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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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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효석 의원의 책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세번째 희망을 찾아>라는 책의 말미에 꼭지로 들어간 글입니다. '안철수 바람'에서 세번째 희망을 찾으려는 민주당 현역의원의 정치적 포부가 담긴 책인데, 저는 책의 세번째 장에 김호기,안병진,고원 선생님과 함께 제 나름대로 '안철수 현상'을 분석해 보는 글을 실었습니다. 1장과 2장은 김대중과 노무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와 관련된 (물론 김효석이란 정치인의 프리즘을 거친) 비화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습니다(사실 제 입장에선 공저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 일견 긍정하면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본 관점들이기도 합니다만 --;;; ) 저도 아직 다 읽진 못했는데 정치인의 말 같지 않게 서술이 장황하거나 지리하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인듯 합니다. 홍보하는 겸사 해서 제가 쓴 부분만 올려봅니다.  



우리는 ‘안철수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오늘날 안철수 원장이(이하 경칭생략)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각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물어본다고 치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가 기존의 정치인과는 다른 어떤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 답변은 안철수만 들어본 것이 아니다. 가령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던 박근혜 역시 그동안 기존 정치인들에 대해 ‘새로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안철수가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기존의 구태정치인’들과 함께 묶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답변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면서도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이해해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픽사의 걸작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시리즈에 나오는 장난감들처럼, 더 이상 자신이 주인이 원하지 않는 낡은 장난감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시달릴 것이다. 어린아이가 헌 장난감에 흥미를 잃고 새 장난감을 좋아하는 이유를 정연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유권자도 정치인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막연하게 이야기한다. ‘헌 것’과 ‘새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사람들이 ‘새 것’을 좋아하는 것은 한 두 해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새 것의 계보학’을 물어야 할 판이다. 



1. ‘새로운 정치인’의 계보학 


대한민국은 건국된지 60년이 넘었으나 그 반세기의 역사는 ‘새 출발’과 ‘리모델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일단 독재정권끼리는 전임자를 계승한다 주장할 수 없었다. 박정희는 이승만이 아니라 4.19 혁명을 계승했다 주장했고, 나중에는 아예 이름에 ‘새로움’이 박혀 있는 10월유신(十月維新)이란 친위쿠데타를 단행했다. 박정희 사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역시 부족한 정통성을 채우기 위해 박정희 시절과의 단절을 꾀했고, 이는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낸 노태우의 선택으로 이어졌다. 문민정부는 문민정부대로 군사쿠데타 세력과의 차별성을 내세우며 제2공화국의 계승을 주장했고, 국민의 정부는 ‘제2건국’이란 슬로건을 내세웠다. 


민주화 이후엔 더 이상 정통성 문제 때문에 과거 역사와의 단절을 주장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오늘날 살아내고 있는 정치적 질서를 정치학자들은 ‘87년 체제’라고 부른다. 87년 체제는 독재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서로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하고 공존하는 타협적 질서이며, 5년마다 대통령의 교체를 통한 정치변혁을 추구하는 질서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정치평론의 중심이 된 건 1970년대 박정희 시기부터 그 상징성을 키워온 ‘3김’이었다. 3김은 지역을 대변하기도 했고 정치적 입장을 대표하기도 했다. 그것은 독재정권 시절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시민들이 만들어낸 왜곡된 상징이었다. 결국 김영삼과 김대중은 모두 알다시피 차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김종필 역시 2004년 총선에서 노회찬에게 밀려 비례대표 의원에 낙선될 때까지 한국 정치의 한 축으로 활동한다. 


그래서 1990년대의 정치인들이 ‘새로움’을 말했을 때 그것은 ‘3김정치’에 대항한다는 의미의 새로움이었다. 한때 놀라운 인기를 누렸던 박찬종이나 대권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조순의 경우가 정확하게 그랬다. 그리고 명멸해간 그들과는 달리 역사의 한 흐름을 움켜잡았던 노무현의 ‘새로움’은, 기존 질서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3김은 정치 그만두고 낚시나 해라.”는 식의 냉소로 표출하지 않고 ‘정치개혁’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했을 때 폭발력을 지니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독재자들과 3김의 투쟁의 장이었던 그간의 한국 정치가 만신전(萬神殿, 판테온)에서 벌어지는 ‘신들의 전쟁’이었다면, 노무현은 올림푸스의 권위를 해체하며 신화시대를 인간의 시대로 돌리는 헤라클레스의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등장한 참여정부가 수구세력과 지역주의와의 투쟁을 전개했지만 노동유연화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서민층의 신망을 잃어갔을 때, 그 반동으로 등장한 뉴라이트와 이명박 역시 ‘새로움’을 말했다. 2002년의 노무현이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슬로건을 통해 성공얼 거두었다면, 2007년의 이명박 역시 전형적인 한나라당 지지자와는 거리를 두는 입장이었다. 2007년 대선에 정계에 등장한 문국현 역시 한나라당과 참여정부를 구이념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자신의 입장을 ‘새로운’ 것으로 치장했다.   


