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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안철수 전 교수가 서울 노원구 병 선거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역구가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이 당선됐던 곳인 데다가,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의 처지가 어려운 상황이기도 해서다. 진보정의당 측은 ‘부당하게 의석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지역구까지 빼앗느냐’고 말하고, 민주통합당 측은 안철수 전 교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신당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허물까 전전긍긍하니 과연 아직도 안철수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의 출마에 대해 많은 이들이 ‘도리’의 문제를 말한다. 특히 진보정의당 측이 내세우는 논리다. 수도권에서 쉬운 길을 가기보다는 부산 영도 같은 데에 나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길을 걸어보라는 충고를 하는 이도 있다. 다 일리는 있는 얘기다. 다만 당위는 충분치 않다. 정치는 도리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안철수와 노무현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적 효과’이다. 안철수 전 교수는 ‘새로운 정치’의 깃발을 들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기성정치가 국민들의 열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니 기성정치와 관계 없는 자신이 직접 출마해 국민을 대변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그의 꿈 실현은 일단 중단됐으나 정치를 재개하는 시점에서 그는 다시 ‘새로운 정치’를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군소정당인 진보정의당과 대립하게 되어서는 ‘새로운 정치’의 기치에 걸맞지 않은 구도가 형성될 위험이 있다. 어쨌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봤고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할 가능성이 있는 안철수 전 교수 측이 진보정의당보다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세간에는 ‘날로 먹으려 한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옮겨지고 있다.

안철수 전 교수의 출마를 긍정적이지 않게 보는 여론 또한 확인되고 있다. 지난 4일 실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 안철수 전 교수의 노원병 출마에 찬성한다는 여론은 응답자의 34.1%로, 반대한다는 46.0%의 응답보다 훨씬 적었다. 그게 도리의 문제든, 정치의 문제든, 안철수 전 교수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든 국민들의 상당수가 안철수 전 교수의 출마를 반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나는 ‘국민이 안철수를 버렸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 전 교수가 여전히 기성정치에 실망한 많은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역시 ‘안철수식 정치’가 극복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과거 해방정국에서 좌익운동을 했던 박헌영의 정계복귀(?) 시기 서울 거리에 ‘박헌영 선생 나오시오’라는 유인물이 뿌려지던 상황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이를 두고 누구는 당시 박헌영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나, 또 누구는 박헌영이 잔머리를 써 자작극을 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볼 문제는 이러한 현상 자체가 그의 정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였다는 점이다.

‘노회찬’과 대립하며 무리하게 출마를 강행하는 정치보다 다수 국민들의 지지 속에 출마 요구를 받아들이는 정치가 안철수 전 교수에게 더 맞는 정치다. 출마를 포기하란 얘기가 아니다. 안철수 전 교수가 남은 시간 동안 바로 이런 정치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그의 건투를 빈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03111820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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