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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시대와 맞는 채널인가?
‘국민’ 앞세운 ‘방송’, 탈형식 저널 시대와 맞지 않아, 저렴하게 만들고 자유로이 배포하는 매체로 진화해야


“지금까지의 조선의 현상은 ‘아카데미즘’은 ‘아카데미즘’대로 ‘쩌너리즘’은 ‘쩌너리즘’대로, 마치 두 사람의 상관없는 이방인처럼 너무나 몰교섭적인 버러진 두 길을 거러왔던 것만 같다. 하지만은 이래서 옳은가? 이래서도 좋은가? 두 개의 호(弧)는 기회를 다투어 서로가 되도록은 덥쳐야 하며 덥치는 가운데서 서로가 실상은 보담 풍성해지는 것이며 보담 미덤직한 성과가 기약될 것이 아닐까?” 최근의 ‘국민방송’ 논의를 접하며, 태백산에서 삶을 마감한 경성제대 출신 저널리스트 빨치산 박치우의 사유를 다시 펼쳐보게 된다.

무력화된 공영방송을 대신하고 ‘종편’의 대항마로 맞서기 위한, 대선 패배 뒤, 일각의, 좀더 공정한 ‘국민방송’ 설립 제안이 있다. 이해할 만한 발상이다.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래도 책임 있게 질의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적절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인가? 진보적으로 의미 있고, 실천적으로 유효한 움직임인가? 설립 가능성 여부를 떠나, 그 가치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옛것이 된 방송 모델에의 복고풍 향수. 박치우의 실천적 사유에도 한참 뒤진, 명백히 낡은 그림처럼 보인다.

물론 내용과 진행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하겠다. 그렇지만 문제는 제출된 개념에서 이미 근원적으로 비롯된다. 방송? 기술 진화가 ‘방송’을 후지게 만든 지 오래다. 케이블 진출? ‘국민’이라는 불량한 언어의 부착 또한 의심스럽다. 대중이 곧 지식인이고 인·민 이 바로 언론인인 시대다. 그런 새로운 경향으로서 기존의 제도화된 방송에 대항하고, 권력화한 매체를 분열시켜왔다. <나는 꼼수다>나 <뉴스타파>는 물론이고, 여러 분열적 텔레비전과 자율적 저널리스트들이 이 중대 현실을 만들어왔다. ‘국민’을 앞세운 ‘방송’의 설립은 이런 흐름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박치우가 넘어서고자 한 인위적 분리의 ‘호’를 다시 그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국민방송’을 갖고 뭘 더 잘 말할 수 있을까? 설혹 의도치 않았더라도, 제도화의 틀은 결국 언어와 사유의 구속 효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누구나 할 말이 있고 약간의 장치만 갖춘다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바로 지금의 탈형식적, 대중적 저널리즘 운동을 ‘국민 방송’으로서 과연 강화해낼 수 있을까? 아무나 저렴하게 만들고 자유로이 배포하며 재미나게 접할 수 있는, 다성적 저널리즘 콘텐츠 채널들의 진화. 더욱더 정파적인 매체로의 분산 배치.

전체주의에 맞선 자들이 남긴 교훈, 국내 외 교전의 역사에서 발굴하게 되는 메시지도 그런 것이었다. 1970년대 이탈리아 자유 라디오와 뉴욕 점령지, 그리고 한국의 인터넷 광장에서 확인되는 대중교통의 모델이다. 파시즘의 부상을 목도하며 스스로 저널리스트가 된 발터 베냐민도 같은 생각이었다. 괜히 젠체하지 말고 사회에 효력을 끼치기에 걸맞은 채널을 고안하라. 기민하게 플래카드를 내걸고 싸구려 전단지를 뿌리라. 정파적이지 않을 저널리즘은 당장 접어라. 그렇게 유격전을 펼치라는 교훈이, 다가올 냉전의 시간에 대비해 비판 저널리즘의 무기를 점검할 우리에게 묵직하게 다가온다. 차분한 반성과 준비가 필요하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현재 국민방송 추진은 김용민씨 등이 주도하는 흐름과 제작진을 중심으로 한 흐름, 두 가지가 있다. 지난해 3월 김용민씨가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고소 건으로 조사를 받으러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는 모습. 한겨레 이정아 기자

그럼에도 기대 거는 이유
공정성과 정파성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는 언론·방송, 다양한 대안언론의 연결 구심되는 국민방송으로 발전하길


미리 밝힌다. 나는 현재 제기되는 ‘국민방 송운동’의 어떤 흐름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몇몇 인사에 대해서는 특히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이 흐름에서 건져 내야 할 어떤 긍정적 요소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방송과 언론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특징을 함께 갖고 있다. 첫째는 관점의 존재다. 모든 ‘보도’에는 ‘관점’이 수반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언론은 정파적이다. 둘째는 공공재로서의 성격이다. 언론은 담론을 형성하는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늘 공정성을 지키도록 요구받는다.

국민방송운동을 주도하는 몇몇 인사는 전자의 측면에서 기존 언론과는 다른 관점의 방송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굳이 노골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 편 방송’이 필요하다는 얘기랑 비슷하다. 논리는 이렇다. 보수세력이 장악한 방송이 공정하게 기능하지 않아서 민주세력이 선거에서 패배했으니 이제 민주세력이 다시 선거에서 이기려면 국민이 직접 스스로 공정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즉, ‘공정성’ 훼손을 ‘정파성’으로 극복해보자는 얘기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각각의 정파성을 주장하는 더 많은 언론과 이를 비판적 관점에서 다루는 세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파성과 공정성은 언론이 필연적으로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는 요소다. 두 요소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관점과 이들에 대한 엄밀한 비판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이 출범할 때 우리가 비판적 태도를 가졌던 것은 종편이 특정한 관점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거대한 권력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는 대형 언론사들이 방송마저 장악하는 것이 언론 전체에서 관점의 다양성을 침해하리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 점을 다시 떠올리면 국민 방송운동이 가야 할 방향이 명확해진다.

<나는 꼼수다>의 활약은 기존 언론 시스템에 의지하지 않는 ‘대안언론’이 충분히 영향력 있는 존재로 활약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었다. 지금도 팟캐스트를 이용한 여러 방송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대안언론들의 제작을 지원하고, 이들을 서로 엮어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제기되는 국민방송 운동이 이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면 세계 언론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개인적인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어릴 때 본 <볼륨을 높여라> (Pump Up The Volume)라는 영화에 자극 받아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해적방송이 필요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 원문 :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37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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