대체 우리는 왜 이다지도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가. 그것은 물론 기존의 정치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행위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그들은 국민의 말을 너무 잘 들으니 문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치인과 정치세력들은 가령 대기업과 같은 힘센 조직들이 일개 시민들의 이해관계와 삶을 왜곡하는 것을 감히 교정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새로움’을 내놓으라는 요구는 가능한 한 수용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은 1997년에 출범한 한나라당이며, 그 다음으로 오래된 정당은 2000년에 출범한 민주노동당이다. 얼마 전까지 그랬는데, 이제 민주노동당은 다른 정치세력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었고 한나라당 역시 곧 재창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 외 정당들의 수명은 대개 MB정권보다 약간 긴 정도다. 


정치세력 뿐만 아니라 정치인 역시 파리 목숨이다. ‘탄핵 역풍’이 분 2004년 총선의 경우 초선의원 비율은 무려 62.5%에 달했다. 국회의원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바뀐 것이다. 2008년 총선에서의 초선의원 비율은 44.8%였다. 현재 한국에서 10년 이상 근속하는 의원 비율은 24% 정도인데, 이는 미국(상원 39%, 하원 37%)이나 프랑스(상원 52.5%, 하원 66.4%) 등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현저하게 낮은 수치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은 이런 방식으로 구성된 의회를 일컬어 “인턴 헌법기관”이라 비평한다. 국회의원이 ‘인턴’ 비슷한 수준이다 보니 “2∼30년 동안 자기 분야에 전문성 있는 관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원들은 사실상 관료 손에 농락당하게 된다. 박성민은 대개의 국회의원들이 “감히 말하건대, 부처의 일개 과 하나도 상대 못할” 것이라 단언한다. ‘새로움’에 대한 우리의 강박이 낳은 부작용이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2. ‘냉소주의’ 시대의 안철수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을 멈춰야 하며, 그렇기에 안철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기존 정치권의 사람들을 눈여겨봐야 하는가?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만을 표피적으로 수용해서 안 되고, 그런 요구를 만들어낸 요인을 심층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말하는 거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선거의 해인 2012년을 앞둔 각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합집산이 단지 의원 배지와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국민들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최소한의 무언가를 지향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인식 속에서 현재의 ‘안철수 현상’을 두고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움’에 대한 우리의 강박은 이제 그것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냉소주의와 결합하게 된다. 냉소주의는 필자와 함께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의 저자였던 젊은 시사평론가 김민하의 표현을 빌린다면, ‘다 똑같다’란 정서로 요약될 수 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거창한 얘기를 할 때는 언제나 이면에 자신들의 이익을 감추고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그 점에 관한 한 모두가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냉소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냉소적 태도가 마키아벨리즘적 현실론과 다른 것은, 그들이 ‘다 똑같다.’라고 말할 때 사실은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는 ‘진짜’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강하게 욕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에서 ‘진짜’를 포기한다면 정치인들의 권력투쟁을 삼국지 쳐다보듯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소주의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싸우는 그들을 ‘다 똑같다.’고 매도하며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다. 즉 냉소주의는 진정성을 요구하던 한 시대의 뒤에 나타난 시대정신이며 진정성 담론의 반동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진정성을 아직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그런 반동이다.   


냉소주의는 참여정부가 국민의 신망을 잃으면서 더욱 심화되었고 그리하여 이명박 시대를 열어 제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노무현은 헤라클레스의 역할을 기대받고 권좌에 올랐으나, 낙향한 뒤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그 지지자들에게 ‘예수’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죽음을 조장하거나 방관한 책임이 있으므로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진정성을 인정해야만 정치에 대해 논할 수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한다. 여러 행사에서 만나본 바 노무현 지지자들은 참여정부에 대해 뭔가 비판적인 언급을 들으면 강연자들에 대해 대략 ‘실제로 뭔가 하려던 그분은 돌아가셨고 네들은 언제나 그랬듯 탁상공론이나 떠들며 방해나 하고 있어. 네깟 놈들이 뭘 한다고?’란 느낌을 담은 시선으로 쳐다본다. 


