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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각 세력의 대권후보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총선 때와 비슷한 경향이 대권주자들에게서도 확인된다. 정책적 측면에서의 좌편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일관되게 나타나는 경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중도로

새누리당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근혜의 경우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 질서를 세운다는 내용의 ‘줄푸세’를 말하던 2007년과는 달리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정책의 중점에 둘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좌클릭을 말로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염두에 둔 듯 김종인, 이상돈 등의 비교적 중도적 인물들에게도 캠프의 요직을 맡긴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재벌개혁의 경우 대기업 담합처벌 강화와 관련하여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부당하도급 근절을 위해 하청에 단체협상권 부여 등을, 그 외 부당내부거래 금지규정 강화나 일감 몰아주기 부당이익 과세, 대기업 임원 및 지배주주 일가의 엄정한 법 집행 및 특별사면 자제 등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정책과 관련해서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저임금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일정 기간 사회보장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고, 근로장려 세제와 사회보험료 지원 등을 확대하는 방안을, 일자리 정책과 관련해서는 청년벤처, 사회적 기업과 같은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고 정부·기업·노조의 유럽식 사회적 대타협을 유도하는 방안 등을 주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다수다.


▲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 뿐만 아니라 다른 새누리당 후보들의 메시지도 이러한 경향이 일정하게 나타난다. 이재오 의원이 경우 ‘공동체적 시장경제’를 만들어 양극화와 청년실업을 해소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몽준 의원의 경우 ‘지속 가능한 복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시장을 제외한 모든 주체로부터의 간섭을 거부하던 2007년의 메시지와 비교하면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만하다. 이 덕분에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의를 설명해야 할 다른 대권주자들의 정책 메시지도 일관되게 좌측으로 밀려나게 됐다. 이러한 상황을 돌아보기 위해 민주통합당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출마선언문을 잠시 검토해보자.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의 좌클릭 정책 공약

일단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경제민주화를 이루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경영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것이 첫 번째 메시지이다. 두 번째 메시지로서는 4대 성장전략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최저임금 인상과 생활임금 개념을 정책에 반영하고 중소기업을 살리며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포용적 성장’, 교육혁신과 문화혁신으로 시작되는 ‘창조적 성장’,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신산업을 육성하며 추가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수명이 다된 원전은 가동을 중지하는 ‘생태적 성장’, 인터넷과 SNS의 활용과 전향적 대북정책 등을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는 ‘협력적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 메시지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며, 네 번째 메시지는 하여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것이다.


▲ 출마선언을 하고 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심지어 문재인 고문은 국회 경제민주화 포럼 창립식에 나타나 권력을 시장으로부터 찾아오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최저임금 인상의 시급함을 주장하며 자신이 대표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 처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개정안의 내용은 2017년까지 최저임금을 전체 평균임금의 50%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으로 그간 야권이 공동으로 주장해왔던 것과 동일한 내용이다.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대권주자인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출마선언문도 마찬가지다. 이 선언문의 첫 번째 핵심 키워드는 ‘완전고용과 진보적 성장’으로 2020년 까지 70% 이상의 고용률을 달성하며,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공동체 시장경제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진보적 성장’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핵심 키워드는 ‘경제민주화와 사회정의’로 재벌로부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보호하며, 기업의 소유구조 및 경영지배구조를 정상화하고, 종업원지주제 등을 통해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확대하며, 조세정의를 구현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세 번째 핵심 키워드는 ‘보편적 복지’로 청춘연금제도를 도입하고 환자의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으로 인하하며 반값등록금, 공정임대차, 무상보육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네 번째 키워드는 ‘창의교육’으로 작은 교실, 작은 학년의 학교혁신시스템 도입과 서울대, 거점 지방국립대를 네트워크화해 공동학위제를 실시한다는 것 등이며, 다섯 번째 키워드는 ‘한반도 평화공동체’이고, 여섯 번째 키워드는 ‘생명과 평화가 존중되는 세상’으로 4대강과 원전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중 특히 ‘저녁이 있는 삶’은 손학규 고문의 메인 슬로건처럼 활용되고 있는데, 동명의 책을 출판하기도 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노동시간 단축은 그간 진보진영에서도 의지를 갖고 의제화 하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으나 실패한 것인데 중도층을 주요 공략 포인트로 삼고 있는 손학규 고문이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이러닉한 상황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좌측부터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이해찬 당 대표, 문재인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도지사

