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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난세가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잠시 잠들어 있던 용들이 몸을 다시 일으키는 것 같은 모양새가 정치권에 연출되고 있다. 다소 호들갑스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요즘 소위 ‘거물’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니 이러한 상투적 표현을 새삼 꺼내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8개월 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관련하여 이러한 움직임을 파악해보면 더욱 흥미로운 상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발짝 더 정치권으로 다가온 안철수
 
가장 먼저 도착한 소식은 안철수 원장의 행보에 대한 것이다. 한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둬 왔던 안철수 원장이 드디어 ‘무언가’의 행보를 재개한 것이다. 대학 강연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언급을 남기고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 인재근 후보와 송호창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 이 ‘행보’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한동안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피해온 안철수 원장으로서는 명백하게 어떤 ‘의도’가 있을만한 행위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편지 정치’가 다시 시작되는지 여부 등을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 민주통합당 인재근 후보가 트위터에 공개한 안철수의 지지발언

이것은 과연 어떤 의도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 첫 번째로 보아야 할 것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보여줬던 안철수 원장의 행보가 비슷한 정도로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원장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보다는 지지할만한 명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찍어서 지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는 점을 눈 여겨 봐야 한다. 인재근 후보나 송호창 후보의 경우 오랫동안 특정 정당에서 정치를 해왔던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외부에서 영입된 것으로 보이는 케이스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안철수 원장이 박원순 후보를 지지할 때의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최대한 기존 정치권과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후보를 측면지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박원순 시장 때와는 분명 다른 부분도 있음을 알아챌 수도 있을 것이다. 인재근, 송호창 후보는 어쨌든 민주통합당이라는 분명한 당적을 가지고 있다. 박원순 후보는 무소속 후보였으므로 새로운 정치를 강조해온 안철수 원장이 지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매우 확실하게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인재근, 송호창 후보의 경우도 과연 그런가? 결국 이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은 안철수 원장이 기성 정치권의 특정 세력과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민주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안철수 접촉설’은 이런 느낌에 더욱 신뢰성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민주통합당이 안철수 원장을 영입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최소한 어떤 교감을 나눴으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재근, 송호창 후보에 대한지지 의사 표명과 대학 강연에서의 발언 등을 이러한 교감의 결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어찌됐건 지금의 행위들은 안철수의 정치적 포지션이 민주통합당의 그것에 가까운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소위 시민사회세력이 민주통합당의 창당에 관여하고 실질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으로 이를 인정하고 있는 정세 자체가 안철수 원장의 행보를 협소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안철수 원장이 자신이 행위가 어떤 파괴력을 갖고 있는지 모르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특정 정당의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은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의 완투인가, 안철수의 등판인가
 
그렇다면 안철수 원장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대권과 관련한 지형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로 지적해야 하는 것은 아직 야권의 대권주자가 딱히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재인 이사장이 가장 경쟁력 있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대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승리할 가능성을 기대해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민주통합당으로 대표되는 야권의 내부 정치 상황이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를 야권의 대표선수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의 근거가 된다.


▲ 지난달14일 열린 민주통합당 부산 공약발표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

때문에 문재인 이사장으로서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해서 명실상부한 야권의 대표선수로서 위상을 획득하고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이길 수 있을만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대선이 다가오는 시점까지 문재인 이사장이 힘을 받지 못한다면 야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에게 패배하거나 PK지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사실상 대권의 기회가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 이사장이 그렇게 꺾이면 대권후보로 내세울 선수가 없는 야권은 사실상 패닉상태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 때 안철수 원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 있다. 이미 안철수 원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대중적 파괴력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되면 안철수 원장은 야권의 ‘마지막 카드’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을 통해 안철수 원장 개인으로서도 가장 편하게 야권의 대표선수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이러한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더욱 분명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안철수 원장의 민주통합당 후보들에 대한 지지발언이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운찬의 역습, 친이의 희망?
 
그렇다면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이러한 상황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정운찬 전 총리의 행보를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분명해진다. 정운찬 전 총리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새누리당 내에 아직도 친이-친박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당을 장악하고 당 색깔을 확실하게 바꿔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친이계 낙선자들과 국민생각, 자유선진당 등이 새누리당 밖에서 연합하게 되면 상황은 여권의 대표선수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권후보로 설 수 있는 인물이 가세하면 사실상 비-박근혜연합 프로젝트는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된다.


▲ 지난달 29일 동반성장위원장 사퇴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연합뉴스

이것을 완성할 수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정운찬 전 총리인 것이다. 때문에 정운찬 전 총리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에서 사퇴하는 것을 대권행보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아주 틀린 해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려면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패배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총선에서 패배하면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고 이렇게 되면 보수세력 전반에 정계개편이 일어나게 되며 이 과정을 주도하는 사람이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정운찬 전 총리를 이 과정의 중심에 놓고 사고하면 결국 정운찬 전 총리가 ‘보수세력의 안철수’와 같은 포지션에 서게 된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다. 때문에 정운찬 전 총리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지기 전 까지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정치에 자꾸만 손을 대는 묘한 스탠스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이번에는 한 번 이런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자. 유권자의 이념적 성향을 좌로부터 우까지 늘어놓고 지금까지 언급된 대권주자들이 획득할 수 있는 지지층을 구분해본다면 박근혜-정운찬-안철수-문재인의 순서가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유권자들이 가장 열렬하게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지지할 것이며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가장 열심히 문재인 이사장을 지지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운찬, 안철수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을 위한 시나리오는 결국 중간층 획득 싸움으로 귀결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정운찬 전 총리가 적절한 방식으로 정치권에서 자기 영역을 획득하는 것만으로도 안철수 원장의 경쟁력은 조금씩 손상될 수 있다. 즉, 지금 정운찬 전 총리가 가진 정치적 파괴력은 대단히 미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후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최소한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지우개로서 작동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총리시절의 처신을 생각해볼 때 정운찬 전 총리가 그 정도의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보수세력의 대안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안 된다는 교훈도 있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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