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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후보병'이라는 것이 있다. 인기 없는 정당 소속 후보자의 선거 운동에 참여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병의 증상에 대해 말해보자면 이렇다. 선거 초기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후보자가 선거가 진행되면 될수록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당선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되고 이런 믿음에 맞춰 선거 운동원들을 닦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고 있던 후보가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역전에 성공하는 일은 다른 일상에서도 그렇듯, 선거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후보병에 걸린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자신의 확신과는 반대의, 그리고 모든 이들이 선거 시작 전에 예측했던 딱 그만큼의 득표를 하고 씁쓸한 퇴장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생들이 본 2012 총선과 대선 전망>(강원택 외 지음, 푸른길 펴냄)에 등장하는 사례들의 지역구에도 비록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후보병에 걸려 쓸데없는 기대를 품다 뜻을 접어야 했던 수많은 정치인 지망생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 책을 쓴 '정당론 수강생들'의 연구는 그렇게 생각할만한 충분한 개연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다양한 상황의 지역구를 탐방하며 선거 구도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지역민들이 선거에 대해 가지는 생각은 어떤 것인지, 후보자들은 어떤 전략으로 선거에 임하고 있는 지를 직접 경험한다. 이들의 이런 탐구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는 것은 각 지역구마다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주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에 관계없이 이러한 시선으로는 늘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서울대생들이 본 2012 총선과 대선 전망>(강원택·서울대 정당론 수강생 지음, 푸른길 펴냄). ⓒ푸른길

낙후된 지역에 지역개발 이슈를 중심에 놓고 선거 운동을 전개한 여당 후보자가 정권 심판론에 밀려 낙선하기도 하고, 중앙 언론의 끊임없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인기 스타를 별다른 전략도 없이 상대했던 후보자가 당선되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선거의 판세를 거의 뒤엎을 것 같은 이슈가 연일 제기되어도 이를 선거와 연관 지어 언급을 하는 지역민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누구도 선거에 영향을 끼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당락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과학적인 분석 방법을 동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직관적 추론을 해보자면 이런 식의 여론 동향 파악이 불가능한 이유는 결국 선거 운동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범주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후보병에 걸린 후보자들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인데, 사실 선거에 나왔다며 한 표 찍어달라고 하는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면전에 대고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흔하겠는가? 대놓고 격렬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은 보통 상대 후보자를 지지하는 단체, 조직의 구성원이거나 반대편 정당의 확고한 지지자인 경우일 뿐이다.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을 하루 종일 듣고 다니는 사람이 자기 최면에 빠져 자신에 대한 지역민들의 지지를 과대평가하게 되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 원리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왜곡된 여론을 접하게 되는 상황이 빈번해지는 것이다. 이러니 언제나 '예상을 뒤엎는' 어떤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 대낮에 거리를 열심히 돌아다녀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의 구성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 직접적인 여론 청취를 통한 민심 파악의 걸림돌이 되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낮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자영업자이거나, 가정주부이거나, 실업자이거나, 학문을 탐구하는 사람 정도일 것인데, 이들은 명확한 직업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의 증언을 통해 파악한 여론은 어느 정도는 편향적으로 구성되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직장인들은 출근을 해서 일을 하느라 낮에는 지역구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거 과정 자체에서 이들의 여론이 배제되는 경우가 왕왕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 말하자면 출퇴근에 바쁜 직장인의 경우는 선거 운동 그 자체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즉, 후보자와 선거 관계자들이 세운 탁월한 전략과 섬세한 전술 구사 여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다수의 유권자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판단 기준은 오로지 선거 운동 기간 이전에 습득한 정보들로 구성될 것이다. 또 이러한 정보들에는 자신의 나이, 출신 지역, 출신 학교, 종교, 부동산 보유 여부, 현 정부에 대한 불만 정도 등이 포함되는데, 이러한 정보들이 선거에서 영향력을 갖는 것으로 정치화되기 위해서는 그 시기까지 형성된 정세가 이러한 요소들과 반드시 서로 조응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이것 덕분에 이 메커니즘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정치평론가, 정치부 기자, 여론조사 전문가, 자유기고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후보자들이 세우는 선거 전략과 전술이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여전히 직간접적인 선거 운동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지역구에 상당수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후보자가 무슨 이유로 당선된 것인지, 또는 낙선한 것인지를 이견의 여지가 전혀 없는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정당론 수강생들'도 연구 과정에서 후보자의 당락 요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상당 부분 '직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책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있지는 않으나, 선거와 관련하여 상황을 어지럽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소위 언론의 자기실현적 특성이라는 점을 추가로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선거 과정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위 자체가 다시 선거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정 언론들의 의도적인 선거 개입 등에 대한 언급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언론이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더라도 이러한 특성은 마찬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언론은 단지 여론을 전하고 현상을 해설하고 싶어 했을 따름이지만 이것 자체가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꼼수다'와 같은 예가 그렇다. '나꼼수'가 팟캐스트 방송의 강자로 등장하자 많은 언론계 종사자들은 이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해설을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것은 정치적 음모라기보다도 언론인의 사명에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개인 팟캐스트 방송이 기성 언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라는 담론이 만들어 졌고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이 방송에 출연을 하는 것이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

