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프랑스 대선의 1차 투표 결과가 화제다.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가 대중운동연합의 사르코지 대통령을 최종 결선투표에서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득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프랑스 사회당은 미테랑 이후 17년 만에 다시 정권을 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1958년 샤를 드 골로부터 시작된 프랑스 제5공화국 약 45년 역사에서 진보적 대통령이 존재했던 기간이 약 15년(그나마도 좌우동거 정부를 구성해야 했던 기간이 있었다)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프랑스의 진보주의자들이 정권교체에 대한 절실한 열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정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프랑스 대선의 1차 투표 결과에는 이러한 사정 이외에도 우리가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극단적인 반-이민자 정책을 주장하는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18%에 가까운 득표를 얻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2005년의 소위 ‘방리유 사태’와 작년 여름에 있었던 노르웨이의 ‘브레이비크 사건’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은 대중의 분노에 대해 정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 2010년 사르코지 정부의 연금개혁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프랑스 고등학생들. | 연합뉴스

2005년 프랑스 방리유 사태는 오랫동안 차별받으며 경제적 고통에 시달려온 이주민들이 집단으로 소요를 일으킨 사건이다. 프랑스는 이 때문에 1955년 이후 처음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했고, 이는 프랑스 사회에 큰 상처로 남았다. 작년 여름 노르웨이의 브레이비크 사건은 경제적 불안이 이민자들로부터 비롯됐다는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이 집권 노동당의 청소년 정치캠프를 습격해 무차별 총격을 가한 사건으로 유럽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두 사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진보세력의 협력 아래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개혁조치들로부터 비롯된 위기의 책임이 대중들에게 전가되면서 일어난 불만의 표출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러한 불만의 표현이 이민자 문제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방아쇠로 작용했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이 사건들이 해당 국가 권력 재편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브레이비크 사건으로 인해 정치적 이득을 보게 된 세력은 집권세력인 노동당이었다. 이러한 비결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의 단호한 태도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사건 직후 추도연설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테러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다”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사태를 수습하여 이후 총선에서 20년 만에 우파세력과 최대 격차를 보이며 승리할 수 있었다. 

반면 프랑스 사회당은 방리유 사태, 최초고용계약 투쟁 등으로 요약되는 2005년 내내 최악의 정치적 무기력으로 일관하기만 했다. 이는 2007년 대선의 패배로 이어져 지금의 사르코지 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기대 이상의 득표를 한 것은 진보의 재앙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체제의 균열로 인한 대중의 분노가 갈 곳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때, 정치적 원칙을 가지고 대안을 제시하는 진보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극우세력의 출현과 성장으로 이어지고 만다는 교훈이다.

2차 결선 투표에서 사회당 올랑드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프랑스 진보세력이 무기력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대중은 중도좌파 정부에 등을 돌릴 것이고, 불만의 계절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때 이 불만을 이번 선거에서 멜랑숑을 후보로 낸 좌파전선 같은 세력이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상황은 한국의 진보정당들에도 고민거리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교훈을 얻은 이들이 보다 대중적이고 대안적인 진보정치를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205021132221

댓글 '3'

작은스승

2012.05.03 08:25:34
*.216.95.30

그냥 쓰잘데없는 지적.

득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득표했기 때문이다

한문장 안에서 '~~대해'가 두번 겹치는 것도 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음.

이상한 모자

2012.05.03 10:08:14
*.180.114.103

맞습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쓰면 늘 어색한 표현이 나오더군요. 고맙습니다.

작은스승

2012.05.03 10:20:40
*.216.95.30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런 글을 쓰실 수 있다니! 내추럴 본 이 시대의 큰 스승 같으니!

진중권 글은 논리도 논리지만 문장이 정확해서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5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 [1] 이상한 모자 2012-05-07 17284
54 [한겨레21/크로스] 이주의 트윗 - 인간, 안철수 [3] 이상한 모자 2012-05-03 2188
» [주간경향] 프랑스 대선이 주는 교훈 [3] 이상한 모자 2012-05-03 2125
52 [펌/미디어스] 3인 청년논객이 바라보는 총선 평가 및 전망 [3] 이상한 모자 2012-04-23 2486
51 민주통합당, 안철수 끌어오기 전에 해야할 일 [11] 이상한 모자 2012-04-17 3474
50 투표는 우리의 마지막 무기다 이상한 모자 2012-04-12 1697
49 안철수와 정운찬의 등장, 어떤 의미인가? 이상한 모자 2012-04-03 2553
48 여야 공천 완료, 향후 정국 시나리오 대방출! [2] 이상한 모자 2012-03-24 3587
47 진보신당다운 비례대표 1번 이상한 모자 2012-03-22 2365
46 [한겨레21/크로스] 이주의 트윗 - ‘김진표 공천 논란’ [1] 이상한 모자 2012-03-19 3052
45 탈북자에 대한 보수의 '액션'이 국내용인 이유 이상한 모자 2012-03-16 2008
44 누가, 인터넷과 SNS를 해롭다 하는가? [1] 이상한 모자 2012-03-07 2398
43 MB는 왜 사과하지 않았을까 이상한 모자 2012-03-04 2530
42 'X맨'은 김진표가 아니라 민주통합당이다! [3] 이상한 모자 2012-02-28 2501
41 변희재의 ‘안티 포털’을 다시 생각하며 [4] 하뉴녕 2012-02-26 9923
40 계파갈등은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1] 이상한 모자 2012-02-25 2367
39 [주간경향] 2030과 키보드워리어 - 그들이 뉴스를 읽는 방법 [1] 이상한 모자 2012-02-18 2340
38 [미디어오늘/인터뷰] “‘누구 편인가’만 묻는 건 진보가 아니다” [3] 이상한 모자 2012-02-15 8869
37 사이버스페이스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위한 공간일 수 있는가 (칼방귀) 하뉴녕 2012-02-12 3763
36 새누리당의 모든 것은 이제 박근혜 책임이다! [1] 이상한 모자 2012-02-10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