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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 당명 개정을 포함해 새누리당의 모든 것은 이제 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책임이 됐다. ⓒ 연합뉴스

한나라당의 새로운 이름인 '새누리당'이 곧 확정될 모양이다. 소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가 국민공모를 통해 선정한 이 이름은 그간 특정 종교를 연상시킨다, 희화화되기 쉽다, 불분명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유승민 의원과 일부 쇄신파들의 요구로 당명개정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의원총회까지 소집되었으나 어이없게도 상당수의 의원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박비어천가까지 늘어놓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결국 당명 개정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던 몇몇 의원들의 생각과는 달리 비상대책위원회의 의도대로 당명이 개정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전부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새누리당 이름을 기준으로 만든 로고와 상징색도 발표했다. 아직 13일 전국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는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사실상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대체 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새누리당'이라는 괴이한 이름을 택했는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인터넷 공간에 새누리당이라는 이름과 로고의 모양을 두고 셀 수 없는 많은 패러디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정치인들이 우리가 보기에 웃기는 일을 할 때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이러한 우스워 보이는 에피소드에도 반드시 어떤 의도가 작용했으리라는 상상을 반드시 해본다. 대체 이번에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름의 생각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단 '새누리당'이라는 이름과 로고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자. 대체 이 이름과 로고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새누리'라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뜻하는 말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좌파들의 욕망이었지만 지금 이 경우에는 새누리라는 이름이 꼭 좌파의 욕망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어떤 새로운 세상인가에 대한 가치판단이 전혀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좌경화해도, 혹은 우경화해도 그것은 어쨌든 새로운 세상이니까 말이다.

새누리당의 로고는 이런 모호함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낸다. 새로운 로고를 보자마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를 떠올렸다. '체셔고양이'라고 불리는 이 고양이는 앨리스를 향해 무슨 말을 하면서 점점 사라져 나중에는 웃음만이 허공에 남게 되는데, 웃는 입을 형상화했다는 로고는 바로 이 허공에 남은 웃음을 연상시킨다.

   
▲ 새누리당의 로고(좌)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 캐릭터(우)

즉,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이나 웃고 있는 표정의 로고는 양쪽 모두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이 당명과 로고는 오로지 '한나라당'이라는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대체 자기 정당의 정체성을 왜 지우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이들의 당명 개정 작업이 순수하게 선거공학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는 심증을 굳히게 한다.

정당을 기억하는 수단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당명, 상징 색, 로고, 기호이다. 이번 당명개정 작업은 당명, 상징색, 로고를 바꾼 것이다. 기호는 원내정당의 경우 소속 의원 수 순으로 결정돼 분당이 되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는다. 즉, 새누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이들의 기호는 1번이다.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기호 1번에 투표하는 것에 익숙하다. 열린우리당이 원내다수당으로 선거에 나섰던 2006년 지방선거와 대선 직후의 2008년 총선을 제외하면 이들이 지지하는 정당은 늘 1번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새로 바뀐 당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번입니다!"라고 반갑게 외치면 된다.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아니면서 새누리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뀐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후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반MB, 반한나라당 정서가 강한 상황에서 당명 개정의 효과는 이들에게 해당 후보의 소속 당부가 한나라당이었다면 주지 않았을 표를 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즉,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당명 개정은 전통적 지지층의 지지 의사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중간층 유권자들의 반MB, 반한나라당 정서를 비껴가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유명한 카피를 써낼 정도의 전문가가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추천한 당명이라면 거기에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가 과연 빛을 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판단하기엔 어렵다.

우선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또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하루 하루를 견뎌내야 한다는 게 문제다. 총선 전날까지 무슨 사건이 어떻게 문제가 될지 모르는 판이다. 측근 비리도 문제지만 이제 친인척 비리가 본격적으로 터질 시기가 되었다. 지금처럼 친인척 비리에 대한 보도가 나오다 말다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면 당명을 무엇으로 바꾸든 소용없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앞서 언급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의 시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중심에 놓은 여러 추문에서 최소한의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탈당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청와대는 최소한의 정국 개입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의 탈당 만큼은 막으려고 할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바로 이 점 때문에 계파간 싸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또한 반박근혜 진영의 입장에서는 언제든 이것을 트집 잡아  전면적 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존재할 수 있다.

만에 하나 이런 판이 되면 새누리당의 선거에서의 패배는 기정사실이 될 것이다. 그리고 패배한 정치인들의 일부는 당명 개정이 문제였다고 말하고, 또 일부는 전문가는 잘 대응했지만 정치인들이 문제였다고 말하며, 또 일부는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의 대권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애초에 당명개정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당 혁신을 도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더라면 상황은 또 달랐을 것이다. 이러한 선택 조차도 박근혜의 몫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점은 냉혹한 역사의 한 단면이다.

* 이 글은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33

댓글 '1'

1rz

2012.02.12 03:01:20
*.141.214.135

거기까지가 공주님의 최선이죠.
다만 한나라당이 130석을 넘길 경우 박근혜는 로또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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