'나꼼수'의 진행자들이 문재인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를 선언하고 서울 시장 보궐선거의 주요 야권 후보자들을 불러 경선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게 되자, 이제 '나꼼수'는 대안언론의 자리가 아니라 야권의 주요 플레이어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은 19대 총선에 그대로 반영됐다. 나꼼수의 진행자 중 1인인 김용민이 출마를 하게 된 것이다. 전국의 관심이 집중됐고 언론은 그의 출마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이러한 상황에 광범위한 반MB 정서가 나꼼수의 대대적 성공으로 표출되었다는 점을 추가로 고려하면, 김용민의 승리를 예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 김용민은 낙선했다.

언론은 이것의 원인을 다시 '인터넷 방송 부적절 발언'에서 찾으려고 하였지만 모든 책임은 사태를 조기에 진화하지 못한 당 지도부에 있으며 어차피 처음부터 해당 지역구에 나꼼수 진행자가 출마를 한다는 점이 실제 선거에서 주되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즉이 선거가 사실상 '동네 선거'로 치러졌다는 여론조사 등의 결론이 등장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또 다른 예로 2011년 서울 시장 보궐선거 때 언론이 안철수를 다뤘던 방식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론이 안철수를 유력한 대권 주자의 하나로서 여론조사의 선택지에 집어넣기 전까지 안철수를 차기의 유력한 대통령 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의 강자 박근혜와의 일 대 일 대결에서 안철수가 근소한 차로 박근혜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이것은 판 자체를 뒤흔드는 폭탄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 때의 여론조사 결과 발표 때문에 박원순 시장이 탄생했고, 민주통합당이 탄생했으며, 민주통합당의 유력 대권 주자들이 안철수와 2단계 단일화를 할지, 민주통합당 입당 후 '원 샷 경선'을 할지, 가설 정당을 만들어 경선을 할지를 놓고 왈가왈부를 해야 하는 판이 형성된 것이다.

물론 당시 언론의 이 선택을 '음모론'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를 선택하지 않으려 했던 한 언론사가 박근혜에 대한 유력한 대안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판을 기획하고 만들었다는 상상을 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결국 정치가 언론의 행위를 추동했고 이를 통해 다시 언론이 정치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으로 해설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측면을 조금 극단적인 그림으로 그려보자면 이렇다. 정치권이 의도를 갖고 이슈를 만들어 내면 이것을 언론이 보도하고 해설한다. 이러한 해설은 유권자에게 선거에서 '프레임'으로 제시되고 언론의 행위 그 자체가 정치적 이슈가 되며 이것은 다시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권에 영향을 미친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에 대한 선택권은 유권자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권자가 정치에 대한 선택권을 똑바로 행사하기 위해 참조하는 수많은 정보들은 다시 정치로부터 제공되는 것이다.

즉, 어떻게 보면 유권자가 정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정치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가 정치를 선택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수많은 과정에서 돌연변이처럼 터져 나오는 여러 사고들이 법으로 정해진 틀 안에 해소되기도 하고 해소되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 선거를 예측불허의 게임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파악할 수도 있다. 결국 '어쩌다 보니' 당선이 되기도 하고 낙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책 제목에서 '서울대생'이라고 호칭되는 저자들은 이 책의 집필을 통해 2012년 총선을 파헤치고 대선을 예측하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정치와 선거에 대한 불가지론을 증명하는 하나의 징후로서의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 자리를 빌려 '어쩌다 보니' 되는 것이 천지인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나 자신을 연민할 수 있게 만들어준 '집단 지성'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바이며, 집단 지성에 걸맞은 집단 인세가 어떤 형태로든 지급되었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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