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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야권 대통합’이라는 동상이몽

조회 수 3225 추천 수 0 2011.12.19 22:12:49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던 야권 통합 논의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의 드라마틱한 등장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안철수 원장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야권 통합 논의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간의 문제였다. 민주당이 자신의 ‘왼쪽에 있는’ 모든 정당들의 지지를 획득해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1 대 1 구도를 형성해야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전망을 많은 사람들이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진보정당에 무엇을 얼마나 양보할 수 있는지, 양보의 대가는 무엇인지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이 등장하고 선거게임에서 부동층 혹은 중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강한 열망이 바람으로 표출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안철수 원장의 등장부터 무소속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에 이르기까지 과정에서, 2012년에 불 수 있는 바람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즉각적으로 반영하듯 그전까지 진보정당과의 통합과 연대에 방점을 찍던 사람들의 발언도 방향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왼쪽과의 통합’이 핵심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정치 바깥과의 통합’이 핵심이다”는 것은 ‘혁신과 통합’ 쪽의 공공연한 주장인데, 이런 표현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상황의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안철수 시프트, 좌우에서 안팎으로

이렇게 ‘다른 방향’이 제시되고 나서야 야권 통합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가능해졌다는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왼쪽과의 통합’에 대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발언해왔고, 이루려 노력해왔지만 실질적 진척은 없었다.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정치세력과 협상해야 하는 것이므로 서로 풀어야 할 복잡한 매듭에 각자가 손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바깥과의 통합’이라는 것은 실제로 대의정치 내부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정치적 존재들에 대한 것이다. ‘왼쪽과의 통합’과 비교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의지의 문제’로 바꿔 설명할 수 있다. 정치 바깥에 머물고 있는, 하지만 안철수 원장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면 언제든 대의정치에 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자기 혁신을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발견하는 것은 야권 통합 논의가 흔들리고 있다거나, 민주당 내부에 이것으로 인한 파열음이 나고 있다는 얘기 등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제 이런 의문은 민주당을 둘러싼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정치 바깥과의 통합’이 범야권의 대의정치 공간 안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 내부의 특정 정파 간 통합으로 번역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자유주의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정치 바깥’은, 참여정부의 실패와 이로 인해 불거진 내부의 정파 투쟁을 통해 대의정치 공간을 떠나버린 ‘친노’ 그룹을 달리 부르는 말이 돼버렸다. 시민들의 정치개혁 요구를 수용하고 범야권 통합을 이루어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주장을 내건 ‘혁신과 통합’은 비록 자신들이 시민사회의 일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요직에 있었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 노선을 함께한 사람들이 다수 참여한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전통적 기득권층에게 불안감을 선사한다.이 불안감의 핵심은 2003년의 뼈아픈 기억이다. 2003년에도 새천년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 개혁을 내세우며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주도하는 바람에 사실상 자유주의 세력이 양분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때 분열은 정권 말기가 되어서야 해소되었고, 이 과정에서 몇몇 유력한 정치인은 일자리를 잃었다. 이 역사를 잘 아는 민주당 안의 정치인들이 ‘혁신과 통합’과의 협상 과정에서 또다시 사실상의 분당 수순을 밟게 되는 것 아닌가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정반대편에서 순진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거의 교훈이 있으므로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분열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현실은 계속 분열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것은 왜일까?

자유주의 세력에 외부는 곧 ‘친노’

비록 대의정치 내부의 공간에서 ‘정치 바깥’이 ‘친노’로 대표되고 있지만, 대의정치 공간을 벗어나면 여전히 ‘정치 바깥’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현실 정치에 냉소적인 다수의 소시민들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렇다. 이들은 정치개혁을 요구한다. 대의정치 공간에서 ‘정치개혁’이란 100가지 말을 늘어놓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한 가지 행동을 시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자신의 뼈를 깎는 혁신, 즉 ‘공천개혁’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통합 논의에서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공천개혁’의 핵심은 현역의원 다수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결정을 현역의원 자신의 손으로 내려야만 한다. 특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다. 민주당이 호남 지역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한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므로, 결국 ‘뼈를 깎는 혁신’은 호남 지역 정치인들에게는 자신의 머리로 날아오는 철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의원 같은 중앙정치에 영향력이 큰 계파 수장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공천을 못 받는 경우는 없고, 그것보다는 정권 교체가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논란에 큰 관심이 없다. 특히 손학규 의원은 민주당 대표임에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의에 동참하자’는 헐거운 메시지를 보낼 뿐이다. 박지원 의원 정도만 호남 지역 정치인들을 달래고 어떻게든 통합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 요구는 호남 정치인으로 향하고

