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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극우는 아닐 거란 낙관
취임사의 ‘품앗이’ 등에서 읽은 경제민주화 ‘진정성’ 
새 정부, 진보적 정책 집행 성공하면 진보에도 나쁘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에서 유심히 봐야할 것 중 하나가 취임사다. 취임사는 대통령이 무슨 철학으로 나라를 운영할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세계화 시대와 민간인 출신 대통령 탄생을 강조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시장주의 개혁을 통한 경제 재건과 국민 통합을,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 개혁과 동북아 시대의 개막을 이야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성장과 선진화에 대해 말했는데, 이런 것들은 실제 정부가 어디에 정책적 목표를 두고 있는지 구체화되면서 다시 조명되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글로벌 경제위기와 북한 핵무장에 따른 안보 위기를 강조하며 창조경제,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말했다. 요약하자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산업, 경제민주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일자리를 창출하며 새로운 복지제도 등의 시행과 치안 강화, 개혁적인 교육정책 추진을 통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고 다양한 문화를 융성하게 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그야말로 야심찬 계획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몇 가지 부분이 있다. 첫째는 새 정부가 금융과 서비스 산업을 정책 추진의 중점에 놓았던 전임 정부와 달리 제조업 중심의 정책을 펴리라는 것이다. 둘째는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등 전통적으로 우파들이 멀리해온 이슈를 과감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품앗이’ ‘계’ ‘까치밥’ ‘콩 한 쪽’ 등 우리의 전통적 개념들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근거를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할 정책이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극우적 색채를 띠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오히려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등은 상대적으로 진보적 입장에 섰던 인사들이 지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때 제출한 대안들에 가깝다.

품앗이, 계, 까치밥, 콩 한 쪽 등의 전통적 어휘를 동원한 것도 박근혜 정부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배신하는 깨우침을 얻게 한다. 앞서 언급한 정책을 시행하려면 여기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를 먼저 설득해야 한다. 이런 용어들의 사용은 박근혜 대통령이 오히려 경제민주화 등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물며 우리 조상들은 까치밥도 남겨놨었는데 대기업 집단을 규제하는 것 정도는…”이라는 메시지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이러한 진보적 정책을 집행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다면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달라질지 모른다. 물론 이런 기대는 지나친 낙관에 가깝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는 시기에 이런 낙관을 가져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 지난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이날 취임식사에서 가장 도드라진 단어는 ‘행복’이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차례 옷을 갈아입는 예전과 다른 면모도 보였다. 한겨레 이정우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서민을 보살피는, 행복을 주는 대통령 이미지 강조
‘시혜적’ 관점에서 나오는 복지정책, 과연 실행될까

드디어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향후 정국 운영에 대한 상징적 의례인 취임식도 있었다. 취임식에서 인상적인 것은 ‘서민’의 편에 서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였다. 여기에서 편에 서 있다는 것은 ‘가깝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 취임식의 의미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축하 공연도 세대별 감수성을 하나로 버무려놓아서 세대 화합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 엉성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메시지 하나는 명확했다. 취임식의 절정은 역시나 취임사에 있었다. 여러 가지 내용이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구상은 취임사에서 강조한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에 집약돼 있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자는 것인데, 그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설립으로 대표되는 ‘창조산업’의 증진을 통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산업의 기조가 ‘삽질’에서 다시 김대중 정부 시절의 정보기술(IT) 산업으로 돌아간다는 메시지 정도를 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취임식은 이런 논리보다 감성적 차원이 더욱 강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단순하게 ‘서민친화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민’처럼 가까운 또는 ‘서민’과 같은 대통령이라기보다, ‘서민’을 보살피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더 강조했다. 텔레비전 중계 실황에 간간이 비치는 ‘철통 경호’의 모습도 박근혜 대통령을 서민과 하나 되는 이라기보다 서민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이로 비치게 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취임식 분위기는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 언어는 개념적이지 않았고, ‘행복’이라는 정서적 표현이 모든 메시지를 압도했다.

취임식을 주도한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는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해결해줄 수 있는 리더십에 대한 강조였다. 이런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의도를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이미지가 실제의 리더십으로 구현될지 여부다. 취임식의 메시지만을 놓고 본다면, 박근혜 정부는 복지나 경제민주화에 대해 ‘시혜적 관점’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취임식에서 드러난 이미지는 박정희 체제의 긍정성이다. 물론 취임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를 동시에 이미지화했다. ‘한강의 기적’에서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이어지는 수사학은 성장 동력을 IT 산업으로 놓았을 뿐, 첨단산업 육성을 통해 국가 발전을 도모한다는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논리를 보여준다. 또한 ‘희망이 열리는 나무’ 제막식에서 보여준 한복 입은 ‘여성’ 박근혜 대통령은 자상한 육영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뿌리를 드러내는 퍼포먼스였다고 할 수 있다. 축하 공연도 이런 취지를 드러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도 나름 전통이라면 전통일 것이다. 과연 박근혜 정부는 훌륭하게 한국 보수주의의 전통을 완성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나마 남은 보수주의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릴까? 이제 그 1막이 시작되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 원문 :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40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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