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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경향신문 생각

조회 수 2417 추천 수 0 2012.01.30 12:56:24


트위터에서 박권일 님은 종종 경향신문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경향신문 보도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특히 한겨레와 비교해서 그렇게 말하는 이들에게), 언론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성이기 때문에 그런 비교는 단선적이고 적절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특히 고종석 선생이 트윗에서 경향신문을 일컬어 '유일한 정론지'라 평했을 때, 박권일 님은 어떤 신문이 '정론지'임을 결정하는 것은 몇몇 먹물의 평가가 아니라 역사적 평가의 축적이기 때문에 그런 견해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와 같은 견해에 '원론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박권일 님이 '경향신문의 역사성'을 보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 신문의 창간은 1988년이지만, 경향신문이 사원주주회사로 새롭게 출발한 것도 1998년이다. 한겨레 신문의 역사가 24년이라면, 오늘날의 경향신문과 연속성을 가진 그것의 역사도 14년은 된다. 물론 거기엔 엄연한 격차가 있지만 경향신문의 보도를 하루이틀의 것으로 폄하할 정도의 것은 아니다. 이 십 년의 격차는 박권일 님과 나같은 세대의 심리적 경험 속에서 더 극대화된다는 혐의가 있다. 즉, 우리가 정치에 지각을 가질 때부터 이미 한겨레는 존재했지만, 사원주주회사로서의 경향은 그렇지 않았기에 그 차이가 현격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나 더 어린 사람들에게는 그 거리가 그렇게까지 커 보이지는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겨레의 영향력이란 것이 창간초기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한겨레는 87년 체제의 불완전한 승리에 대한 시민의 갈증을 통해 탄생한 '국민주언론'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병독지'(다른 언론을 주로 보면서 함께 구독하는 신문)의 위치에 있었던 한겨레가 대놓고 '진보개혁세력'의 맏형이 된 계기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동아일보의 갑작스러운 변동이었다. 참여연대와 함께 기획기사를 만들 수 있었고 1997년 대선의 상황에선 김대중 지지라고까지 읽힐 수 있었던 동아일보가 (당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노골적으로 이회창을 지지했다.) 사주의 부적절한 판단에 의해 '조중동'의 막내로 편입되면서 한겨레는 갑자기 막중한 책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씨네21과 한겨레21은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었지만, 사실상 한겨레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과 역할을 맡게 된 것은 2000년 이후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때에 경향신문은 한겨레, 그리고 대한매일과 함께 조중동에 맞서는 '한경대'로 호명되었다. 물론 이 마이너 연대는 이 명칭을 만들어낸 정운현이 대한매일을 떠나면서 금세 허물어졌다(요즘엔 오마이뉴스까지 합쳐 사람들이 '한경오'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프레시안이 빠졌다는 면도 있고 해서 별로 좋은 호칭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보도는 남았다. 2002년의 시점에 진중권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진보언론이란 한겨레가 선거철만 되면 민주당에 휩쓸려 진보정당을 푸대접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선 진보언론이 아니라는 경향신문이 훨씬 낫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박권일 님의 냉정한 평가는 이 시점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완벽하게 적절한 것이었다(내 기억에 바로 이때, 그러니까 십년 전에도 박권일 님은 비슷한 얘기를 한 것 같다). 왜냐하면 대한매일이 그랬던 것처럼, 막 사원주주회사로 출발한 경향신문도 조금의 부침에 따라, 그러니까 어떤 기업이 그 신문사를 인수한다든지 하는 소유구조의 변동을 통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신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보도의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개혁언론들의 보도성향을 본다면, 우리는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를 한켠에, 그리고 경향신문과 프레시안을 다른켠에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참여정부를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정체성을 세워 왔다. 


여전히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러한 경향의 행동이 대중들에게 인지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에 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진보정당원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경향신문이 이런 좁은 바닥에 들어와 한겨레와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사람들은 2008년 촛불시위 보도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진보언론이란 한겨레'와 '진보언론도 아니라는 경향'의 대립각은 2008년 촛불 이후에 '진보언론이라는 한겨레/경향'으로 변화되었다. 대중에게 인지되는 것도 역사라면 그 측면에서 경향의 역사는 한겨레보다 상당히 짧다. 게다가 '촛불시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고 이에 부응하느라 한동안 경향의 보도는 자신이 경쟁하던 한겨레의 보도에 상당히 근접해져 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MB 정부 이후에도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드러난 보도의 '차이'는, 그들이 만들어낸 맥락이 하나의 역사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그럭저럭 증명하는 것 같다.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와 김상봉의 기고거부 선언으로 촉발된 진보언론과 삼성의 관계를 시험하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경향신문의 평기자들은 경향신문의 논조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한 인상적인 집단행동을 보여주었다. 


물론 경향신문의 미래가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5년 후의 경향', '10년 후의 경향'이 어떨지 말하기 어렵고 여전히 존립하고 있을 거라고 큰소리 치는 것도 힘들다. 그러나 이는 경향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한겨레, 시사in,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모두 그렇다. 조중동은 종편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시고 '신문기업'으로서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는 국면에 접어들겠지만, 그와 별개로 진보개혁 언론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그들의 존속을 바라는 시민들이라면 조중동의 위축에 즐거워하는 마음의 반만이라도 그들의 생존조건을 고민해 보는데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언제 망하거나 변할지 모른다고 해서 경향신문이나 나머지 개혁언론의 역할에 너무 냉정한 평가를 보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이 언론들은 현재 시점에서 사회변혁을 소망하는 이들의 자산일 것이며, 다들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가지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점에서 경향신문은 일간지 중에서 내 정치적 성향에 가장 부합하며 그래서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는 신문이다. 