야권의 또 다른 대권주자 중 한 사람인 김두관 도지사의 경우 아직 출마선언문이 나온 것은 아니나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백성은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한다’는 뜻)을 내세우는 것이나 서민 출신으로 입신양명한 본인의 이력을 내세우는 것 등을 볼 때 서민친화적이며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할 것 같다.

진보정당은 이제 할 일이 없는가?

이렇게 검토해보면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이 내세웠던 의제들을 모두 보수정당의 주자들이 가져가버린 것 같은 모양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선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정책적 움직임을 참고해보면 특히 민주통합당은 국민정당화 이후의 독일사민당과 같은 수준의 메시지까지 던지고 있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의 역할을 이들 보수정치세력이 대신 할 수 있는 상황인 것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남아 말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과거 진보정당이 던졌던 메시지와 이들 보수정당이 내놓는 정책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철학적으로는 양자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핵심은 이러한 정책 메시지들은 각 정치세력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로 수렴된다는 것인데, 진보정당은 진보적 정책들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나갈 것을 천명하고 있는 반면 보수정당의 경우 제대로 굴러가는 자본주의에 더욱 충실한 사회를 만들 것에 그치겠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테면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이 말하고 있는 성장담론이라는 것이 그렇다. 문재인 고문의 경우 민주통합당내 정치개혁모임 간담회에서 수차례 ‘성장을 위한 복지’, ‘성장 속의 경제민주화’를 언급했다. 손학규 고문의 경우 대구대 강연에서 경기도지사 시절 74만개 일자리를 만들고 평균 7.7%의 성장률을 달성한 것을 부각시키며 ‘정의, 복지만 하고 벌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두관 도지사의 경우 저서를 통해 ‘정책기조를 성장, 고용, 중산층 복원에 놓아야 한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명백한 징후로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성장론을 주장하는 것이 무조건 보수적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도 당연히 성장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전망을 진보정당이 갖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대안적’인 것일 게다. 그것이 ‘대안적’인 이유는 그게 멋있어서가 아니라 대안적인 형태의 새로운 체제의 이행전략이 수립되지 않으면 현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모든 보편적인 복지정책들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왼발을 좌측으로 한 발짝 움직였으면 당연히 오른발도 좌측으로 한 발짝 움직여야 한다. 정책구호가 진보적인 것이 되었다면 체제에 대한 총론적 기획도 진보적인 것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왼발만 계속해서 좌측으로 움직이면 가랑이는 찢어지고야 마는데, 보수정당의 대권주자들은 복지국가 건설을 외치면서 체제에 대해서는 시장경제가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적 질서에 위해를 끼치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 이유는 물론 대선은 결국 중도층 공략 게임이며 ‘위험한’(?) 구호를 남발해서는 중도층에게 버림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권의 승리로 인해 구성되는 차기 정부는 결국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 하는 행태를 반복하게 될 것이고 민중들의 실망은 다시 한 번 갈 곳을 잃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 의회에 진출한 프랑스의 대표적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당수 마린 르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러한 상황에서 민중들의 지지는 당연히 보다 좌측에 존재하는 정치세력에게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좌측의 바로 그 공간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좌파정당이 없거나 모두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할 뿐이라면 민중들의 갈 곳 잃은 지지가 어디로 가겠는가를 보여준 것이 유럽에서 극우세력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좌파들이 잘못하면 극우파가 득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보좌파를 자처하는 우리는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이 글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이 글은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newjinbo.org/n_news/news/view.html?no=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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