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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민주당 있는 한 박근혜 끄떡없다
국정원 선거 개입 파동 국면에서 드러난 야권의 무능
자충수에 헛발질 일삼는 그들이 대통령을 무슨 수로…

김민하 정치평론가

정권이 무너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보장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정권이 무너지려면 최소한 어떤 혁명적 정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은 그런 정세가 조성될 기회를 상당 부분 박탈했다. 국민은 정권에 대한 불만을 임기 중간에 있는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등을 통해 표현하며 이 결과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되는 구조가 바로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 체제다. 이런 현실에도 ‘박근혜 정권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권력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정통성을,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등에서는 절차적 정통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점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의 일부에 강력한 비토 정서를 형성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되풀이해서 묻는 사람들은 대개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파국이 쉽지 않은 일임은 앞에서 설명했지만 이들에게 이런 원론적인 대답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만한 정세가 조성된다 치더라도 박근혜 정권의 붕괴는 난망할 것 같다. 야권의 무능 때문이다.

야권의 무능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을 찾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왕수석’으로 불리며 비서실장까지 지낸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에 대해 “국가기록원에 있는 원본을 확인해보자!”며 호기롭게 맞섰다. 이 결과로 20여 일을 허비하고 얻은 결론은, 국가기록원에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원본이 없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없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전임 정권인 이명박정부에서 술수를 부린 것일 수도 있고 참여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로 이관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국정원이 영화 <미션 임파서블> 주인공 수준의 전문성을 가진 요원들을 파견해 기록을 지워버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재인 의원이 “이제 NLL 논란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국가기록원이 이 기록을 갖고 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게 됐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결국 민주당 처지에서 보면 국정원이 무리수를 둬 조성된 상당히 유리한 국면에서 자신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수세적 입장에 처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전쟁을 하면 늘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문재인 의원은 준비되지 않은 전쟁을 시작했고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이를 말리고 통제하지 못했다. 당내 원로인 박지원 의원은 뒤늦게 “시작을 말았어야 한다”고 발언했으나 상황을 안이하게 본 것은 마찬가지였다. 유리한 고지에서도 이렇게 밀리는 데, 박근혜 대통령을 어디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천부당만부당이다.


» 정권이 낡은 수단을 동원해 비판을 잠재우려 할수록 사회는 진정하기는커녕 더 반발할 태세다. 7월25일 천주교 부산교구의 성직자와 신도들이 부산 중구 가톨릭센터 앞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은폐 공작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한겨레 김광수

냉전식 정국 대응 귀결은 식물정권
출범 반년 만에 정당성 위기로 치닫는 박근혜 정권
2008년과 무게 다른 분노가 온·오프라인 심층에서 꿈틀

원용진 서강대 교수

‘창조경제’란 말이 사라졌다. 정치 현안에 묻혀 형체도 안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큰 공을 들인 창조경제를 파묻었을 정도니 정치 현안의 크기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치 현안을 다루는 정권의 모습이 단호하다. 자신감마저 읽을 수 있다. 속내도 과연 그럴까. 쏘아올린 창조경제를 스펙터클한 불꽃놀이처럼 대해왔다가 허둥지둥 내친 것으로 미뤄 끙끙 앓고 있다고 추정해도 무리는 아니겠다.

그 속내에 염장을 지르듯 연일 시국선언과 촛불모임이 국내외에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언론은 아예 입을 닫고 있지만 세계의 유수 언론들은 이를 덩치 큰 뉴스로 취급하고 있다. 정치적 위기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시국선언, 촛불모임 그리고 외신의 시각은 대체로 일치한다. 현 정권의 정당성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배반했다는 혐의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많이 앓는 소리를 내지만 대응 방식은 참으로 낡았다. 오죽하면 냉전시대 같다는 말이 나올까. 이념 갈등을 바닥에 깔거나, 과거 정권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 많이 홍보하거나 언론을 다잡거나, 일정 시간을 넘기거나 그것도 안되면 눈을 부라리는 수순의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끙끙대고 앓지만 처방은 낡았으니 다시 창조경제를 꺼내 사회를 이끌 기회를 얻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응 방식이 낡았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념과 증오로 풀릴 수 없는 성격의 현안이란 점이 첫 번째 이유다. 정치 현안을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으로 읽는 여론이 다수다. 교민과 청소년까지 나서고 있음에 주목하면 쉽게 이해할 일이다. 정치 현안이 소통되는 방식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언론의 입이 막혀 있다고 정세 전파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민 개개인이 플랫폼이 돼 있는 현 상황에서 정치 현안은 네트워크 전반에 잠재돼 흘러넘친다. 차근차근 축적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그처럼 낡은 방식에 절망했던 시민사회의 경험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빚투성이 월급쟁이가 카드 막듯 대응하는 일로는 이번 현안의 해결은 난망하다. 낡은 방식으로 다스리는 일이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성공의 최대치는 정권 연명 정도에 그치고 말 뿐이다. 공권력·언론·정치세력의 네트워크로 시민사회를 누르기엔 정치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패턴이 달라져 있다. 연일 터져나오는 녹취,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로그 흔적, 휴대전화의 동영상, 유튜브에 올려진 화면은 국정원·경찰·청와대·당으로 꾸려진 큰 네트워크에 한순간 구멍을 내고 있기도 하다. 지난 5년 동안의 경험이 그에 보태져 전혀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정국 때와는 긴장 양상이 판이하게 다르다. 조용한 듯하지만 겨루는 품새는 굵직하고 위태해 보인다. 현 정치 현안이 속한 상황도 전혀 예전 같지 않다. 낡은 것을 사용할수록 사회는 진정하기는커녕 더 반발할 태세다. 민주주의의 배반에 분노하는 시민을 달래는 길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행하는 정공법 말고는 없다. 낡은 방식은 내려놓고 진실을 찾는 일로 갈 때다.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만이 정당성을 살리고 수렁에 빠진 민주주의도 건져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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