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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당혹스럽다. 정부의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초강경대응 선언을 보고 느낀 바다. 물론 ‘독재자의 딸’이니 ‘유신의 후예’니 하는 비판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박근혜 정부가 파업에 강경대응 하는 게 뭐가 당혹스럽냐고 하겠지만 경제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는 정부의 입장이 너무나 노골적이기 때문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11일 철도공사가 노조의 파업을 방패로 방만경영을 해 만성적인 적자를 내는 대표적인 공기업이라고 주장했다. 수서발 KTX 법인 분리는 철도민영화가 아니라 경쟁을 촉발시켜 이러한 방만경영을 일소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얘기다. 차마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러한 정부의 선의에 민영화라는 딱지를 붙여 반대를 일삼는 철도노동자들은 공기업에 다니는 팔자 편한 입장에서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인식일 터다.


  
▲ 매머드급 인사들의 대국민 담화 광경. (연합뉴스)


이 엄청난 정부의 담화문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등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됐다. 그 외에도 담화문 발표에 병풍처럼 서있던 인사 중에는 홍윤식 국무1차장과 김경호 기획재정부1차관이 포함됐는데 이들이 사실상 정홍원 국무총리와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대신해서 출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그야말로 매머드급(?)의 진용을 갖춰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버린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공공기관 개혁’ 논의에서 드러난 신자유주의 교리


의미심장한 것은 바로 이 날 현오석 부총리가 15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부채와 방만경영을 일삼는 공공기관들을 겨냥해 거의 협박에 가까운 대책(?)을 내놨다는 것이다. 현오석 부총리는 ‘공공기관 부채 주도’ 12개 기관을 중점 관리해 내년 3분기까지 실적을 내지 않으면 사실상 기관장을 날려버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LH공사나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철도공사 등 기관장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일인 셈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공기관의 부채 감축과 방만경영의 해소는 결국 수치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자면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과도한 임원 급여 등 ‘티 나는’ 문제들은 당연히 자체적으로 해결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최소의 개혁을 고집하면서 공공요금 인상 등을 시도해 이들 지표를 개선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공공기관 부채 감축이 공공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는 것은 이런 이유다. 최근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취임해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김학송 전 의원은 “국가 사업을 하다보면 부채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두려워하면 일을 할 수 있겠나”라면서 “결국 고속도로 통행료를 인상해 부채를 해결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 한 바 있다.


  

▲ 4일 오전 서울 청와대 인근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양대노총(한국노총, 민주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가 "정부가 공공기관 부채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노사관계에 불법 개입을 하려한다"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철도공사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연결해보면 그들이 동원한 ‘워딩’이 단순히 철도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을 선언하고자 한 것을 넘어선, 신자유주의 교리에 기반한 어떤 이념적 차원의 표현이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국가가 개입해 인위적인 독점 구조를 만든 것이 비효율과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므로 시장원리에 충실한 경쟁체계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신자유주의 교리의 전형이다.


그래도 아닌 체 할 줄 알았다


게다가 이러한 논리의 끝에 민영화 및 사유화, 요금 인상으로 대표되는, ‘공공성’에 대한 사실상의 전사회적 공격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은 박근혜 정권이 어떤 경제적 이념을 대표하고 있는지를 매우 명확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 초창기만해도 정권 차원에서 이정도로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 교리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정권 초기 몇 차례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원동 수석은 “재정건전성을 한 해 단위로 맞출 필요는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즉, 필요하다면 재정건전성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과감한 재정지출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연합뉴스)

경제 관료들이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면서 일부 관계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야심차게 내걸었던 ‘경제민주화’ 슬로건과 맞물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국가에서 회자됐던 ‘신케인스주의’와 비슷한 기조의 경제 정책이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국가가 빚을 지더라도 어느 정도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바로 그런 모델을 떠올릴 수 있었던 셈이다. 물론 신케인스주의를 어떤 세부적인 정책 실행의 유무로 판별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큰 흐름은 그렇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최근 새누리당 탈당 의사를 밝힌 김종인 전 경제수석이 올해 초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믿는다”는 발언을 남긴 것도 이와 같은 분위기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올해 여름을 지나면서 ‘경제민주화’가 사실상 유실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어떤 터닝포인트를 지나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기업의 입장을 정부가 좀 더 대변하고 배려하게 됐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었던 것이지, 이념의 차원에서 국가가 가져야 할 공공부문에 대한 태도를 평가한 지점은 아니었다는 데에서 이번 사태의 특별함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즉,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으로부터 드디어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등을 통해 숨겨왔던 일종의 ‘이념적 본능’이 드러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능은 사회공공성에서의 일사불란한 후퇴로 현실화되고 있다.


공공기관 개혁 사회적 틀 만들기 위해선 노동자 이해관계 존중해야


이는 철도나 가스 민영화 논란, 공공기관 부채 감축 등의 문제 외에도 얼마 전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 발표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둘러싼 논란에 있어서도 일정한 수위로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이 이에 대해 “특혜만 있고 철학은 없다”고 평하며 산업으로서의 방송에 대한 고려만 존재하고 공론을 조성하는 수단으로서의 방송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이와 같은 흐름이 정책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를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다.


  
▲ 11일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물론 공공기관에 방만한 경영이 있을 수 있고 복리후생이 과도할 수도 있다. 노동조합이 기득권이 되어 그것을 수호하려고 용을 쓰고 있다는 인식이 뒤집힐 수 있을 정도로 노동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떤 전망을 주지 못했다는 점 역시 평가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다만, 이 문제를 이미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는 신자유주의 교리를 통해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해야 한다는 거다.


공공기관이 방만한 경영 문제를 그대로 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또, 전체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교해 일부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과도한 복리후생의 수혜를 받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자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이 다수 국민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개혁이 공공요금의 인상과 공공기관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수 국민에 대한 실질적 이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조건들을 동시에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논의의 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회적 논의의 틀을 만드는 과정은 당연히 정부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법과 원칙을 들먹이며 무조건 때려잡는 데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촉발된 이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는지 우리 모두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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