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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 강기갑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두 번째) 등이 지난 5월24일 국회에서 열린 회의를 마친 뒤 머리를 숙여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그러나 이석기·김재연씨 등은 다음날 비례대표 후보 사퇴를 끝내 거부했다. <한겨레>이정우 선임기자

당권파가 사라져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보정당운동, 대중을 기만하지 않는 대중성에서 다시 출발해야

@soonam99사실상 통합진보당 사태를 두고 ‘터질 게 터졌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라는 거죠. ‘대중적 진보정당’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각종 당내 모순, 특히 종북주의로 무장한 당권파의 부도덕한 패권주의가 수면에 드러난 거죠.


통합진보당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중에서도 진보정당운동에 나름 오랫동안 참여해온 사람들의 실망은 남다를 것이다. 멀게는 민중당부터 가깝게는 통합 전의 민주노동당까지, 다양한 진보정당운동에 함께해온 사람들도 이런 사태를 눈앞에 두고는 고개를 가로젓는 상황이다.

문제는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는 틀 자체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민주노동당에서 이어져온 진보정당운동은 노동조합운동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노동자와 서민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한 이후 조직된 노동자들의 지지는 정치자금 세액공제 제도로 ‘손해 보지 않는’ 후원금 납부와 선거운동에 대한 수동적 동원으로 대체됐고, 노동자·서민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포부는 상층 고공정치의 논리에 휘말려 일부 정치인의 정치생명 연장 프로젝트로 변질됐다.

통합진보당 창당은 유시민·노회찬·심상정이라는 정치인들의 재기와 이들에 대한 지지세를 활용해 민주연립정부를 구성해 정부기구에 합법적으로 진출하려는 시대착오적 운동권 정파의 야망으로 시작됐고, 이것이 오늘의 사태가 벌어진 진정한 이유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손해를 본 것은 어느 정치인, 어느 정파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진보정당운동에 참여하려 했던 수많은 통합진보당의 평당원들일 것이다. 사실상 그들의 기대는 그저 이용당하고 만 것 아닌가?

어쩌면 오늘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애초에 필요했던 것은 진보정당운동의 틀과 내용을 새롭게 잡아가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 대중을 기만하지 않는 대중성을 갖춰야 한다. 진보정당운동이 대중 속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대중을 품기 위한 것이지 그들을 속이고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둘째는 조직된 것에서 조직되지 않은 것으로 끝없이 뻗어나가는 생명력을 갖춰야 한다. 자기 정파의 틀 안에 갇혀서는 오늘날 같은 비극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는 낡은 사상과 결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부정선거와 사상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항변하지만, 결국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규정하는 것이 사상이기에 이런 지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은 당장의 위기를 헤쳐나갈 슬기로움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 같은 방향의 혁신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비슷한 비극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은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에 맞서 당의 혁신을 이룰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도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그들과 함께 손잡고 당을 마음대로 하려 했던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명한 통합진보당원이라면 진보정당운동 자체를 혁신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임을 잘 알 것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문제는 당권파만 아니라 중간계급 당신이다
중간계급의 도덕이 진보의 핵심이 된 한계 넘는 진보의 재구성 시작해야

@tak0518길게는 이석기나 김재연 정도 때문에 진보가 무너져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취약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정도로 무너져내린다면 뭐에 쓸까 싶기도 하다.


통합진보당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하는 것 같다. 진보 진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주장과 일시적으로 손상을 주겠지만 결정적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서로 엇갈린다. 비관주의와 낙관주의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보의 내용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갈리는 견해들이다.

쿨하게 진보는 이 따위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진보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니, 이 정도로 무너질 진보라면 존재할 필요도 없는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새겨보아야 한다. 너도나도 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어떤 민주주의인지 물어보는 일이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로 통칭된 한국의 진보주의는 ‘노동자 없는 성장’이라는 박정희 체제의 유산을 청산하기는커녕, 더욱 강화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386세대 정치인’이라는 용어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민주화 과정에서 노동이라는 실체적 진실은 은폐되고 ‘1980년대 4년제 대학을 다닌 학생운동권’을 진보의 주역으로 인준하는 착시 현상이 발생했다.

노동계급 의식 없는 진보는 결과적으로 수도권의 삶을 표준으로 삼는 ‘중간계급’에 민주주의 의제를 독점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보다, 기존 체제를 그대로 놓아둔 채 집권세력만 바꾸는 문제로 전락해버렸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는 ‘개혁’의 이름으로 진보를 오염시켰고, 노동의 범주가 배제돼버린 민주주의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진보의 내용이 도시 중간계급의 ‘도덕’에 멈춰 있는 상황에서 통합진보당 사태는 진보 진영 전체에 대한 실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이 그동안 지지를 받아온 이유는 보수 진영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믿음이 흔들리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검찰 수사는 이런 동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검찰이 개입한 이상, 어떤 문제든 드러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통합진보당 문제는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돼야 한다. 이 정도로 진보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나이브하게 진단하기에 사태는 너무 심각하다. 오히려 “어영부영하다가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unheim)이라는 진단이 더 설득력 있는 이유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21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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