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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편집자 주: 후보단일화 토론은 대선 국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어야 하지만, 2002년의 전례에서도 보듯 서로 날선 토론을 전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TV토론 역시 '신사적이다'라는 평도 받았지만 그런 면에서 아쉬움을 느낀 지지자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선발 절차 직전에 밀접한 토론에 대한 평가는 결국에는 유권자가 내리게 된다. 그러나 본선경쟁력 및 집권 이후의 비전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토론에서 드러난 아쉬운 부분들에 대해서는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후보단일화 직전 매체로서의 공정함을 기하기 위해, 미디어스는 두 꼭지로 나누어 각각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에게 느꼈던 아쉬움을 적어보기로 했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아쉬움은 본지 한윤형 기자가 적었고, 안철수 후보에 대한 아쉬움은 본지에 기고하는 정치평론가 김민하씨의 수고를 구했다.


   
▲ 토론 후 기자들에게 소감을 밝히는 안철수 후보 ⓒ뉴스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놈의 후보단일화 토론이 끝났다. 토론을 중계하고 이어지는 뉴스에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손을 잡고 있는데 안철수 후보의 표정이 다소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인다. 나도 넋이 나갔다.

이 토론은 후보단일화를 하기 위해서 한 것이다. 서로를 깎아 내리거나 상처를 입히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상대방에 대해 날을 세우거나 감정적으로 흥분되어 보이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 후보의 차분한 접근은 좋았다. 후보단일화 협상 문제에 대하여 다소 답답해하고 몸이 달아 했던 문재인 후보와 비교하면 안철수 후보는 상대적으로 여유와 품위가 있어 보였다.

아무리 후보단일화를 하기 위한 토론이라지만 그래도 상대방과 우위에 서기 위한 경쟁은 필요한 법. 이 부분에 있어서도 안철수 후보가 돋보인 점이 있었다. 법인세 인하, 출자총액제한, 부동산 정책 등 문재인 후보가 참여정부에 있던 시절과 지금 내세우고 있는 정책이 일관적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물은 점은 적절했다고 본다. 이것은 문재인 후보에게 있어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개혁정부’였다고 믿는 참여정부의 공과가 정확히 평가되어야 단일화가 이루어진 이후 성립될 개혁정부에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어야 했다는 점에서도 안철수 후보의 이런 질문들은 유효했다고 본다.

국민 대 기성정치의 프레임을 이어간 것도 현명한 전략이었다. 여는 발언과 닫는 발언을 통해 안철수 후보는 국민들이 자신의 등장을 요구해서 출마했고, 물러설 생각이 없으며, 끝까지 국민들만 믿고 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그가 출마선언 시부터 내세웠던 일관된 도식이다. 자신은 국민과 한 편이며 기성정치의 일부가 아닌 무소속 후보이고, 문재인 후보는 아무리 깨끗하고 공정한 사람이라도 기성정치의 일부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존재감을 찾는 것은 안철수 후보가 구사할 수 있는 선거 전략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웠던 점은 토론스킬 자체가 부족했었다는 점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토론을 지켜보고는 두 후보의 후보단일화 토론이라기 보다는 ‘안철수가 묻습니다’ 컨셉의 시사토크쇼를 보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철수 후보가 시종일관 문재인 후보 정책의 내용을 묻고 그 적절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보는 기분이었다. 토론을 하기 위해서 꺼내는 질문의 형식은 자신이 토론의 주도권을 가져오면서 상대방의 답변이 결국 내 이야기로 수렴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오히려 주도권을 알아서 넘겨주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결국 혼자서 결정을 내리는 기업의 오너로서는 그런 모습도 좋은 모양일 수 있지만 자신의 주장을 되도록 효과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전달해야 하는 정치인의 모습으로서는 조금 부족한 모양새였다고 말할 수 있다.

화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안철수 후보의 답변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국민과 함께 논의해서, 점진적으로 해나가겠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런 식의 화법이 아니라 핵심을 간명하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기획재정부가 애초에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쳐 만든 부처인데 금융정책기능까지 부여하면 공룡기구가 된다’는 지적에는 ‘지금까지 각 부처를 붙여도 보고 떼보기도 했는데 다 잘 안 되지 않았느냐? 핵심은 공룡기구냐 아니냐가 아니다.’ 라고 정리를 해버리는 식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을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인상도 받았다. 한 번 정한 공약과 이에 따른 계획을 수정할 거냐 말 거냐 라는 질문 같은 것이 그렇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당연히 일반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의료비상한제 문제에 대해 ‘월이냐, 년이냐’라는 질문을 두 번이나 던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시청자가 나중에 알아서 찾아보면 되는 문제를 토론에 굳이 필요한 부분도 아닌데 시간을 들여 파악하고자 한 것은 실책이다.

평소에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본 사람의 의견은 이 정도인데, 일반 시청자들이 어떻게 판단했을 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안철수 후보의 이런 순진함에 매력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더 많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평가를 해보자면 안철수 후보로서는 득점보다는 실점이 많았던 토론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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