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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진보정당의 미래를 고민하다

조회 수 2837 추천 수 0 2012.01.13 01:35:40
박용진을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진보누리’라는 인터넷 토론 커뮤니티의 송년회 자리였다. 당시 박용진은 민중대회에서 정리 연설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돼 집시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고 나온 상황이었는데, 씩씩한 목소리로 다음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을 결의해 많은 사람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남아있다.

박용진은 학생운동을 하다 1997년 국민승리21에 결합해 권영길 후보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도우며 진보정당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그가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강북을 선거구에 민주노동당의 당적을 갖고 출마했을 때 당시 진보정당으로서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13.12%라는 높은 득표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2004년 총선에서 그가 더욱 좋은 결과를 보여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시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아 피선거권이 박탈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는 2004년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2007년 민주노동당 분당 국면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분당에 반대했다. 사실상 분당을 결정하게 된 대의원대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단결을 호소하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진보신당에 와서는 ‘복지국가 건설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을 포괄하는 야권통합’을 주장했다. 민주당 정권 10년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진보신당 내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기는 힘든 주장이었다. 진보신당에 몸을 담고 있었던 주요 정치인들이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결의하자 그는 보다 넓은 통합을 해야 한다며 혁신과 통합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박용진의 이름을 일간지 정치면에서 본다. 그가 민주통합당 지도부 예비경선에 출마해 1차 경선을 통과하며 파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주요 일간지의 지면에서 발견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반가움의 끝에 엷은 씁쓸함이 남는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제 많은 진보정당의 당원들은 그를 ‘배신자’로 기억할 것이다. 나도 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종종 그런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박용진의 ‘배신’은 오로지 그가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선택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화두는 진보정당의 무기력함과 무능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진중공업 문제는 어떤가?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그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감격했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김진숙 지도위원의 오랜 투쟁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각별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각별함의 뒤를 조금 더 잘 살펴보면 일종의 죄책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동영 의원이 조남호 회장에 대한 청문회 자리에서 한진중공업에서 투쟁하다 죽어간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들을 아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진보정당이 못한 일을 정동영이 해준 것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다. 김주익의 자살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진보정당이 해결하지 못한 것을 민주당과, 정동영과, 트위터와, 희망버스와, 이름 없는 많은 시민들이 해결한 것이다. 오랫동안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운동을 지지해온 김진숙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죄스러운 일인가?

아마 박용진도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정치를 계속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몸담았던 진보정당의 책임을 거부하고 떠나버린 박용진의 선택을 칭찬하려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이 앞으로 생존하려면 자신의 존재의의와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어려운 싸움을 시작해야만 한다. 박용진의 욕심을 진보정당이 채워주지 못한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여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진보정당은 소멸한다는 것을 진보정당의 지지자들은 깨달아야만 한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201101608011

댓글 '3'

바람모리현무

2012.01.14 10:25:10
*.234.222.2

 짧지만 간결한 기승전결, 예전의 큰스승으로 돌아오고 계시군요. 던지고자 하는 메세지가 분명해진 느낌이십니다 :)

잉명

2012.01.15 07:16:21
*.169.212.132

좋은 글입니다

임승수

2012.01.15 08:32:47
*.140.187.13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박용진씨가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로 있어서 참 당황스럽더군요. 진보정당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겠지요. 사회의 모든 역량들이 올라오면서 진보정당도 좀 더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주변으로 자장의 범위를 넓혀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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