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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한나라당 비대위 구성을 두고 연일 찬사와 탄복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안철수의 멘토', '하버드 출신 20대', '벤처사업가 1세대', '보수 논객' 등의 외부인사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 비대위원회의 공식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내놓은 것은 디도스 사건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세간에 언급되고 있는 최구식 의원에 대한 탈당 권유와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 4대강 정비사업 등 이명박 정부 핵심 정책과의 선 긋기 등인데, 이런 것들은 한나라당이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나라당이 그야말로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난다고 하면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합리적 보수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울만한 자격을 갖추게 된다면 한국 정치도 일보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오후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첫 비대위 회의에서 비대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주영 정책위의장, 황우여 원내대표, 이상돈 중앙대 교수,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 박근혜 비대위원장,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조동성 서울대 교수,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 주광덕, 김세연 의원. ⓒ연합뉴스

하지만 비대위의 이러한 구성이 한나라당의 쇄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물론 앞서 언급한 비대위의 첫 번째 조치들은 한나라당의 쇄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핵심적인 것은 이러한 이벤트적 요소들 보다 한나라당이 대의정치의 영역에서 어떻게 행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실제로 한나라당의 당무가 어떻게 집행되는 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비대위원회 구성에 따라 외부인사들의 입김이 클텐데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실제 비대위가 한나라당 내부의 모든 당무에 대해 책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공천, 선거기획, 홍보전략 등 핵심적인 것들에 대해 한나라당의 기존 정치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해 얘기하자면 계파에 대해 얘기할 수 밖에 없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구-친이계 인사들을 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는 친박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 되는데, 구-친이계 정치인들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친박계 정치인들 쪽으로 권력의 추가 기울어진다면 이는 좋은 '반란'의  구실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실제 당무의 상당 부분에는 그간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느슨한 동맹 관계를 이어 오면서 한나라당의 전면적 쇄신을 외쳤던 쇄신파들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할 수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의 결별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이 또 어렵다. 쇄신파들의 불안감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나치게 낮은 인기로 인해 자신들이 총선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의 전면적인 차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 비대위원회가 '구호'를 통해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것이 일종의 '양해'의 범위 내에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김정일 사망 후인 12월 22일 여야 대표와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50분간 독대를 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보아야 할 필요 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측은 '예산국회와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전했지만 이 말을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반 년만에 50분간 독대를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혼자서 '요즘 상황이 어떻고' 하는 얘기를 늘어놓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당연히 한나라당의 쇄신과 공천, 이후 행보에 대한 일정 정도의 합의 또는 양해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보면 결국 박근혜 비대위원회가 선택한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라는 방향이 정책과 구호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될 수 있겠지만 실제 권력의 구조를 건드리는 핵심적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물론 쇄신파들의 상당수는 정책과 구호로서의 차별화라도 감지덕지라는 분위기겠지만 공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무슨 불똥이 돼 튈 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외부인사들이 통제되지 않는 발언을 언론 등을 통해 연일 계속하는 경우 박근혜 비대위원회 체제에 반감을 갖고 있는 구-친이계 인사들을 자극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의 합의와 양해는 이들을 끌어안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박근혜 비대위원회의 파열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이들의 몇 가지 발언은 몇몇 인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만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대위원으로 '정치개혁 및 공천제도' 분과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상돈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대적 인적쇄신'을 언급하며 이재오 의원이나 이상득 의원 같은 정권 실세들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언급은 당 내 계파 갈등이 잠시 떠오르지 못하게 짓눌려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친이/친박 구도를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당 내 혼란을 아주 나쁜 상황까지 끌고 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과는 반대로 만일 외부인사들의 발언이 과도하게 통제되고 이들의 여러가지 불만이 제기되는 상황이 되면 '쇄신'의 의지가 꺾이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상당한 수준으로 제기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위 쇄신파들의 불안감은 다시 증폭될 것이고 박근혜 비대위는 또다시 파열음에 휩싸이는 상황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쇄신파 중에서도 강경한 몇몇은 여전히 박근혜 비대위에 대한 여러가지 우려와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23일 정두언 의원이 박근혜 비대위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경제정책 뿐 아니라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전향적 변화를 보일 기회였는데 박근혜 체제는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강력한 성토를 내놓은 것이 그렇다.

물론 대북정책에 대한 것으로 당 내의 많은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선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공천'문제, 특히 영남권 물갈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어떤 상황으로 이어지겠는가? 박근혜 비대위에 대한 이러한 불만이 계파 간 항쟁으로 비화되거나 최악의 경우 집단 탈당으로 이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 박근혜 비대위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사고가 안 나는 수준에서 서커스와 같은 줄타기를 펼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행보는 '뼈를 깎는 쇄신'이라는 표현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수면 위로는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물 밑에서는 열심히 발길질을 하는 백조의 모습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들이 안고 있는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 것인지 전망해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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