한편 안철수 지지자들은 이와는 전혀 결이 다르다. 그들은 안철수가 정치같은 더러운 일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치에 참여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잘할 수 있을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이런 조류는 여론조사에서도 뚜렷하게 발견되는데, ‘지지하는 이가 정치에 나서기를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 지지자들’이란 것은 정말이지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지지자와 안철수 지지자의 생각은 정치에 대한 냉소로부터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상의 진정성을 구별해내는, 우리 시대의 두 가지 다른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안철수가 냉소주의 시대의 아이콘이란 사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가령 안철수가 만약 내년에 어떻게든 정치에 개입하고 싶다면 빨리 결단을 내리고 지금부터 국민들에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어떤 평자들의 주장은 원론적으로 옳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행동은 지금으로선 정치를 하게 되든 안하게 되든 안철수에게 ‘손해’라는 것이며, 그래서 안철수가 함부로 무대 위로 올라올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안철수가 정치에 개입하게 된다면 언제 무대에 올라오느냐가 매우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안철수가 아직 공직을 맡을 만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굳이 검증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어떤 식의 선택을 내리든 안철수에게도 준비할 시간은 필요하다.


정치인으로서의 안철수는 부족한 면이 많을 테지만 그렇더라도 지레 겁을 먹고 그의 정치계 진입을 금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안철수가 정치적 경륜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안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름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성립할 수 없는 이유는, 앞서 지적했듯 ‘새로움’을 강조하는 조류 속에서 우리 사회의 정치인들이 이미 정치적 역량을 키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 영역엔 어떤 사람이 정당 지역 조직의 관료로 출발하여 경험을 쌓고 중앙당의 관료로 활동하다가 당 소속 국회의원과 행정부 수반을 거쳐 유력한 정치인이 된다는 식의 정당 조직을 통한 정치인 육성의 모델이 없다. 기초자치단체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이가 국회의원이나 광역자치단체에서 성공을 거두고 유력한 정치인이 되는 경우 역시 매우 드물다. 굳이 비슷한 사례를 들자면 남해군수로 출발하여 참여정부의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하고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가 된 김두관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울산 시의원과 북구청장을 차례로 역임한 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소속으로 울산 북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조승수 역시 또 하나의 사례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당의 관료는 국회의원 중심의 정당에서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기초자치단체 선거는 중앙 권력의 향방과 별도로 존재하는 ‘마이너 지역유지’들의 경연장인 것이 지금의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우리는 정당 내부의 구조나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통해 한 명의 정치인이 작은 책임에서 얻은 경험으로 성장해 큰 책임을 떠맡는 구조가 생성되고 정착되기를 바라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리그가 존재하지 않거나 상하위권 리그의 교통이 없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선수 개인에게 리그 진입을 금지하거나 마이너리그부터 뛰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리 합당한 일이라 보기 어렵다. 


‘냉소주의’의 바람을 타고 부상하는 안철수는 그 냉소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안철수 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개인도 사회문제를 총괄적으로 직시할 수 없게 된 어려운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때에 안철수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준비’가 그 혼자서 고시공부하듯 머리를 싸매고 정치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오히려 그는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여러 관료·학자·활동가들을 만나 되도록 ‘좋은 팀’을 꾸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이념과 상식, 그리고 성찰된 상식


이 과정에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안철수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요인들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그것들의 빈구멍을 직시하고 메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가령 안철수의 인기를 떠받치는 강력한 정서인 ‘상식 vs 몰상식’의 전선에 대해서도 한 번쯤 더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김여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상식 vs 몰상식'의 전선이 기존의 ’좌파 vs 우파'의 전선보다 새로운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은 이 역시 오해이며, ‘상식’이나 ‘희망’과 같은 키워드들은 2001년부터 노무현 지지자들을 규합한 강력한 어휘들이었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좌파’란 말을 이렇게 자유롭게 쓰게 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라 생각된다. 불과 십 여년 전만 해도 ‘진보’란 말을 쓰기도 부담스러워 신문은 ‘보수 vs 혁신’과 같은 프레임을 짜놓고 ‘보혁갈등’이란 이름을 붙였다. MB정부 출범 이후에야 민주당 인사들도 ‘좌파’라고 불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반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한국 사회에서는 차라리 ‘상식 vs 몰상식’ 담론보다 ‘좌파 vs 우파’ 담론이 더 새로운 현상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상식’론이 번성하는 데엔 맥락이 있다. 사람들의 생각처럼 좌우, 진보/보수의 문제로는 규명이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식’을 회복할 것을 주문하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맥락은 한국 사회의 ‘보수’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측면에서 현저하게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다. 서구 사회의 경우 약자를 어떤 방식으로 배려할 것인가에 대해 이견이 있을 뿐 시민들의 문제를 사회가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한다는 의식에 대해서는 합의가 되어 있다. 즉 서구 사회의 우파들은 구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만을 추려내서, 국가 지원보다는 부자들의 자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을 선호한다. 반면 좌파들은 자선보다는 국가의 세금으로 전체 노동자계급에 영향을 미치는 복지정책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의 보수주의자들처럼 사유재산만을 강조하고 낙오자가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믿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500억원을 기부하고 구체적인 사회적 약자들을 돕기 위한 사회사업을 기획하는 안철수의 행위는, 미국사회라면 보수주의의 역할을 좀 더 진전한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비치겠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명확하게 ‘상식’의 포지션에 서게 된다. 


