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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진보의 재구성'을 부르짖으며 선도탈당에 앞장섰던 조승수가 '백의종군'을 말하는 상황은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위 '신당파'들이 노회찬, 심상정 없이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인정하고 만 것이기 때문이다. 노회찬, 심상정 없이도 우리끼리 잘 해낼 수 있었다는 식의 주의주의를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보건대, 신당파가 선도탈당을 시작한 후 노, 심의 일부 측근들 사이에 '새로운 당을 만들더라도 신당파와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정서가 만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잃을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미 뒤늦은 얘기에 지나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당시 신당파들은 소위 혁신파(심상정 비대위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을 이 글에서는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와의 긴장관계를 인정하고 최소한의 권력분점을 시도하였어야 하지 않았는가? 내가 말하는 것은 노, 심과 구질구질한 책임공방을 벌이면서 패권을 다투었어야 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러한 시도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러한 취지의 테이블과 정치적 협상이 존재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을 뒤늦게 던져보는 것이다.

 

덕분에 신당파가 선도탈당을 주장하였던 것과는 관계없이 이 정당은 창당 시점부터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상태로 방치되고 말았다. 당을 먼저 나와버린 사람들과, 당을 나오면 안된다고 마지막까지 주장했던 사람들이 이러한 갈등을 접어놓고 봉합국면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양자 사이에는 휴전선의 비무장지대와 같은 공간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창당 직전 테이블을 엄청나게 넓은 직사각형으로 붙여놓고 많은 사람들이 주욱 앉아서 원탁없는 '원탁회의'를 했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측면에서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 텅 비어버린 사각형의 내부를 도대체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원탁회의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총선을 이 정당으로 치루기는 하지만 이 정당은 앞으로 더 큰 진보정치의 미래를 위한 일종의 가설정당이며 총선 이후에 최대한 빠른 스케쥴을 잡아서 제2창당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원탁회의에 앉았던 사람들이 겉보기로나마 합의할 수 있는 최대치였던 것이다. 물론 신당파에 속했던 사람들은 이것을 '사회당'이나 '사노준'과 같은, 민주노동당이라는 틀로 묶지 못했던 세력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을 것이고 혁신파에 속했던 사람들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미적지근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인 것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총선은 모든 상황이 신당파들의 바람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사회당이 선거연합에 응하지 않았고 이들은 노선 문제로 내분에 휩싸였으며 결국 금민을 중심으로한 당권파들이 당직선거에 승리하면서 분당에 가까운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즉 '제2창당을 한다'가 유일한 정치적 목표인 우리 당의 처지에서 이것은 당연히 이 문제에 대한 좌파적 고려를 정책으로서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제안을 호기롭게 내놓는 대신에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못미'라는 현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5월, 6월을 거쳐 촛불시위 국면이 도래하면서 '지못미'로 대표되는 입당 사례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민주노동당을 겪었던 당원과 겪지 않았던 당원 비율이 6:4에서 5:5정도 되는 상황이었다면 지못미와 촛불 이후로 4:6에서 3:7까지 뒤집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못미와 촛불을 거쳐 입당한 당원들의 상당수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이었다. 즉, 이러한 현상은 나쁘게 말하면 좌파들에게 쁘띠부르주아적인 관념의 소유자들이 당을 우경화시키리라는 걱정을 끼치게 된 불행한 사건이 되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우리가 그토록 갈구했던 '대중의 바다'에 드디어 몸을 담글 수 있게 된 희망적인 사건으로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중정당 노선을 당의 정체성으로 인정하고 있다면 대단한 이론가나 실천가가 아닌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당원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고려해야 한다. 때문에 민주노동당에서는 기관지와 교육기관을 이용하여 이 '보통 사람들'에게 당의 정책과 가치를 전달하고 이념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초적인 조건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당은 '제2창당을 한다'는 것이 유일한 강령인 당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촛불시위라는 엄청난 정치적 사건을 감당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 당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사람들은 이 중요한 정치적 국면을 활용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성과를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신 소위 '촛불 대중'을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에 급급했고 이러한 삼류적인 '상행위'가 계속되면서 지못미와 촛불을 통해 입당한 당원들은 그야말로 사실상 방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촛불은 우리에게 노회찬, 심상정을 위한 정치적 공간과 당비를 내는 일정 수 이상의 당원들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지만 '제2창당 프로그램'과 당 내의 기초적인 체계를 세울 기회를 앗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오늘날의 결과를 만들었다. 창당 이후 모두가 우스개처럼 읊어댔던 '노심정당'이라는 투덜거림은 지못미, 촛불시위 국면을 거치면서 진지한 위기감의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심상정의 사퇴와 당기위원회의 경고와 심상정의 당대표 출마를 모두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토양이 된 것 아닌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촛불당원들의 쁘띠부르주아적 성향이 오늘날의 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이 위기는 과거에 신당파였고, 좌익적 의미의 제2창당을 주장하였으며, 당 내의 해프닝들을 놓고 이것이 노심정당의 폐해라며 조소하였던 바로 그 사람들이 정치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대안을 만들지 못하였던 것에서 오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 알았겠는가, 우리가 어찌 알았겠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