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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진보신당다운 비례대표 1번

조회 수 2365 추천 수 0 2012.03.22 14:18:57
진보신당이 비례대표 후보 순위 1번으로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비정규노동자 김순자씨를 공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SNS 공간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SNS 여론을 보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보신당의 이러한 결정에 놀라움을 나타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신선한 결정’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사실 청소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된 일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통합진보당에 몸담고 있는, 2008년 당시 민주노동당의 홍희덕 의원이 바로 청소노동자 출신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신선함이 없었다. 왜였을까?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노동자 김순자씨. | 경향신문

첫째로 이 두 사람이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홍희덕 의원은 1993년 경기도 의정부시 환경미화원으로 청소노동자 생활을 시작해 1998년 동료의 억울한 죽음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후, 전국적 조직력을 갖춘 민주연합노조의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즉 2008년 공천을 받을 때에 그는 이미 커다란 조직의 수장이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김순자씨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그녀는 2006년에 노조에 가입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고, 2007년 정몽준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울산과학대에서 두 달간 천막농성을 벌여 부당해고 철회 등의 성과를 냈다. 그녀가 속해 있는 울산지역연대노조는 지역의 작은 노동조합 조직들이 모인 것으로서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조직이다. 즉 김순자씨의 공천이 계파나 거대 조직에 대한 배려로 해석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외부적 요인도 김순자씨의 비례대표 공천을 돋보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민사회세력과의 통합 이후 정치개혁의 주체로 주목받았던 민주통합당이 내부 계파 간의 파워게임이 갈등양상으로 드러나 국민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주는 가운데 통합진보당 역시 서로 다른 계파들의 합의와 조정이 절실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비례대표 공천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니 상대적으로 작은 이득에 연연하지 않는 진보신당의 결정이 돋보이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보신당에 대한 그동안의 선입견도 이번 결정을 충격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한몫 했다. 진보신당의 대표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 지식인인 홍세화 선생이다. 최근에는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가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뉴스도 나왔다. 이러한 상황만 보면 진보신당은 지식인과 명망가의 정당이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라면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를 가장 당선 가능성 높은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하겠다는 결정은 당연히 신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김순자씨가 실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을 경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의정활동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전문성이 필요할 것인데, 청소노동자에게 과연 이러한 역량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단지 직업만으로 의정활동에 필요한 전문성이 부족할 것이라는 점을 예단하는 것도 부당하지만,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정치는 의원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이 함께 하는 것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반론을 대신하고 싶다. 보수정치는 인물에 의존하지만 진보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설계하는 것이 세계적 표준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국 진보정치의 대표선수들도 전부 그런 식으로 키워졌다.

오히려 진보신당의 이번 결정은 진보정치가 이론과 실천이라는 양 날개로 난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진보정당다운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진보정치가 국민들에게 이런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우리 사회가 더욱 살 만한 곳으로 변화하리라는 기대가 헛된 꿈으로 끝나지 않는 날이 곧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203210958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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