또 하나의 맥락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윤리의식의 부재다. 부당한 특권, 부정부패, 진영논리 등이 횡행하고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일관성의 부재 등이 양 진영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는 이 부분에서도 견결한 윤리의식을 통해 ‘상식’의 편에 선다. 다만 윤리의식의 차원에서 한국 사회의 ‘상식’ 담론은 독재정권에 대항한 민주화투사처럼 살지는 못했던 평범한 시민들이, 비록 자신들의 삶을 ‘비겁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편해 하지만 독재정권의 적극적인 부역자들은 배제하려는 건전함에 기대고 있는데, 안철수의 경우 이런 차원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물론 그는 ‘역사의식’을 말했지만 그가 말한 역사의식은 민주화의 문제보다는 시대에 맞는 경제정책의 문제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시민들에게 널리 수용되는 안철수의 ‘상식’이란 포지션에 대해 적극적으로 긍정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두 개의 맥락의 상식 담론으로부터 출발하는 ‘개혁’정책들은 한국 사회를 위해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상식’ 담론에 더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우리는 이념의 시대에 생활인들의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이념이라고 해서 꼭 생활세계의 삶의 문제와 동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념이나 정책지향 역시 우리의 ‘상식적 판단’들에서 더한 고민을 통해 이끌어내지는 것들이다. ‘상식’만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충분히 따져볼 가치가 있는 반대자들의 비판을 ‘몰상식’으로 규탄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무상급식과 같은 예산규모가 적은 정책에 대해선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야 한다는 상식’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겠으나, 한나라당 정권 교체 이후에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복지정책과 대기업 중심 경제생태계 개선 문제는 훨씬 더 치밀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문제들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념’과 ‘상식’의 대립을 넘어서야 한다는 취지에서 ‘성찰된 상식’이란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안철수 바람’의 힘을 활용해서 한국 사회를 개혁하기 바라는 정치세력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상식’ 담론이 가진 직관적인 파괴력을 잘 활용하면서도 그것이 “우리편의 논의는 상식이며 반대자들의 논의는 몰상식”이라는 자폐적 담론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4. 민주당의 과제, 안철수의 과제, 그리고 시민의 과제


안철수 현상을 두고 대의민주주의나 정당정치의 몰락을 우려하는 시선들이 있다. 그러나 이 시선들은 안철수 이전에도 ‘새로운 정치인’에 대한 희구나 ‘냉소주의’의 번성이 반복되면서 이미 정당정치가 약화되어 왔음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기껏해야 원인이 아닌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안철수 현상을 활용한 정치개혁이 성공하지 않는다면 설령 안철수가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른 신드롬이 정치권을 강타하여 정치 자체가 불안정해질 것이다.


