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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안철수 행보의 여러 가능성

조회 수 3335 추천 수 0 2011.10.28 13:33:22

▲ 안철수 원장 ⓒ 연합뉴스

지난 글에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사실상의 승자가 안철수 원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안철수 원장은 향후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언론에서 안철수 원장의 정치권 진출에 대한 여러가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쯤에서 안철수 원장에게 어떤 행보가 가능한 지를 정리해야 이후 정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외부적 조건을 짚어보자. 한나라당의 패배로 범보수진영의 분열과 혼란의 가능성이 비춰진다. '한나라당이라는 간판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친이와 '박근혜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친박이 부딪치는 가운데 당 밖에서 보수 세력의 '장자방'이라 불리는 윤여준 전 장관과 박세일 이사장 등이 신당 창당의 변죽을 울리고 있는 상황이다. 폭탄이 어디에서부터 터질지 알 수 없지만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할만하다.

야권의 경우 단연 '혁신과 통합'으로 대표되는 통합신당의 창당이 주요 이슈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으로 대표되는 당 외의 친노세력, 그리고 시민사회 세력과 진보정당 일부 까지가 통합의 대상으로 논의될 것이다. 통합신당의 창당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 가에 따라서 불어올 태풍의 형태가 달라진다.

안철수의 '보수 신당' 창당은 있을 수 없는 일?

이제 이러한 지형에서 안철수 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일단 가능성이 가장 없는 것은 보수신당의 창당에 안철수 원장이 가세하는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도 안철수 원장이 보수신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여전히 안철수 원장이 꺼내드는 언어들은 '보수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가능성을 더욱 많이 보장해야 하며, 그것을 위한 공정한 경쟁 원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진보보다는 보수에 더 가까운 생각이다. 한국사회가 상식 대 비상식, 독재와 반독재,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 MB와 반MB의 프레임으로 짜여져 있는 상황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이념에 맞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면 안철수 원장이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의 기치를 드는 보수신당의 창당에 참가하는 것이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면을 통해 안철수 원장은 이미 보수신당 등의 움직임에는 참여할 수 없는 정치적 포지션을 취했다. 정치적 지형은 정치인들이 세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중의 열망이 그 최종적인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만에 하나 안철수 원장이 보수신당을 주도하는 형태의 길을 택한다고 하면 사실상 정치적으로 곤란한 지경에 빠질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좀 더 가능성이 많은 길은 어느 쪽인가? 지금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시나리오는 아마 '혁신과 통합'이 주도하는 통합신당의 창당에 관여하는 그림일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탄생은 안철수 원장의 역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고 통합신당의 창당은 박원순 시장 탄생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와 통합신당 창당

이 길은 언뜻 보기에 괜찮은 그림 같아 보인다. 손학규, 문재인, 안철수가 손을 잡고 개혁적 정치인들과 소위 소셜테이너들의 박수를 받으며 상식의 회복과 한국 사회의 개혁을 외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지금 안철수 원장에게 집중되는 정치적 지지의 실체다. 안철수 원장이 가지는 프리미엄은 기존의 범야권이 가지지 못한 것을 안철수 원장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범야권의 정치인들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안철수 원장이 가지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2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의 젊은 무당층의 지지다. 이들은 기성 정치권을 혐오하고 냉소하며 경멸한다. 뚜렷한 이념적 지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안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한다. 때문에 이들은 특히 선거라는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사실상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선거판에서의 오랜 상식이다. 즉, 안철수 원장이 이들로부터 열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야 말로 범야권의 정치인들과 비교우위를 점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이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안철수 원장도 서로 공격하고 물어뜯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혼란스러운 정치판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안철수 원장을 지지했던 무당층에서 '에이, 뭐 안철수도 똑같은 정치인이네.' 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안철수 원장이 갖는 정치적 프리미엄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정치권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안철수의 숙명과 경우의 수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대한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안철수 원장의 숙명이다.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히려 정치적인 것들과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취향이 모순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카페인 없는 커피, 무알콜 맥주, 무지방 아이스크림...

