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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지금까지 미디어스에서 작성했던 기사 중, 최근 동향을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글을 다시 게시한다.
이 글은 '책임장관제 말하더니…소수정예 청와대' 제하의 기사로 2013년 2월 19일 미디어스에 게재되었다.
(링크 :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80 )


모두가 기다렸던 청와대 수석까지, 대략적인 새 정부 인선이 완료됐다. 물론 여러 검증과정을 거쳐야 하고 내각의 경우 청문회를 진행해야 하지만 대략적인 그림은 그려진 셈이다.

눈에 띄는 것은 ‘친박 측근’들의 기용, 非모피아 경제관료들의 약진, 학자 및 관료 등 소위 전문가 그룹의 대두이다. 이들은 새 정부가 가지는 정책적 지향을 집행하기 위한 사람들이므로, 이러한 인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무’를 책임지는 친박

흔히 ‘정무’라고 하면 넓은 의미로는 국정운영 전반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정무수석이나 정무장관이라고 할 때의 ‘정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정치적 업무를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회와 청와대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고 공식적인 업무 라인으로 풀 수 없는 문제 등을 처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게 이들의 주요 임무이다. 박근혜 당선인 입장에서는 이러한 업무는 자신의 측근을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유효, 적절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내정된 이정현 전 의원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허태열 전 의원. ⓒ뉴스1

‘친박’의 대표적 중량급 인사인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정현 정무수석의 기용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허태열 전 의원의 경우 ‘전라도’, ‘빨갱이’, ‘섹스프리’ 등 설화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내부에서는 정무적 감각이 특출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을 전공했고 내무부 관료 출신인데다 지자체장과 국회의원을 해봤고 당 내에서도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정현 전 의원의 경우 ‘박근혜의 입’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박근혜 당선인의 입장을 언론 등에 전달해온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최측근’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평가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이정현 전 의원이 새누리당 소속 의원으로서는 호남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이정현 전 의원은 호남에 대한 의지가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당 시절 광주에 출마했다 낙선한 이후 비례대표 의원으로 지명되는 배려를 받았으나 2012년 총선에 다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40%에 이르는 득표를 얻는 저력을 보여줬다. 결국 낙선하긴 했으나 평소 호남지역의 민원을 처리하는데 힘을 많이 쓴 노력 등이 평가돼 지역사회에서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와 호남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다시 떠오르는 非모피아

경제수석으로는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이 내정됐다. 조원동 원장은 경제기획원 출신의 정통 경제 관료이다. 경제 관료들 사이에 경제기획원 라인과 재무부 라인이 오랜 기간 경쟁해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들은 서로 역할을 주거니 받거니 해왔는데,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 역시 경제기획원 출신 인사라는 점과 이혜훈, 유승민, 유일호 의원 등 당선인 측근 조언 그룹 등이 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새 정부의 경제정책은 ‘非모피아’들이 책임질 것이라는 전망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내정된 조원동 조세연구원장과 경제부총리 후보로 지명된 현오석 KDI원장. ⓒ뉴스1

모피아들이 현안의 대응에 초점을 맞춘 사고를 하는 반면 경제기획원이나 연구원 출신들은 거시적인 전망에 보다 많은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여정부 시절의 한미FTA와 같은 구상이 이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제조업은 중국에, 서비스업은 미국에 밀리는 상황에서 금융을 매개로 중국, 일본, 미국 사이에서 ‘동북아 금융 허브’ 역할을 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겠다는 게 이들의 구상이었다. 이런 생각은 다분히 이상적인 것이어서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관료들에 대해 ‘지나치게 청사진에 집착한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지금 상황은 국제경제가 어렵고 각 국이 돈을 쏟아 부어 자국의 제조업을 방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금융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투자처로서의 한국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제조업을 방어하면서 내수를 튼튼히 하는, 대외균형보다는 대내균형을 더 중요시하는 전형적인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 등 때문에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수출중시냐 내수중시냐의 양자택일인데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수출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성장해왔고 이러한 경로의존성 때문에라도 단기간 안에 ‘체질’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벌개혁·양극화해소 등 경제민주화 정책이 얼마나 관철될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강력해지는 청와대, 책임총리·책임장관제는 어디로?  

애초에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 측은 청와대 규모의 축소를 얘기하면서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 등을 수차례 밝혔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작은 청와대-큰 내각’의 구성으로 정부가 짜여질 것을 예상했으나 지금 상황은 정반대의 상황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작은 청와대-큰 내각’이 아니라 ‘소수정예 청와대-실무형 내각’이 되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파워’가 없는 학자 및 관료들로 구성된 소위 전문가 그룹의 중용은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한다. 결국 정책의 큰 그림은 박근혜 당선인을 중심으로 한 의견그룹이 판단하고 청와대 수석들이 이러한 방향을 집행할 수 있도록 내각에 지침(?)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각은 이러한 지침을 잘 수행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상황이 된다.

물론 이러한 일사불란함이 가져올 어떤 편의성과 효율성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이 잘 발현되면 새 정부가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역시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너무나 복잡한 여러 변수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기 때문에 청와대가 모든 것을 직할해서 ‘통치’할 수는 없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박근혜 당선인 측도 이러한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정치인 출신들이 아닌 ‘전문가’들을 요직에 앉힌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도라면 이 역시 우려할만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사실상 정부정책에 대한 ‘아웃소싱’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영역만 청와대가 직접 챙기고 나머지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정운영의 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청와대와 정부, 국회, 시민사회가 소통의 채널을 갖추고 아래로부터 전해진 목소리가 다시 정책으로 피드백 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청와대가 모든 것을 틀어쥐는 것도 대안이 아니고 전문가들에게 ‘아웃소싱’해버리는 것도 대안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얘기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이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이런 지혜를 새 정부와 당선인이 발휘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이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비판적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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