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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김영삼과 이명박 사이의 박근혜

조회 수 1453 추천 수 0 2013.01.07 09:40:35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박근혜 당선인 측 구상을 비판하고 나서 화제다. 김석동 위원장은 지난 3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당선인 측의 ‘국민행복기금’ 정책에 대하여 ‘가계부채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국민행복기금이 사실상 공공기관의 재원으로 정부가 보증채권을 발행, 기금을 조성해 신용불량자들의 빚을 갚아주겠다는 것인데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기구인 금융위원회의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이 정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이다.


▲ 김석동 금융위원장(좌)이 박근혜 당선인 측 구상을 비판하고 나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명박 정부 경제 관료인 권혁세 금감원장(우)의 생각은 또 다른 것 같다. ⓒ뉴스1

다른 주요 인물들의 생각도 비슷할까?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의 의견은 또 다르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31일 대국민 신년사를 통해 ‘국민행복기금을 활용해 연체된 가계대출 채권을 매입해 프리워크아웃제도 적용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박근혜 당선인 측 정책에 대한 적극적 찬동 입장이다. 금융계와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유력한 두 인사의 생각이 정반대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하면 정통 경제 관료로 분류되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시장경제체제에 섣불리 개입하면 부작용이 초래된다는 공리(公理)를 정책에 대한 우선적인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관치는 이미 없어졌지만 관치와 같은 수단을 동원하려면 끽소리도 못 나오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설프게 정책 수단을 남용했다가 이후 상황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느니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권혁세 금감원장의 입장은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당선인 측이 검토하고 있는 정부조직개편방안을 되짚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당선인 측이 기획재정부의 금융정책기능을 떼어내 금융위원회와 합치고 금융부를 신설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금융감독원의 입장을 헤아려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원 측은 오랫동안 독립된 금융감독권한을 가지고 싶어해왔다. 금융감독원은 무자본특수법인이지만 사실상 금융위원회로부터 관리·감독을 받는 입장에 처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입장은 금융감독원을 건전성감독기구와 소비자보호기구로 분리해서 소비자보호기능을 강화하는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하자면 금융감독원은 쪼개지게 생겼고 사실상의 상위기관인 금융위원회는 금융부로 승격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감독원 측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은 금융부의 수장으로 금융감독원장 출신이 임명되는 것을 유력하게 꼽을 수 있고, 이를 위한 정치적 발언을 권혁세 금감원장이 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일각에서는 금융부의 신설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또한 나오고 있다. 금융부문만 담당하는 장관급 부처라는 게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다 유로존 및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환율 등에 대한 권한과 금융정책 권한을 분리한다는 것은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 또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가? 이에 대한 답을 내놓으려면 새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모양새가 어떤 것이 될 지를 예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대 정부들의 전례를 잠시 되돌아보자. 1997년의 환란으로 재무부 출신의 소위 모피아들이 실각하게 됐다. 김대중 정부의 경우 대통령 본인이 경제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었던 덕분에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의 적극적 도입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쓸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그간 재무부 출신 관료들에게 억눌려왔던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경제정책에 대한 나름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다시 재무부 출신의 모피아들이 부활하면서 이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 중앙회 회의실에서 소상공인 단체 연합회 임원단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스1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 측 입장은 이러한 전례의 어느 것도 따를 수가 없다는 점이 딜레마다. 박근혜 당선인 본인이 경제정책에 대한 별다른 식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선거 기간 동안의 TV토론을 통해 드러났다. 때문에 본인이 갖고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경제정책을 구상하는 것보다는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전문가’가 누구냐는 것이다. 재무부 출신의 모피아들은 이미 비판을 많이 받아 정권 초기에 중책을 맡기기가 어렵다. 경제기획원 출신들은 소위 민주·평화·개혁 세력으로 기울어 있었기 때문에 또 중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권혁세 금감원장 같은 정통 모피아 라인에서 벗어난 인사를 중히 쓰는 것도 상책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공무원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과 관련한 조직적 파열음이 날 수 있고 권혁세 금감원장이 대구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TK‘싹쓸이’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저명한 교수 출신을 경제수석이나 경제부처 요직에 앉히는 방법이 남는데 이래서 잘 된 케이스가 별로 없다는 점이 또 문제다. 노태우 정권 때 조순이 그랬고 김영삼 정권 때의 박재윤이 그랬으며 김대중 정권의 김태동이 그랬다. 특히 김영삼 정권 시절의 경제정책 관련 인사를 보면 일부러 그랬나 싶을 정도로 ‘파국’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문제는 박근혜 당선인이 지금까지 보여준 인사 스타일을 볼 때 바로 여기에 가까운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밀봉 인사’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를 박근혜 당선인이 누군지 잘 알아서 수석대변인에 앉혔을까? 잘 모르니까 측근에게 인사 추천을 일임했고 권력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어느 유력인사가 어떤 수단을 통해 꽃아 넣은 결과일 것이다. 이런 식이면 성장론자와 안정화론자를 같은 팀에 넣어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던 김영삼 정권 시절의 인사 파국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만일 이렇게 되면 경제정책에 대한 확실한 지향이 없는 상태로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 남발되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적인 경제위기가 예정된 마당에 불에 기름을 붓는 처방이 더해지면 박근혜 정부는 시작하자마자 ‘이명박 정부보다 나은 게 뭐냐?’는 핀잔을 듣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모피아의 핵심으로 꼽혀왔던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민족 역사의 산실인 만주지역에서 오래 머물며 한국인의 위대한 DNA를 연구해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퇴임을 앞둔 경제관료의 발언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상징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박근혜 정부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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