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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종북이면 어떤가 문제는 거짓말이다
종북·김일성주의가 이석기 비판의 근거 돼선 곤란
핵심은 국회의원 하며 정치적 목표·이념 은폐한 것

박권일 칼럼니스트

이석기 내란예비음모 혐의는 궁지에 몰린 국정원이 내민 ‘필승 카드’ 중 하나였고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한 시도였다. 폭발력은 엄청났다.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당사자들을 제외하고 진보·보수 세력이 공히 이석기 그룹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에 경악하고 어느 지점에서 분노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고 있다. ‘내란’ ‘전쟁’ ‘총’ ‘비비탄’ 등 선정적인 단어만 둥둥 떠다니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이석기 때문에 야권 전체가 피를 보게 생겼다”는 탄식과 원망만 넘쳐났다.

물론 통합진보당과 이들 주변의 이른바 ‘일부 NL(민족해방) 세력’은 오래전부터 문제적 집단이었다. 대리투표, 위장 전입, 당비 대납, 당원 정보 북한 유출, 그리고 최근의 부정경선 사태와 중앙위 폭력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기행과 패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진보’라면 이런 자들과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나 선을 긋는 방식이 국가정보원의 공안 탄압에 슬쩍 편승하는 형태여선 안 된다. 단지 현행법만이 아니라 명확한 언어와 논리를 가지고 비판해야 한다. ‘반공이 국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시민으로서, 이석기를 비판하는 주된 근거는 무엇이어야 할까?

근거가 종북이나 친북 또는 김일성주의여선 곤란하다. 공안·반공의 논리로 이석기를 비판한다면, 사상·이념의 자유를 지지하고 더 나은 체제의 꿈을 가진 사람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석기는 제도권 정당의 국회의원을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목표와 이념을 의도적으로 은폐해왔다. 심지어 사태가 터진 뒤에도 애국가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통해 계속 유권자를 기망하려 했다. 당 대표 이정희는 “총기탈취·시설파괴 발언은 농담”이었다고 말했다. 이 모든 정황은 이들이 남한 사회에서의 정당 활동을 ‘어떤 다른 활동’에 종속된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난 역사에서 뛰어난 혁명가들은 탁월한 전략가요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세상을 더 나은 체제로 변혁하기 위해 적은 물론이고 동지들까지 때로 속였다. 물론 수단의 비도덕은 목표의 윤리성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혁명가들은 굳이 이 모순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당성은 혁명 실현으로만 증명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극좌 혁명가든 극우 혁명가든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체제다. 민주주의가 재미있는 점은 체제의 파괴 가능성을 형식 속에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민주주의는 표면적으로 동일한 정치적 권리를 보장받은 다수에 의한 지배이며, 구성원의 지지와 신뢰에 의해 작동한다.

이석기는 혁명가일까? 진지하게 스스로 혁명가라 여겼을 수는 있겠다. ‘혁명가 이석기’에게는 무관심이 답이다. 그에겐 내란을 일으킬 능력도 없었을 뿐 아니라 실제 제대로 준비한 것 같지도 않다. 북한의 새 권력자에 대한 과잉 충성, 그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남한 의회주의 체제의 국회의원이란 사실이다. 이 체제에 속한 이상 유권자에 대한 기만은 어떤 변명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잘못이다.


»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내란예비음모’라는 유령이. 지난 9월4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이 의원이 국회 본청 계단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로 엄호할 사안 아니다
이석기에 걸린 혐의는 국가보안법 아닌 형법 조항
북한의 존재가 진보정치 족쇄 되는 오랜 현실 재확인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내란 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기에 찬성표를 던진 새누리·민주·정의당 등은 자신들의 선택에 각각 의미를 부여하며 찬성 표결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은 찬성 표결 선택에 큰 갈등이 없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야 ‘종북을 척결’한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고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국정원에 말리기 싫어 표결 반대를 표명하는 흐름이 있긴 했겠지만, 어쨌든 논란이 된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정도를 넘어섰다는 데는 공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의당의 경우는 다르다. 정의당은 진보정당이다.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부터 진보적 운동에 몸을 바쳐온 이들이 상당수 결합해 있는 정치세력이다. 어려운 시기에 국가로부터 탄압받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기에 국정원의 수사를 근거로 해서 체포동의안에 찬성 표결을 하는 것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이후 정의당 내부에서 당론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2007년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들이 종북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어 조직을 분리한 진보신당이 이름을 바꾼 노동당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해선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이석기 의원과 뜻을 같이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보기관의 수사에 의해 누군가 잡혀가야 한다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 음모 혐의를 국가보안법 폐지 논리와 같은 층위로 사고해 관성적으로 대응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을 돌이켜봐야 할 필요도 있다.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리 중 가장 강력한 것은 한국 사회에 위협이 되는 이적행위가 벌어졌을 때 국가보안법이 없더라도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것인데, 이석기 의원의 행위에 걸린 혐의는 바로 이 형법 조항을 근거로 한 것이다.

물론 이석기 의원이 주최한 모임에서 나온 발언이 내란 음모에 해당할 정도가 아니라는 법리적 차원의 논의는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문제가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로부터 이어지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의에서 새로운 국면이 닥쳐왔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바가 하나 더 있다. 여전히 북한의 존재가 진보정치에는 질곡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의당, 노동당 그리고 이석기 의원의 서로 다른 주장의 결을 구분하는 대중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누가 어떤 태도를 취했든 앞으로 상당 기간 진보정치 전체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이런 처지에서 벗어날 때가 됐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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