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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칼방귀 창간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칼방귀 창간호에서 가장 긴 원고인듯 합니다. 칼방귀 및 그 창간호에 대한 정보는 여기 http://blog.naver.com/fromthebooks/150130716122 서 확인하세요. <공간 : 씬의 마굿간>이라는 특집을 구성하는 원고 중 하나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사이버 민중주의'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http://weirdhat.net/xe/etc/39514 , 인터넷 담론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하려면 '커뮤니티 민주주의'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 글 후반부에 그에 대한 얘기가 다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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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지에 글을 쓰려다 보니 주제가 전혀 다른데도 본인의 부족한 음악적 소양에 대해 ‘열폭’부터 하게 된다. 물론 소양이 부족한 건 스스로 그 분야에 취향이 없기 때문이지만, 우연적인 요인도 있다. 청소년 시절 내 부모님은 좀 재미가 없는 분들이라서 자녀가 공부 이외의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좀 더 적극적인 성격이었다면 운동을 한다든가 친구와 놀러다닌다든가 하면서 부모의 인내심을 시험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좀 꽁한 구석이 있는 사교성 없는 아이였는지라 부모가 “공부만 해.”라고 하면 “알았어.”라고 내 방에 들어가 딴 짓을 하는 길을 택했다.

 


어떤 개인사 : ‘자유’를 위해 찾아든 사이버스페이스

 


그래서 나는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독서를 미칠 듯이 좋아한다고 믿고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기껏해야 독서 정도가 내 방에서 몰래 숨어서 하기에 알맞은 취미였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야간자율학습이 실시되자 불만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는 차라리 ‘야자’를 하는 쪽이 더 편했다. 부모 눈을 피하는 것보다는, 선생 눈을 피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음악에 취향이 있는 친구들은 학교에 CD 플레이어를 들고 다녔는데, 나는 아버지가 쓰던 워크맨에 Toeic 듣기 테이프나 넣어 다니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끔 친구들이 한 귀에 꽂아준 음악은 시끄러울수록 더 끌렸다. (세기말이었고, 그때 내 친한 친구들은 마릴린 맨슨으로부터 시작해서 블랙메탈이니 고딕메탈이니 하는 것들을 듣던 차였다.) 아마도 내 정신세계가 꼬여 있었기 때문일 게다. 추정컨대 내 부모가 문화적 행위에 더 관대했다면 나는 메탈을 들으면서 사회에 반항한다고 믿는 어떤 청춘의 유형을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독서와는 별개로 어느 순간부터 내가 파고들게 된 곳이 사이버스페이스였다. 독서는 쾌락을 줬지만 나는 한편으로 그것에 대해서 누군가와 함께 떠들기를 바랐다. 내가 읽은 책을 친구들도 읽기를 바랐고 그런 후에야 그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던 비슷한 취미를 가진 이들의 담화를 좀 더 폭넓게 추구하려다 보니 당시 친구들이 활용하고 있었던 PC통신이 눈에 띄었다. ‘PC통신의 시대’는 곧 ‘인터넷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내 부모님은 PC통신에는 심드렁했지만 인터넷은 집에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IMF 이후 한국 사회에 ‘정보화 고속도로’가 강요되던 시점이었다. 나는 다음 카페에 있는 내가 읽던 소설책 동호회에 접속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부터 사이버스페이스는 내 자유의 공간이 되었다.

 


공간의 문제와 투쟁의 발랄함의 상관관계?

 