경향신문에 대해 품평하는 원고를 어딘가에 실을 뻔 했던 적이 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 원고는 실리지 못했다. 몇달 지난 글이지만, 첨부한다. 위에서 말한 것들을 반복하는 면도 있고 보충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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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잣대 경계하되 진보세력에도 더 많은 관심 가져야

 

지인들에게 “경향신문에 대한 불만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돌아온 대답들이 대부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도 별로 불만이랄 게 없다.”는 것이었다. 2011년 현재 경향신문의 ‘위상’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얼마 전 문필가 고종석은 시사in 189호에 실린 칼럼에서 5공시절 친정부신문을 넘어 그냥 정부신문이었던 경향신문이 한국 저널리즘의 양식을 대표하는 신문이 되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1998년 사원주주회사로 새롭게 출발한 경향신문은 2000년대 초반 언론운동의 어지러움 속에서 ‘조중동’에 맞서는 ‘한경대’의 일원으로 호명되었고, 참여정부 시절 서민경제를 우선시하는 보도로 정부와 각을 세웠다. 그리고 비판적 독립언론을 향한 그 십여 년 노력은 2008년 촛불시위 정국 이후 비로소 시민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오늘날 경향신문을 한국의 대표적 진보언론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오늘날 경향신문은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을 대변하면서도 비슷한 위치를 점하는 다른 언론들에 비해 정치적 공정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공정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직관적으로 와 닿는 하나의 준거는 이중 잣대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일 게다. 나는 진보언론이 모든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기준이 일관되기를 희망하는데, 그 이유는 ‘말’의 힘이란 물리력과는 달라서 융단폭격처럼 퍼부어질 때가 아니라 일관된 기준에 의해 제어될 때 더 효력을 발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성적 믿음을 배반하는 온갖 선전·선동의 기술이 존재하지만 자본권력의 뒷받침을 받는 거대 보수언론이 아닌 경향신문의 입장에선 그런 것들을 사용해봤자 세인들의 웃음거리나 되기 십상이다.


 

경향신문은 그간 나름의 공정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되고, 최근 보도에서도 이중 잣대를 경계하는 노력은 감지된다. 특히 나는 북한 당국의 남북한 비밀접촉 폭로 공세가 자해행위라 비판한 지난 11일자 사설과 한나라당을 지지한단 이유로 MBC 라디오에서 퇴출당한 김흥국씨를 옹호한 15일자 사설에서 그것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다소 실망스러운 사설도 있었다. 18일자 사설 “누구를 위한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인가”가 그것이다. 경향신문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그 정책의 효용을 잘 드러내는 보도를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위 사설은 반대론자들의 논리를 비판하는 것과 그들의 정치참여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권력기관의 상호견제나 이들을 직접 견제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며 권장할만한 것이다. 무상급식 확대가 이미 대세인지라 주민투표가 “혼란”, “혈세낭비”, “사회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비판이, 진보진영이 어떤 보수적 정책을 무산시키기 위해 모종의 활동을 할 때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는 것이란 점을 생각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모종의 공정성을 담보하면서도 경향신문은 지향을 가질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도에서 경향신문은 개혁 내지 중도진보라는 가치를 선택했고, 계층적으로는 서민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편협함과 단순화를 무릅쓰고 현실정치국면에 대입해 말할 때 한나라당에 대해선 공정한 비판을, 민주당에 대해선 개혁적 노선으로의 변혁을, 기타 군소·진보정당들에는 시대에 부응하는 혁신을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노선은 경향신문 스스로 보도를 통해 은연 중에 드러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현 시대가 경향신문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적어도 최근 보도에서 경향신문의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이 다소 약소하단 느낌을 받는다. 이 약소함은 한진중공업 투쟁과 같은 긴급한 노동문제가 ‘SNS를 통한 시민참여’란 매개를 거쳐 예전보다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 현실과도 묘하게 대조적이다.


 

야권연대를 바라는 사람들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진보대통합’ 논의의 와중에도 경향신문의 보도는 지극히 피상적이다. 특히 지난 13일자 사설은 모호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볼 수도 있는 통합 합의문의 목적이 ‘명쾌’하다며 진보양당에게 이에 입각한 고민을 주문한다. 주간지와 일간지라는 차이는 있지만 시사in 196호 보도가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내의 노선과 역학관계까지 짚어주는 것과 비교된다. 언론이 현실세계에 영향을 발휘하고 보는 이들에게 지침을 주려면 당위성을 반복적으로 읊조릴 게 아니라 현실의 국면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짚어주고 그 바탕 위에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보수정치세력에겐 다소 과도하게 베풀어지는(?) 그러한 접근이, 진보세력에 대해선 생략된다면 경향신문이 추구하는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댓글 '2'

Q

2012.01.30 18:25:58
*.132.80.25

말’의 힘이란 물리력과는 달라서 융단폭격처럼 퍼부어질 때가 아니라 일관된 기준에 의해 제어될 때 더 효력을 발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백수

2012.02.01 21:18:20
*.206.112.107

제 조부는 아직 동아일보-한겨례를 읽으십니다 (멍..) 경향의 개혁성에 대한 인식도 없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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