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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공직후보자의 도덕성

조회 수 1760 추천 수 0 2013.02.21 13:45:56
지도자가 되려는 꿈을 가졌다면 특권을 누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사회적 공리가 되어야 한다

도덕성 검증의 시즌이 돌아왔다. 정권이 바뀌거나 정부 부처가 개편되고 주요 인사가 바뀔 때마다 늘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주제는 나름 다양하지만 또 고정적이다.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논문 표절, 부동산 투기…. 이제는 그냥 스토리를 다 외울 지경이다. 어쩌면 이렇게 다들 비슷한 삶을 살았는지 서민들 입장에서는 의아하다.

이 분야에 단골 메뉴가 있는 이유는 기득권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실 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위장전입을 하고,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다운계약서를 작성하며, 주말농장을 운영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부동산 투기를 한다. 고도성장시대에 조금이라도 돈을 더 많이 벌어 2세에게 더 많은 것을 남겨주기 위한 일종의 요령이었을 것이다. 기득권층이 모여 사는 아파트촌에 살면서 주말에는 대형교회에 나가 사회지도층들을 형제·자매로 만나 ‘절세 요령’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졸부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11일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만난 조윤선 대통령 대변인 등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좀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압축성장이 진행된 덕에 법과 제도가 이를 따라가느라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그런 호의적인 해석을 가져볼 만도 하다. 과거에는 ‘귀여운 편법적 수단’ 정도로 생각되던 일들이 오늘날에는 공직을 맡으려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 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게 다 압축성장이 가져온 부작용이다. 이 부작용의 피해자들이 바로 인사청문회에서 줄줄이 ‘신상이 털리는’ 불행한 기득권들이다.

정부와 여당이 하자가 있는 인사들을 공직 후보로 내세울 때마다 동원되는 것이 이런 논리다. 과거에는 위법이 아니었다, 사실 본인이 한 건 아니다, 관행이었다, 이런 얘기가 변명이랍시고 나오는 것은 다 위와 같은 현실인식이 있어서다. 도덕성에는 약간 문제가 있어도 일 잘하고 유능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정책역량의 검증에 집중해달라, 이게 또 정부와 여당의 단골 멘트다.

사실 또 일리가 없는 얘긴 아니다. 젊었을 때 땅 좀 사고 자식 교육을 위해 위장전입 좀 했다는 이유로 장관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흔히 주위에서 성격 나쁘고 일 잘하는 사람과 착하고 일 못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지 않는가? 도덕성을 희생하고서라도 일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그런 판단을 내릴 만한 기준이 우리 사회에 부재하다는 것이다. 장관이 되려는 사람을 대다수의 국민들은 ‘출세하려는 사람’으로 보지 ‘나라를 위해 일하려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정치와 정책을 판단할 때 이념과 노선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욕망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토다. 그리고 이런 풍토는 정치권이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해온 결과다. 착한 사람, 깨끗한 사람이라면 눈치 볼 사람도 없고 챙겨줘야 할 사람도 없으니 모든 것을 잘 하지 않겠느냐는 게 지난 대선 시기 안철수 전 후보를 지지했던 일반 시민들이 빈번하게 입에 올리던 논리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수단을 통해 출세해온 사람들의 죄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죄는 기득권이어서 얻을 수 있는 특권들에 그저 안주해온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누구라도 장래에 지도자가 되려는 꿈을 가졌었다면 그러한 특권을 누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사회적 공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새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문제의식이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성, 그 너머를 보아야 한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0219105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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