이 짧은 개인사는 ‘정치적 실천’과 ‘공간’의 문제에 대해 뭔가 말하는 듯도 싶지만, 아직 중간단계가 많이 비어 있다. 그러나 중간단계를 꼼꼼하게 짚기 전에 눈에 띄는 반대편의 극점을 찍어본다면 ‘2008년 촛불시위’란 사건을 꺼내들 수 있을 게다. ‘그 시위’는 2002년과 2004년 촛불시위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달랐다. 이전의 촛불시위들에서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온 시민’들을 이끌어내고 매개한 것은 사실 ‘기존의 운동단체’에 실망한 그 내부의 분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시민들 대신 기존 운동의 문법들과 마찰을 겪었다. 그러나 2008년 촛불시위에선 정치에 익숙한 이들의 눈으로 보기엔 ‘느닷없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기존의 운동단체들은 소리를 죽이고 이들 시민들이 벌이는 판을 지원하기 위해 따라다녀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일부 지식인들은 느닷없이 인터넷 소통문화의 긍정성을 예찬하였다. 촛불시위로 사람을 이끌어낸 동력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가령 고병권은 “기존 단체들은 민주주의 연습이 되어 있지 않던 반면 오히려 인터넷에서 나온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연습이 되어 있었다.”고 진단하고, 그들이 ‘매개’가 없이 활동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고병권 등의 이러한 예찬은 수사 자체가 ‘오버’스럽단 점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지난 십여 년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실제로 구성된 의사소통 방식의 변천을 주시하지 않은 자신들의 무능을 은폐하기 위해 나온 ‘급작스러운’ 환호였다고 생각된다. 이 지점에서 그들이 놓친 것은, ‘매개가 없다.’는 무협소설적 말장난(가령 저 유명한 김용의 <소오강호>에서, 주인공 영호충은 ‘무초식’의 검법을 펼쳐 천하제일 검술을 뽐낸다.) 이전에 필요했던 ‘새로운 매개 방식’에 대한 분석 및 성찰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공간이 현실의 공간과 관계맺는 방식일 것이다.

 


사실 촛불시위의 참여자들 역시 그들을 향한 상찬에 눈이 멀어 현실의 공간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여러 행사를 다니다 보면 “왜 노동자들의 파업은 촛불시위처럼 발랄하게 하지 못하고 엄숙하고 숙연해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나?”란 질문을 객석으로부터 흔히 듣는다. 그들은 아프리카TV에서 시위상황을 확인하고 친구들과의 휴대폰 문자를 통해 전경의 위치를 파악하고 우회해가는 그들의 활동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방어선을 우회’하는 촛불시위 특유의 발랄함은 그들에게 지켜야 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령 2007년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외박>(김미례,2009)을 본다면, 우리는 그녀들의 매장점거 투쟁이 초기에 얼마나 발랄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홈에버 노동자들의 일상은 업무가 끝난 뒤에 곧바로 가사노동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매장점거 투쟁 초기 그녀들의 분위기는 회사와 가정 양쪽의 ‘노동현장’에서 해방되는 ‘축제’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 발랄함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시피 결국 매장에 투입된 경찰들에게 조합원들이 한 명 한 명 끌려 나가는 처절한 결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심지어 우리 시대의 민주경찰은 성폭력 시비를 우려하여 여경들을 투입하는 ‘배려’를 한다!). 파업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점거하지 않으면 투쟁에서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공간’의 문제에 대해서 촛불시위 참여자들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촛불시위를 예찬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 시위가 다른 모든 투쟁에 모범이 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만 1년 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강제철거 반대투쟁을 벌였던 두리반의 경우는 공간의 문제와 발랄함의 문제를 슬기롭게 접합해 나간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두리반이 지속적으로 공연을 개최해야 했던 이유는 언제든지 철거용역이 침탈할 수 있는 그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움집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두리반은 공연을 홍보하고 사람을 모으는 과정에서 다음 카페와 트위터 등을 적절하게 활용했는데, 이는 지켜야 할 오프라인의 진지를 염두에 둔 사이버스페이스의 활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사이버스페이스를 정치적 실천의 문제와 연관해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존재나 활용이 오프라인 세계와 다른 별세계란 망상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가령 인간에게 ‘텍스트의 세계’가 ‘사물의 세계’의 위에 덧씌워진, 어쩌면 첫 번째 세계보다도 더 광대한 두 번째 세계라는 것은 명약관화하지만, 이 두 번째 세계 역시 그것들을 구성하기 위한 물리적인 것들(책, 서재, 도서관 등)을 요구한다. ‘텍스트의 세계’에 비하면 훨씬 더 좁은 영역에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사이버스페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가진 이들은 한정되어 있고, 이것들의 생산 및 유지존속 과정에도 화석연료는 소모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이버스페이스의 ‘물질성’에 주목하는 논의가 이 공간에서 생겨난 일이 별다를 게 없고, 자본주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작동한다는 식의 반대쪽 편향으로 치닫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부단히 혁신하고자 하는 체제이며, 새로 생겨나는 매체들은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매체가 바뀌면 지배계급의 포섭전략도 자연스럽게 수정될 수밖에 없고 이에 맞춰 효과적인 저항의 방식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인터넷 정치토론의 역사에 대한 짧은 서술

