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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지배구조 개선, 공영방송 성격 강화, 사장 선출방식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김재철 사장 시대도 막을 내렸다. 3월 26일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해임안이 가결되자 김재철 MBC 사장이 27일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김재철 사장은 ‘낙하산’ ‘방송장악 기도’ 등의 논란을 일으켰고, 이를 통해 노조와 끝없는 대립을 지속해 ‘시민이 지켜줘야 하는 방송국’이라는 평가를 받던 MBC를 순식간에 ‘4등 방송’(이젠 EBS가 더 유익하고 재밌는 것 같다)으로 내려앉혀 ‘최악’이라는 오명을 안았다.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방송장악 기도가 방송 자체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법인카드 사용 등에 관련한 부적절한 스캔들은 그를 더욱 더 파렴치한 사람으로 비치게 했고, 이것이 다시 갈등의 소재가 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기도 했다. 때문에 그의 퇴진을 시발점으로 하여 그동안 정권에 충성해왔던 사람들을 전부 다 뿌리 뽑는 게 언론 정상화의 길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3월 26일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해임된 김재철 MBC 전 사장이 이사회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언론과 방송의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에서 인적 청산은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성향 차이를 이유로 반대파를 숙청하는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방송과 언론은 생래적으로 정파성과 공정성이라는 특징을 함께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신이 아니며, 방송과 언론은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기에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콘텐츠들은 제작에 참여한 사람의 관점이 반드시 반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송과 언론은 담론을 형성하는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언제나 모두로부터 공정할 것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정파적 관점의 다양성을 근거로 한 공정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즉, ‘중도적인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편파적인 100가지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공정함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장 한 사람의 개입으로 전체 방송 논조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방송 제작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자신의 관점을 최대한 자유롭게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 다양한 영역에서 방송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시민들의 의견이 제작 과정에도 반영될 수 있는 여러 통로가 확보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배·소유구조의 개선이나 공영방송의 성격 강화, 사장 선출방식 등에 대한 새로운 고민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을 상기해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개혁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더라도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는 게 현재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권력자가 선의를 가지는 것이 MBC 정상화의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결국 이 역시 정권 문제라는 것이다. ‘미래창조’를 꿈꾸며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말하는 박근혜 정부가 무언가 희망적인 청사진을 보여줄 좋은 기회가 아닌가? 법적·제도적 한계를 뛰어넘어 창조적 발상으로 사회적 합의의 기반을 구축하는 정치를 기대해본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0401182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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