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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네오나치의 ‘스멜’이 풍기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혐오 숨기지 않는 이들… 국민전선 같은 정당 나올 날도 머지않아


‘일베’(일일베스트저장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진보 논객으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가 일베 이용자와 100만원을 받고 인터넷 생중계로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토론을 하기로 하자 이 웃기는 웹사이트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들이 공유하는 일정한 특징이 있다. 첫째는 이른바 민주·평화·개혁 세력과 진보세력에 대한 혐오, 둘째는 특정 지역에 대한 적개심, 셋째는 한국 여성에 대한 혐오, 넷째는 모든 진지한 것들에 대한 냉소다. 이들에게 진보세력이란 선동꾼에 불과하며,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은 그저 멍청한 자들이고, 전라도는 만악의 근원이며, 한국 여성이란 존재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남성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사악한 존재이며, 감성을 자극하는 수많은 진보적 사연은 오직 이러한 사악한 존재들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 날조한 거짓말일 뿐이다.

이러한 특징들이 의미하는 것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과 표현의 자유 간의 고전적 갈등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10년간 집권했던 민주·평화·개혁 세력이 만들어놓은 정치적 올바름에 기초한 금기들에 도전하자는 게 이들의 일관된 태도다. 둘째는 이들이 고전적 보수세력의 논리를 답습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불만을 ‘민중적’ 요구에 기초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혁명 전야 폭발 직전의 민중과 같은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일부에서는 이들이 한국의 ‘네오나치’와 같은 존재로 성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나도 이런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노르웨이 노동당의 청소년 정치 캠프를 습격해 총기로 8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살해한 ‘브레이비크’라는 극우테러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작가 리처드 밀레는 이 사건에 대해 “그의 사회민주주의와 그들이 만든 이민정책, 문화주의에 대한 노골적 증오를 찬양한다”고 말해 논란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브레이비크의 행위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야기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잘못된 귀인’(misattribute)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라는 점을 포착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부조리가 민중적 불만을 만들고 이 불만을 제대로 대의하는 정치세력이 없을 때 민중은 보수적 인식 틀에 의해 불만을 표현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극우정치 부상의 동력이 된다는 게 유럽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다. 일베 이용자들의 문제적 행태는 민주·평화·개혁 세력과 진보세력이 사회적 부조리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같은 정당이 만들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배제당한 자들의 스톡홀름 신드롬
정치적 냉소주의가 탈정치적 우파로 귀결… 탈정치성이 낳는 우파의 일상성 증명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이른바 ‘시대정신’에 묻어 있는 것이 탈정치성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탈정치성의 근원에 도사린 것이 바로 냉소주의다. 냉소주의는 얼핏 정서나 태도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고 있다. 요즘 ‘일베’로 알려진 인터넷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추측에 확신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일베’는 ‘일일베스트저장소’라는 제목을 줄인 말인데, 디시인사이드에서 파생된 사이트다. 디시인사이드가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을 모아놓았다는 점에서 가히 ‘막장 중의 막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기에 이들은 위악적이고 공격적인 언사를 서슴없이 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남성중심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까닭에 과거 디시인사이드 ‘정사갤’과 대조적으로, 정치 성향이 대체로 우파로 기울어 있다.

그러나 이런 성향은 특정한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이념을 신봉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베’의 정치 성향은 냉소주의에 근거한 탈정치성을 띤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받아들여지는 우파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말하자면 ‘일베’는 정치적인 우파라기보다 탈정치적인 우파인 것이다. ‘일베’의 탈정치성은 정치를 배제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는 냉소주의의 작동 원리를 잘 보여준다.

이 냉소주의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실을 지배하는 질서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그 질서에 편입해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현실에서 좌절한 주체가 쉽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지배질서의 논리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마치 스톡홀름 신드롬과 유사한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때, 그 권력에 저항하기보다 오히려 충실한 대변자가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계급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우파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게 되는 노동자의 의식세계를 여기에서 엿볼 수 있다. 자기계발이라는 자기통치의 요구에 복종하지만, 또한 그 논리로 완전하게 포섭할 수 없는 과잉의 욕망이 ‘일베’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이다. 자기계발이 부여하는 촘촘한 통제와 관리의 그물망, 그리고 자기통치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높은 수준의 개방성과 도덕성을 유지하는 것은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멀쩡한 자아’를 유지하려면 과잉이라는 ‘나쁜 욕망’은 배제되어야 한다. 이렇게 자기계발의 논리를 통해 배제된 욕망들이 검열을 피해 자연스럽게 모여든 곳이 ‘일베’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금지된 것들이 우파의 성향을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탈정치성이 부여하는 ‘우파적인 일상성’이야말로 근대 이래로 부르주아 국가장치가 노동자를 정치로부터 떼어놓음으로써 얻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1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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