 


사이버스페이스가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정보를 어떤 식으로 매개하는지 살펴보려면 두 가지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는 ‘디지털 민주주의’라는 장밋빛 이상과는 달리 경향적으로 볼 때 인터넷에서 ‘정치토론’은 점점 더 불가능한 것이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정치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매체의 변동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PC통신→정치웹진→정치토론게시판→메타블로그 서비스를 주축으로 한 블로고스피어→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대표로 하는 SNS>

 


인터넷 초기엔 오프라인의 잡지를 온라인에 구현한 매체인 웹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나, 인터넷에서 가능한 쌍방향 소통의 양식은 자연스럽게 이 흐름을 게시판문화로 전환시켰다. 안티조선 운동을 태동시킨 우리모두와 같은 네티즌 참여 게시판 사이트, 노사모와 같은 정치인 팬클럽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시물을 게시판과 게시판을 오가며 퍼나르며 성업했다. 2002년 노무현의 승리는 사실상 ‘제로보드의 승리’였으며, 그 이후엔 정치성향 별로 서프라이즈(친노 성향), 폴리티즌(민주당 성향), 진보누리(민주노동당 성향) 등의 게시판 중심 사이트가 성업했다. 그러나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달리, 현실세계에서 인터넷의 정치토론은 정치성향별로 끊임없이 분화를 거듭했으며 결국엔 서로 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전체적인 영향력이 축소되는 길을 걸었다.

 


게시판 시대에서 블로그 시대로의 변화와 블로그 시대에서 SNS 시대로의 변화 역시 이 ‘파편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정치토론게시판들이 고립되어 갈 때 블로그 서비스인 이글루스와 게시판과 블로그의 혼합형이었던 미디어몹 같은 사이트들이 성업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일어나는 토론의 양상은 게시판 시절과는 달랐다. 끈질기게 리플이 붙고 관전자들이 덧글로 참견을 했던 게시판 시대와는 달리, 블로그 시대의 논쟁은 트랙백을 통해 이루어졌으되 한쪽이 흥미를 잃고 새 포스트로 밀어내기만 하면 금방 종료될 수 있었다. 물론 SNS 시대에는 이런 경향성이 훨씬 더 강화되어 ‘언팔로우’ 버튼하나면 우리는 논쟁상대방이 마치 내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버릴 수 있게 되었다. 즉 인터넷 정치토론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말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선 디지털 민주주의의 이상에 부합했지만, 그 ‘말’들이 섞이지 않고 ‘비슷한 말’들을 찾아 무리짓기 쉬운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점에선 ‘토론’ 자체에 대한 회의를 가져왔다.

 


‘커뮤니티 민주주의’의 명과 암

 


