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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의자’ 생각

조회 수 1392 추천 수 0 2012.12.17 15:31:33
순간적으로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가 또 한 번 화제인가 했다. 하루 종일 언론과 인터넷을 뒤덮은 문재인 후보의 의자에 관한 논란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상이다. 문재인 후보의 광고에 등장하는 자택의 의자가 고가의 명품으로 판명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다.

그 의자는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정품은 1000만원에 가까운 가격을 자랑한다고 한다. 비슷한 중국산 모조품의 경우 100만원 정도의 가격에 살 수 있다. 문재인 후보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는 이 의자에 대해 어느 모델하우스에 진열돼 있다가 소위 ‘땡처리’된 것을 다시 50만원 정도에 구입했다고 밝혔는데, 이 말을 믿는다면 아마 이 의자가 진품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가 의자’ 논란을 일으킨 문재인 후보의 TV광고 | 경향신문

박근혜 후보 측은 이것을 일종의 ‘호재’로 판단한 모양이다. 고가의 의자에 앉아 있는 문재인 후보의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서민적(?)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다면 ‘로열 패밀리’의 일원으로 살았던 박근혜 후보나 1000만원짜리 의자에 앉아 있는 문재인 후보나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런데 한 발짝 떨어져서 논란을 지켜보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박근혜 후보 측의 의도대로 상황이 보아지지는 않는다. 문재인 후보가 그래도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되는 변호사 출신인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50만원짜리 의자에 앉아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일 뿐이다. 오히려 그것보다도 내가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은 어떤 서글픔에 가까운 감정이다.

진보신당은 4월 총선에서 저조한 득표로 등록취소된 이후 보조금이 끊겨 당사를 여의도에서 서교동으로 옮겼다. 수원에서 다니기는 불편한 것 같아 용산구 보광동 근방에 방을 얻었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의, 옥탑방이라기보다는 움막에 가까운 공간이다. 전에 살던 사람에게 세간은 좀 놔두고 가라고 부탁했다. 따로 마련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냉장고, 세탁기, 책장, 책상 등을 돈을 들이지 않고 마련할 수 있었는데 책상에 딸린 의자가 좀 문제였다.

전에 살던 사람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이놈의 고양이가 이 의자를 자신의 발톱을 긁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 같았다. 의자의 푹신한 부분이 너덜너덜해져서 스폰지가 다 드러난 것이 아주 보기에 흉했다. 사람이 아무리 움막에 살더라도 자기가 사는 공간은 좀 깨끗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넝마가 된 의자는 버리고 돈을 약간 들이더라도 가격이 저렴한 책상의자를 하나 구입해서 놓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웬만큼 부실해 보이는 의자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는 것이었다. 의자도 사고 웬만하면 1인용 소파도 하나 놓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의 구상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렸다. 월급 82만원 받으면서 1인용 소파를 산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에 가까운 것이었고, 아무 목재로나 대충 만든 것 같은 의자를 사는 것도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던 거다. 과연 내 삶에서 책상의자가 가지는 의미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며칠간의 고민 끝에 결국 조립식 나무의자를 3만원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 샀다.

문재인 후보의 의자 논란을 접한 후 그 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들은 그래도 한 10만원짜리 의자 정도에는 앉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우울감이 밀려왔다. ‘어떻게 서민을 자칭하는 사람이 그렇게 비싼 의자에 앉을 수 있느냐?’는 비난보다는 ‘누구나 의자를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필요한 것 아니었을까? 이놈의 의자 때문에 별생각을 다 한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2120414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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