그렇다면 도대체 정치권에 계속 거리를 두어가면서 어떻게 정치에 개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집과 학교만 오가는 것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대체 정국에 어떻게 개입을 한단 말인가?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서 생각해보면 두 가지 가능한 경우의 수가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는 안철수 원장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범야권에 유력한 대권주자가 나타나 박근혜 전 대표를 이길 수 있는 어떤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다면 안철수 원장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2012년은 지나가도 된다. 하지만 범야권의 대권주자들이 모두 지리멸렬 하다면? 손학규, 문재인, 정동영, 유시민 그 누가 나와도 박근혜 전 대표를 이길 수 없고 이러한 상황이 다수의 국민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상황이라면?

안철수 원장이 아무것도 잃지 않고 스스로 링 위에 오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이 때다. 이 시기의 엄청난 절박감은 그를 지지하는 무당층들이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안철수 원장이 '정치인'이 되는 순간의 본능적 혐오감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아마 대단한 드라마로 사람들에게 비춰질 것이고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럼 두 번째 경우의 수는? 비슷한 형태의 드라마에서 안철수 원장이 조연의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쉽게 말하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맡았던 역할을 떠올리면 된다. 가장 가능성 있는 범야권 대권주자를 적당한 시기에 지지하고 자신은 계속 정치권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행보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림은 첫 번째 경우에 비하면 좀 더 역사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 사람들은 오래도록 안철수를 '영웅'으로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 위한 전제조건도 있다. 첫째, 범야권의 대권주자 중 누군가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상황이 이어지고 범야권 전체가 그의 우위를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둘째, 그 대권주자는 안철수 원장과 코드가 맞는 캐릭터여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이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시기상조인 예측을 써보았다. 어찌됐든 그저 호사가들의 입에나 오르내리는 이름이었던 '안철수'는 이제 최소한 2012년까지 정치권의 전망을 말하면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변수가 됐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정치판'에서 3개월 만에 일어난 변화이다.

댓글 '13'

1rz

2011.10.28 19:29:07
*.141.218.218

그런데 무당파라는 것에 실체가 있나요? 제가 보기엔 언론에서 장사하려고 만든 말이란 생각이 더 드네요. 제가 보기엔 안철수는 영남 출신에 서울 강남에 사는 착하고 똑똑하고 실질성 있게 어디 철학,사회학 배워서 나대는게 아니라 실용적이고도 어려운 의술을 배우고 그것도 모자라 너무 똑똑해서 프로그램을 짜서 그걸로 돈을 번 천재. 뭐 이런 이미지 같은데요.

제 주위에 노무현이나 유시민, 문재인이라면 절레 절레 하고 김대중이라면 눈에 불을 키는 양반들 (다 서울대임)이 안철수에게는 호감을 보이더군요.

이상한 모자

2011.10.28 20:12:24
*.208.114.70

이번에 안철수 책 낸 출판사 대표님이 서울대 출신은 아니지만 하여간 김대중 정부때 뭘 하신 양반인데, 이 분도 안철수에 대해서 호감을 좀 크게 갖더군요.

하여튼 무당층이란건 가끔 등장하던 개념인 것은 맞는데, 전 그냥 제가 생각하는 맥락에서 쓰고 있습니다. 제가 막 개념을 창조하는 사람은 아니고, 그냥 있는 말을 가져다가 적절히 쓰는 것이니 뭐.. 어쩔 수 없지요.

1rz

2011.10.28 21:20:59
*.141.218.218

전 안철수가 신당 만들거나 신당에 들어가는게 낫다고 봐요. 그 신당이 윤여준이나 박경철이 작업을 하던 혁신과 통합과는 별개의 당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노빠모임에 들어가버리면 안철수의 상품가치가 사라질테니까요. 안철수라는 상품은 갤러리아는 아니어도 롯데백화점 정도는 되야 구색이 맞을텐데 이건 이마트(한나라당)도 아니고 홈플러스(민주당)도 아니고 홈에버 아니면 롯데마트에서 팔겠다는 거라서....