그런데 앞서 말했듯 2008년 촛불시위에서 고병권이 ‘매개’가 없이 움직였다고 찬탄한 그 시민들은 인터넷 정치토론의 발전을 통해 형성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게시판 시대가 저문 이후 이명박 시대에 잠깐 활성화되었던 다음 아고라와 같은 예외가 있긴 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각종 종류의 취향 커뮤니티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주로 남성들이 많이 찾는 DVD, 축구, 야구, 게임 커뮤니티에서, 대개 여성들이 애용하는 요리, 화장품, 성형 커뮤니티 등에서 ‘광우병 괴담’이 넘실거렸고 정치/사회 게시판이 신설되더니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따라서 고병권이 말했듯 그들이 어디선가 민주주의를 학습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정치학에서 정의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독특한 형태의 ‘커뮤니티 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모두 겪은 것처럼 ‘커뮤니티’에선 각 회원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단지 참여하는 회원만이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 차등적인 권리를 가질 뿐이다. 민주주의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조직에서는 흔히 지도부를 선출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릴 때 표결권이 있는 구성원의 절반 이상 참여/참여자 내 절반 이상 찬성을 통해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커뮤니티에선 종종 표결을 하지만 표를 던지는 사람만 회원으로 치부된다. 그게 커뮤니티의 본질이며, 설령 회원제 게시판이라 하더라도 유령회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결정 이전의 토론에선 활동을 많이 한 ‘네임드’ 회원의 말빨이 먹히며, 실은 ‘민주주의’를 학습했다 찬탄받는 그 수많은 커뮤니티들은 운영자의 ‘전횡’에 진통했던 경험들을 한 두 번씩은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일종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당조직으로 전환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국민참여당(여기 참여한 당원들은 대개 노사모→개혁국민정당→열린우리당→국민참여당의 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및 통합연대와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형성)의 의사결정투표에서 이 진화적 기원(?)의 흔적을 발견해낼 수 있다. 즉 이곳의 당원투표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는 달리 ‘당권자 절반 이상 참여’라는 규정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어째서 촛불시위의 시민들이 다음 아고라의 깃발엔 환호하면서도 운동단체의 제 깃발들엔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운동단체들이 제각기 깃발을 들고 나올 때엔, 크든 작든 각 단체들이 단위마다 자신의 존재증명을 하는 ‘평등주의’를 기반에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평등주의는 ‘커뮤니티 민주주의’에서는 학습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 커뮤니티는 “참여하는 사람이 발언권을 가진다.”는 교훈을 학습하기엔 적절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담보되어야 하는 1인1표의 평등주의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참여’는 자신이 소속되었다 보는 커뮤니티에서의 참여일 뿐 그전에 다른 곳에서 뭘 했는지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어떤 역사적인 관점에서 누군가를 판단하는 시선과도 큰 거리가 있다. 최근 맹위를 떨치고 있는 <나는 꼼수다> 팬덤의 경우 ‘나꼼수’의 출연진들을 ‘민주투사’처럼 취급하면서도 기존 진보세력의 활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그들이 ‘나꼼수’를 비판할 경우 ‘입진보’라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참여하는 이에게 권리를 주는’ 심성과 ‘소속 커뮤니티 내에서의 역사만 따지는 관습’이 합쳐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터넷 정치토론이 분화되고 영향력을 상실해갈 때 오히려 ‘커뮤니티’들은 촛불시위에 사람들을 동원해내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일까? 커뮤니티들은 그러한 분화의 과정을 겪지 않았단 말인가? 사실 커뮤니티 역시 ‘취향의 파편화’라는 인터넷의 대세 속에서 살아왔다. 가령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에 애니매이션이나 장르소설에 대한 취향을 말할 경우, 취향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비슷비슷한 작품 리스트를 공유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취향이 비슷한 이들이 모이게 되고 여러 종류의 작품을 공유할 수 있게 되자 그들은 금세 취향이 분화되어 버렸다. 그래서 오늘날에 이르러선 ‘애니매이션을 좋아한다.’, ‘판타지소설을 좋아한다.’ ‘미드를 좋아한다.’ 정도의 말을 들어선 그가 어떤 방면에 재미를 느끼고 사는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향 커뮤니티’들은 정보공유의 효율성 때문에 하나의 영역에 대한 대형 커뮤니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유행한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져?”라는 표어는 그 성격상 정치토론에 대해선 작동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취향이 다른 이들의 공존을 꾀하는 데엔 유효했다. 그리고 이 대형 커뮤니티들에선 정치토론은 애초에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에 파편화를 막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와우저 사이에선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싸움보단 호드와 얼라이언스의 대립이 훨씬 더 주요한 적대의 축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문제같은 것이 터지자 대형커뮤니티들은 다른 정치성향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었다. 결국 다른 정치성향이 다른 이들을 참고 인내하며 같은 공간에서 만날 때에야 중요한 순간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더라는 교훈은 인터넷에서의 정치토론, 정치적 공론장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듯 하다.