자유주의 정치세력에서 ‘현역 정치인’이 갖는 불안감은 또 다른 원인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새진보통합연대가 구성하는 진보정당 블록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비록 야권 통합의 핵심은 여전히 ‘정치 바깥과의 통합’에 있지만, 이전보다 덩치를 키운 새로운 진보정당이라는 ‘왼쪽과의 통합’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이들이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선거연합을 거부하고 독자적 출마를 감행한다면, 모두가 그렇게 바라 마지않는 정권 교체가 요원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보정당도 이 상황에 대해서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는 듯하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주요한 지도자인 노회찬 전 의원은 이전부터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약속하면 얼마든지 선거연합에 응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또 다른 지도자인 심상정 전 의원은 “선거연합을 통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진보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국민참여당의 간판 스타던 유시민 전 의원은 “야권 대통합은 진보정당까지 함께해야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통합의 대의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늘 밝혀왔다.

그래서 이들이 2012년의 정치 일정에서 일관되게 운용할 만한 전술은 정치협상을 통한 선거연합으로서, 총선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선거구를 할양받고 대선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실질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전술을 고려한다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입장에서는 진보정당에 제공해야 할 선거구의 리스트를 확정하고, 거기에서 대기하던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정치지망생 혹은 현역의원의 기회를 박탈해야 하는 곤란함에 빠지게 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은 것임은  분명하다.

통합진보당의 위상은 ‘협조자’

그러나 그 모든 장애물을 넘어 야권 통합을 통한 정권 교체에 의해 우리 사회가 한 발짝 더 진보적 가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면, 대의정치 공간의 정치세력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응원할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이쯤에서 좀더 진지한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야권 대통합으로 생명을 얻어 집권하는 정치세력들이 만든 세상이 과연 우리를 좀더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에서 살게 해줄 수 있을까?

대중의 광범위한 냉소는 대의정치 공간에서 각 정치세력이 ‘개혁’에 매진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치에 대한 냉소가 큰 만큼 정치개혁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어느 때보다 큰 시기다. 따라서 차기에 집권하는 정치세력의 운명은 다음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첫 번째는 이 개혁정부가 실질적으로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올 만한 거창한 개혁을 실시하는 경우다. 통치에 의한 커다란 사회적 변화는 언제나 그와 상응하는 정도의 반발과 혼란을 야기한다. 게다가 그런 ‘사회적 변화’는 반드시 ‘진보적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장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이미 겪은 바 있다. 바로 참여정부의 예다. 이들의 실패로 생겨난 실망과 조소는 결국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역사가 반드시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를 잘 운영하기 위한 개혁정부의 여러 가지 노력이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문제가 된 상황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 각지에 사례가 부지기수다. 야권 대통합의 결말은 다를 것이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는가?

집권 이후 더 큰 위기 맞을 수 있어

두 번째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중심이 된 개혁정부가 충분한 개혁적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현상을 유지해 대중의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다. 이 경우 대중의 정치에 대한 냉소는 한층 더 심화될 것이고, 사회의 구체적 모순에 대해 발언하기보다는 구체제를 일소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여론이 팽배해질 것이다.

핵심은 이런 상황, 개혁정부로부터 대중의 마음이 떠나고, 그것이 더욱 커다란 ‘정치 바깥’을 향한 열망으로 표현되었을 때 책임질 수 있는 정치세력, 혹은 그 맹아가 존재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바람직한 상황은 그 열망을 진보정당이 끌어안고 역사의 진보를 추동하는 것인데, 한국의 현실에서 새롭게 태어난 진보정당은 이 시기를 준비하기는커녕 개혁정부에 뜻을 같이하는 길로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만약 대중의 이 열망이 아무도 책임지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한국의 대의정치는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하겠다’는 선언조차 하지 않은 안철수 원장이 정국을 주도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위기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경고’에 불과하다. 야권 대통합으로 만들어질 개혁정부의 실패를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의 대의정치는 그야말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이 글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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