 무능력 함을 논증(?)하려는 것이 이택광의 안티들의 행동 패턴인 것 같다. 



그에 반해서 나는 이택광의 글을 대단히 자주 인용하는 편이다. 이건 내가 언제나 그의 논지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거나, 그가 서술한 내용들이 100%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물론 아니다. 내가 그를 인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근래에 발생하는 정치적/문화적 사건들에 대해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수준의 텍스트를 생산해 주는 것이 그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문화연구 이론을 숙지하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을 지라도, 이택광의 논지를 활용해서 이택광이 분석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지엽적인 상황을 설명할 수는 있게 된다. 이 부가물은 다소 추상적인 그의 텍스트의 내용을 보충해 줄 수도 있고, 혹은 일부분은 반박할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이택광의 글보다 가독성이 높은, 하지만 그가 빌린 이론의 분석력을 빌리는 하위 텍스트를 쓸 수 있는 거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글에도 독자가 생긴다.

이택광을 비판하는 이들은 이론이 현실을 정교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를 공격하는 것 같다. 여담인데, 이런 공격은 그의 글이 '잡글'치고는 너무 잘 정돈되어 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더 큰 공감을 얻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도 드러나는 이택광의 문화평론은 울퉁불퉁한 현실을 그대로 담았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정갈한 자신만의 결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분석의 지향과 문체가 고르고 고만고만하다는 얘기인데, 이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이택광이 자신의 틀에 현상을 끼워맞추는 듯한 구석이 있다는 지적도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를 향한 반지성주의적인 공격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을 공격한다고 말하면서 그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고 가장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이를 공격하고 있다는 자기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현실을 분석하지 못하는 것은 이론이 아니다. 이론에 현실 설명능력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 자신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인정해 버리면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고민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돈 많은 놈들이 떵떵거리는 것도 짜증나는데 공부 좀 했다는 녀석들이 권위를 세우는 것도 보기 싫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데 무력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택광이 받는 공격은 그가 분석하려는 현실 그 자체에서 나온다. 그리고 만약 이택광을 정말로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합리적인 행동은 반박이 아니라, 무시 - 그냥 지나쳐가는 것 - 일 게다. 그럴 수가 없다면 그를 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고민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론이란 것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한국인들은 젓가락을 사용하니 기술이 발달했고 위대한 황우석 박사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류의 분석(?)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론이란 게 애초에 그런 복잡한 세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데, 그 이론이란 것을 가지고 현상을 분석한다는 것 역시 만만한 일일 리는 없다. 사실 이론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은 일개인에게 떠넘길 수 있는 수준의 작업이 아니라, 학자, 지식인, 상식인들이 제각각의 위치에서 지적인 작업을 할 때에 일어날 수 있는 협업과정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강준만이나 진중권과 같은 '사기캐'를 무협소설적으로 추종한다면, 아마 한국 사회에서 이론이란 것을 활용할 방도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딴지일보에 스타리그 FA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이택광의 글을 인용했다.
http://yhhan.tistory.com/1027 나는 내가 인용한 이택광의 글 내용이 사실에 전부 부합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관짓지 못했던 몇 개의 현상을 엮어서 설명했기에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한편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한 그의 글은 애초에 내가 블로그에 쓴 글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얻어 쓰여질 수 있었다. 스타리그 스폰서 변천의 역사에 대해 이택광이 처음부터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즉 이런 식의 지식노동의 협업관계에서 이택광은 내게서 구체적인 사례를 얻고 나는 이택광에게서 사태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관점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스타리그의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 얻기 위해 포모스 
www.fomos.kr/ 에 들어간다. (물론 본질은 놀러 들어가는 것이다.) 이택광에 비하면 구체적인 얘기를 하는 내 글도 포모스의 스덕들이 보기에는 사실관계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 그냥 그 사실을 인정하고 수정하면 된다. 분석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그런 긴장감이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협업관계들이 활발히 이루어질 때에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나와 이택광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협업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이 이론의 무력함을 비판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본말이 전도된 행위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택광을 활용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 물론 꼭 그가 아니라도 좋다. 학문을 하는 이들, 혹은 학문하는 이들보다 다소 낮은 단계에서 평론을 하는 지식인들의 글을 기반으로 하여 자기 생각을 얘기해야 한다. 그들의 착상을 활용하여 더 구체적인 얘기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부가물을 통해서만이 그들의 추상성과 무능력함 또한 증명해 낼 수 있다. 우리에게 훌륭한 지식인이 없다는 류의 앵알앵알은 언제나 옳은 소리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책임을 방기하는 말에 불과하다.



이런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야 우리는 지식인과 상식인의 교류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계를 확립하는 것은 진중권과 같이 탁월하게 대중적인 글쟁이가 열 명 탄생하는 것보다 (생각해보니 이건 좀 ㅎㄷㄷ 하지만;;) 중요한 일이다. 이택광의 평범한 수준의 대중성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당장 무례한 평론을 꺼내들라. 자신이 관심이 있는 소재를 다룬 그의 글을 펼치라. 그리고 그의 분석을 확장하거나, 그가 잘못 파악한 구체적인 사건들을 지적하며 자신의 글을 써보라. 그것이 당신이 이택광을 활용하면서 그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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