특히 정치세력들의 입장에선 좀 더 실천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국민의 열광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대의민주주의나 정당 정치에 대한 부당한 폄훼가 아니다. 가령 어떤 사람들은 박원순의 당선이 ‘정당정치의 붕괴’를 보여주었다고 논평한다. 나는 이것이 단견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박원순은 무소속 후보라기보다 차라리 야권 모든 정당의 후보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시민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사람을 민주당이, 국민참여당이,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이(그리고 안철수가) 경쟁적으로 보증하여 당선자로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이 상황은 차라리 정당정치의 위력으로 인물적합성에 대한 검증 절차가 모조리 생략된 것에 가깝다. 민의의 요구는 현존하는 정치구도를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켜 민의를 대변하는 정당구조를 만들어내라는 것인데, 이 역시 정당정치에 대한 요구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기성 정치권이나 정당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안철수를 지지하는 수많은 세력들과 함께 새로운 ‘팀’을 구성해 보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기성 정치권도 살고 국민들도 사는 길이다.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통합을 통해 건설되는 민주통합당의 경우 지금까지의 하향식 공천문화를 과감히 혁파하고 시민참여가 중심이 되는 상향식 공천제도를 합의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의 제도개혁은 매우 긍정적이다. 지금까지의 민주당이 국회의원들끼리의 계파갈등을 통해 당내권력을 창출했다면, 이와 같은 제도개혁은 시민의 지지를 받는 이들이 민주당에 입당해도 민주당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이러한 변혁은 안철수가 ‘제3지대 정당’으로 갈 가능성을 없애고 만일 그가 정치권에 뛰어든다면 야권연합의 틀에 들어오도록 유인하는 것일 수 있다. 사실 박세일 등이 주장하는 보수신당은 박근혜에게 대선후보를 넘겨주기 싫은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정치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당의 개혁은 그 사소한 이해관계에 안철수 등이 휘말릴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점에서도 올바른 방향의 것이다. 


이제 안철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언젠가의 대선에서 그가 선택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결국 그가 어떤 종류의 가능성이 보이는 그룹을 창출해 내느냐에 달려 있지 준비 기간의 양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이미 그가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안철수가 이 과제를 인지한다면 직접 ‘선수’로서 정치판에 뛰어들든 정치판의 ‘멘토’로서 계속 기능하든 기존 정치세력과의 협력 및 소통을 통해 본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제나 요구되는 시민의 역할이 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요구이기도 하다. 현실론의 입장으로 볼 때 시민에게 어떤 각성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할’이 무엇인지는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시민들이 안철수를 세계의 구원자가 아닌 우리 세계의 어떤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권한을 위탁하는 ‘매개자’로서 이해하길 기대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첩첩산중이고, 세계경제의 전망 역시 밝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를 직시하고 해결책들을 함께 강구한다면, 적어도 그 문제들을 제어가능한 수준으로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안철수 현상’에서 마땅히 이끌어내야 할 ‘희망’일 것이다.    



댓글 '4'

ㅇㅇ

2012.01.14 16:13:29
*.212.105.43

이 글은 안철수 교수님도 꼭 보고 두번 봐야할 글 같습니다 좋은 글

꼬마뉴비

2012.01.18 14:15:02
*.47.249.76

"비밀글입니다."

:

이상한 모자

2012.01.18 15:18:17
*.180.114.103

저... 제 홈피가 뭐가 어때서.........

꼬마뉴비

2012.01.18 23:32:56
*.47.249.76

"비밀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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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사이버 민중주의, 그리고 열폭 [18] 하뉴녕 2012-01-31 4428
32 경향신문 생각 [2] 하뉴녕 2012-01-30 2417
31 통합진보당의 선거연합이 쉽지 않은 이유 [2] 이상한 모자 2012-01-20 2689
30 돈봉투 사건을 뛰어넘을 정치의 대안은? 이상한 모자 2012-01-18 1953
29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에 관한 거의 모든 것 [5] 이상한 모자 2012-01-18 2225
» 우리는 ‘안철수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책원고) file [4] 하뉴녕 2012-01-14 3159
27 진보정당의 미래를 고민하다 [3] 이상한 모자 2012-01-13 2837
26 정치의 해, '죽느냐 사느냐' 2012년 정치 지형 대예측 이상한 모자 2012-01-06 2950
25 모습 드러낸 박근혜 비대위, 한나라당 쇄신은 시기상조 이상한 모자 2011-12-29 2081
24 정치권 혼란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이상한 모자 2011-12-21 2999
23 ‘야권 대통합’이라는 동상이몽 이상한 모자 2011-12-19 3225
22 한나라당 '탈당 도미노'와 민주당 '폭력사태' 그 이후 이상한 모자 2011-12-14 2617
21 한나라당 쇄신의 핵심은 '박근혜 기득권'과 '이명박 당적'이다 이상한 모자 2011-12-10 2842
20 나꼼수 열풍에 대한 성찰 [1] 이상한 모자 2011-12-02 4445
19 쇄신 논란 시끄런 정치권 관전 포인트 [2] 이상한 모자 2011-12-02 3077
18 '안철수'가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 [2] 이상한 모자 2011-12-02 3273
17 한미FTA '날치기'와 민주당의 '혼란' 그리고 야권연대 이상한 모자 2011-11-25 3180
16 어쨌든, 민주당 온건파도 '정권 교체'를 바란다면 [2] 이상한 모자 2011-11-25 3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