 


그리고 SNS의 세상, 파편화와 공감 사이에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형성된 ‘주체’란 게 있다면, 오늘날 그들이 맞닥트린 역사는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습속으로 SNS 세상으로 들어선’ 시국에 놓여 있을 것이다. SNS의 경우 기능만으로 볼 땐 타임라인(트위터)이나 뉴스피드(페이스북)을 온전히 자기 스스로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치 홀로 세상을 판단하는 철학적 자아들의 모임인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트위터에서 집중해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모두 각자의 타임라인을 가진다. 신문의 편집은 편집자의 몫이고, 포탈사이트의 뉴스배치도 기획자의 의지에 달려 있으며, 커뮤니티나 게시판의 정보공급은 수많은 자아들의 욕망이 조응된 산물이긴 하지만 여하간 ‘주체’의 입장에선 주입된 것인 반면에,(블로그의 경우는 스스로 편집권을 가지지만 자신의 글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보습득의 차원에서 함께 논의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임라인을 구성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설령 팔로우가 ‘0’인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물리적으로 보는 타임라인은 텅빈 공간으로서 동일할지언정,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상 리스트 기능을 사용하거나 무의식중에 자주 방문하는 트위터 목록의 존재 때문에 다른 ‘타임라인’을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타임라인에서 다른 주체들을 만날 때마다 ‘팔로우’와 ‘언팔로우’를 반복하며 자신만의 사이버신체를 구성해 나간다. 이것은 각 개인에게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돌려준 반면에, 자신이 원하는 정보들 사이에서만 판단내리는 폐쇄적 자아를 산출해낼 위험이 있다.

 


그러나 SNS가 이전의 인터넷 의사소통과 그 양상을 달리하게 된 지점은 사이버스페이스 내부에서의 ‘차이’가 아니라 그것이 물리적 현실에서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를 통해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일 게다. 2003년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김주익과, 2011년 8년 전 김주익이 자살한 동일한 곳에 올라갔던 김진숙의 차이가 거기에 있었다. 태양전지와 스마트폰을 들고 올라간 김진숙은 “깜깜절벽,절해고도.세상이 깊은 바닷속”이라 여겨질 때 “한두모금 숨쉴 용량만 남은 산소통같은 트윗”으로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김진숙의 크레인 시위에 바쳐진 희망버스라는 이벤트는 사이버스페이스와 정치적 실천의 문제에 대해 촛불시위와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000년대 초중반의 '뉴미디어'로 각광받았던 인터넷 게시판/블로고스피어의 주요한 정치적 화두는 언론운동이었고, 정당운동이었다. 인터넷에서 안티조선 운동이 태도했고 민주당(열린우리당) 지지자와 민주노동당 지지자가 대립했다. 반면 2010년 이후 뉴미디어로 호명되는 SNS의 정치적 화두는 구체적인 투쟁현장에 해당한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두리반 투쟁, 2009년 시위에선 사실상 시민들에게 외면당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이후 활동들에 대한 조명, 마리, 그리고 한진중공업 크레인 85번……. 이에 대해서도 매체론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텍스트의 길이와 빈도 등이 정서적 몰입도의 차이를 가져와 SNS에서는 장기적인 계획에 관한 얘기보다 구체적인 현장에 관한 얘기가 어울린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이 답일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체의 변동은 많은 것을 설명해주지만 모든 종류의 설명을 환원할 수는 없다. 가령 2003년의 정치적 상황에, 지금과 같은 SNS 환경이 조성되었다면, 김주익은 어떤 처지에 놓였을까? 김주익은 트위터를 통해 더 많은 주목을 끌었을 수 있지만 시민들의 지지가 오늘날과 같았으리라고 우리가 감히 확정할 수는 없다. 스스로 막 정치적 주체가 되고자 하는 '시민'들이 있을 때, 십 년의 시간을 두고 이들의 관심사가 현격하게 달라진 현실은 한국 사회의 정치변동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게 내 생각이다. 말하자면 이런 현상의 기저에 깔린 것은 정당이나 언론과 같은 '매개체'에 대한 신뢰가 2000년대 내내 판판이 깨져나가면서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이 피폐해졌던 현실 그 자체다.