한가지 확실한 건 안철수가 바보도 아니고 고작 영남 삼류들을 대권가도에 올려주려고 정치판에 올 이유는 없다는 거지요. 문재인이나 유시민이가 안철수에게 뭘 해줄 수 있겠습니까.

이상한 모자

2011.10.28 21:45:41
*.208.114.70

저는 안철수가 실제로 로드맵을 갖고 있었다면 그건 2012년 이후에 작동할 예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오세훈 때문에 이상하게 돼서 지금 등판하기 싫은데 자꾸 억지로 끌려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입니다. 그게 신당 창당이든 뭐든 2012년 이전에 뭘 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것은 많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까지 했으면.. 2012년에 어떤 상황이 되든 끌려나와야 하는데.. 최선의 방법이 뭐냐 라고 했을 때에는 그냥 멋있게 폼 잡고 마는 것이 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주 최소한의 자기 체면 차리는 정도의 행보를 할 가능성이 제일 크지 않나 라는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1rz

2011.10.28 22:05:59
*.141.218.218

폼잡고 마는 것이라면 당적없이 계속 있다가 적당한 시기에 문재인이나 유시민의 손을 들어주는거요?

솔직히 손학규나 정동영 손을 잡아줄 가능성은 현재로서 0%고.....

이상한 모자

2011.10.28 22:19:59
*.208.114.70

글쎄요, 지금 상황이 누구 손을 들어준다라고 확실히 말을 하기도 뭐한거라서 저도 참 뭐라고 장담을 못하겠는데.. 결국 범야권 대권후보가 누가 되기는 될 것 아니겠어요?

1rz

2011.10.28 22:23:22
*.141.218.218

정동영은 이번 선거로 완전 죽었고 손학규는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더군요. 무슨 통합전당대회를 하자고 쇼를 하던데 (박지원과 김부겸은 반대 쪽) 대통령병에 걸리면 맛이 가는 좋은 사레일 듯 싶군요.

한 때는 손학규가 김종필 만큼은 되려나 싶었는데 이건 이인제보다도 머리가 안돌아가는 듯....
김종필 선생에게 참회의 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안철수 융기원장인가 뭔가 사퇴했더군요
좋으나 싫으나 빨리 움직이는 듯

이상한 모자

2011.10.28 22:52:26
*.208.114.70

융기원장 사퇴는 뭐 그런 것도 있고 경기도에서 이래 저래 찌르는 것도 있고 복잡한거겠죠.

1rz

2011.10.28 21:42:58
*.141.218.218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11027_0009572877&cID=10306&pID=10300

그나저나 진정한 무협지풍 정치비평은 여기에 있었네요

이상한 모자

2011.10.28 21:47:18
*.208.114.70

제가 무협지를 별로 안 좋아해서.. 무협지 다 불태워버리고 싶습니다.

1rz

2011.10.30 19:49:00
*.141.218.69

에이 경기도 의회는 민주당이 다수당압나다. 그렇게 곧바로 직을 놔버릴 정도로 위험한 상황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의회 말고 경기도 차원의 문제라면 김문수가 난리나는 것인데 그 경우라면 친이(아니면 한나라당 소장파)랑 손잡는 안철수가 가장 매력적이란 말이 되는 것이라....)

거북이

2011.10.30 23:01:44
*.234.216.66

한나라당의 영향력에 대한 의식보다, 기성 정당정치진영의 프레임을 무력화시키기 위한(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선택지인 것 아닌가요? 야권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해서 별일없을거다, 라고 직을 유지하는 것은 한나라당 지지층(혹은 심정적 지지를 하는 무당층)에게 구체적인 빌미를 주게 되니 말이죠.

이상한 모자

2011.10.31 01:51:07
*.208.114.70

그래서 반반이라는 것인데, 첫째는 본인의 의지이고 (정치 불개입 선언을 하지 못하는) 둘째는 지금 시끄러우면 안된다는, 시기의 문제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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