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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새삼스럽게 이야기하기도 민망하다. 전 청와대 대변인의 스캔들 얘기다. ‘엉덩이’, ‘노팬티’ 등의 민망한 단어가 일주일 내내 신문지상을 뒤덮었다. 한국 대통령의 방미 중 일어난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라는,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수행한 청와대 참모진들의 다수가 주미대사관 인턴을 상대로 부적절한 처신을 일삼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문제가 한 사람의 예외적 일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고위관료들 사이에 만연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5월 11일 자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을 가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그 중에서도 윤창중 전 대변인의 기행은 단연 돋보였다. 원래 대변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개인 차량을 자신의 상급자로부터 빼앗다시피 하고 기자단과 다른 숙소에 묵고 싶다는 억지를 펴기도 했다고. 윤창중 전 대변인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한 대사관 인턴의 경우도 원래는 대변인에 대한 전담인력을 배치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대변인의 비서격으로 별도 배정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범죄에 대해서야 더 얘기할 필요도 없으니 그가 왜 이런 기행을 저지르게 됐는지에 대해 일방적인 추측을 해보기로 한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소위 ‘폴리널리스트’로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아 주류사회에서 밀려나 있는 처지였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에 들어 대변인에 깜짝 발탁됐었다. 이에 대한 그의 기쁨은 말할 필요가 없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간 자신을 알아주지 않던 세상에 대한 어떤 보상욕구가 분출됐을 것임을 추측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욕구가 생산적으로 발현되는 방식은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는 것이다. 아마 윤창중 전 대변인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모든 발언을 수첩에 꼼꼼히 기록해두고 혹여나 이전과 배치되는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닌지 체크했다는 에피소드 등은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남기 홍보수석과의 갈등설이나 김행 대변인과의 경쟁 등은 윤창중 전 대변인이 그가 원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특히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청와대가 두 대변인을 모두 데려가려고 했지만 논란 끝에 윤창중 전 대변인만 수행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는 보도 역시 이런 추측의 근거가 된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인정받을 수 없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결국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해 자신의 원초적 욕구를 분출시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입’ 치고는 참 치졸한 자기위로였던 셈인데, 이게 이런 방식으로 발현된 이유는 물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여 괴롭히는 걸 남성적 매력의 표출로 여기는 사회적 악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머릿속을 자의적으로 재구성해본 것은 우리 역시 그와 똑같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통찰을 얻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성추행 사건은 늘상 일어난다.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지만, 남성들 스스로의 자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은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0520170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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