 


이처럼 세상 자체가 파편화되어 갈 때, 본성상 파편화를 지향하는 매체인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어떤 반전을 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매체의 ‘속성’은 꼭 한가지 방향만으로 작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서구 이용자들에게 주로 페이스북이 정보전달의 창구로 이용되고 트위터는 사담의 기능을 한다면, 한국어 화자들에겐 오히려 트위터가 주요한 정보전달 통로이자 정치적 관심을 표현하는 장이 되고 있다. 이엔 우연적인 요인 이외에도, 아마 한국어 140자가 알파벳 140자보다 훨씬 많은 정보값을 담을 수 있다는 사정이 겹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한국에선 트위터가 종종 페이스북에 비해선 파편화를 극복하고 공감을 추구하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트위터는 유저를 모종의 ‘취향의 부족’ 안에 위치시키되 그 위치에 안주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우리가 ‘내가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할 수 있는 청정(?)한 타임라인을 만드는데 언제나 방해가 되는 요소는 RT다. 나는 내가 보기에 괜찮은 소리를 한다고 싶은 사람들을 팔로우하여 타임라인을 구성한다. 누군가 싫은 소리를 하면 언팔하고, 좋은 소리가 들려오면 새로 팔로우한다. 다른 사람을 소개받기 위해 RT라는 기능은 필수다. 그런데 내 취향의 부족을 형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그 RT라는 기능이 한편으로는 내 트위터 생활의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내 팔로워들이 뜬금없이 인용하는 다른 사람의 RT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견해들을 다수 포함한다. 트위터에선 “제발 저 사람 트윗 좀 RT하지 말아주세요.ㅠㅠ”라는 호소가 넘쳐나지만 이것은 애초에 유저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트위터에선 나꼼수의 팬과 진중권의 팬, 그리고 김규항의 팬이 으르렁거려야만 한다. 시쳇말로 서로 생까면 그만인 게시판이나 블로그에서와는 달리 오히려 이 가장 폐쇄적인 매체에서 그들은 외나무다리에 선 원수처럼 매번 조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SNS의 속성은 2008년 촛불시위 정국에서 커뮤니티들이 가졌던 그 다양성의 파괴력을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는다. 만약 SNS가 정치적 실천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SNS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란 기술진보론에 대항하여 “SNS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외치는 수많은 이질적인 목소리들의 공로일 것이다. 그리고 ‘삶의 파편화’에 대항하려면 단지 그러한 현장에 경악하고 안쓰러워하는 시민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물론 그것으로부터 시작되기는 하지만) 공동체의 삶을 이성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권력의 구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SNS의 혁명적(?!) 역할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활용한 여러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들을 탐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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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투표는 우리의 마지막 무기다 이상한 모자 2012-04-12 1697
49 안철수와 정운찬의 등장, 어떤 의미인가? 이상한 모자 2012-04-03 2553
48 여야 공천 완료, 향후 정국 시나리오 대방출! [2] 이상한 모자 2012-03-24 3587
47 진보신당다운 비례대표 1번 이상한 모자 2012-03-22 2365
46 [한겨레21/크로스] 이주의 트윗 - ‘김진표 공천 논란’ [1] 이상한 모자 2012-03-19 3052
45 탈북자에 대한 보수의 '액션'이 국내용인 이유 이상한 모자 2012-03-16 2008
44 누가, 인터넷과 SNS를 해롭다 하는가? [1] 이상한 모자 2012-03-07 2398
43 MB는 왜 사과하지 않았을까 이상한 모자 2012-03-04 2530
42 'X맨'은 김진표가 아니라 민주통합당이다! [3] 이상한 모자 2012-02-28 2501
41 변희재의 ‘안티 포털’을 다시 생각하며 [4] 하뉴녕 2012-02-26 9923
40 계파갈등은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1] 이상한 모자 2012-02-25 2367
39 [주간경향] 2030과 키보드워리어 - 그들이 뉴스를 읽는 방법 [1] 이상한 모자 2012-02-18 2340
38 [미디어오늘/인터뷰] “‘누구 편인가’만 묻는 건 진보가 아니다” [3] 이상한 모자 2012-02-15 8869
» 사이버스페이스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위한 공간일 수 있는가 (칼방귀) 하뉴녕 2012-02-12 3763
36 새누리당의 모든 것은 이제 박근혜 책임이다! [1] 이상한 모자 2012-02-10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